끝없는 악플에 시달리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BJ 잼미(조장미·27) 씨는 인터넷 방송 중 취한 제스처가 남성 혐오라고 주장한 온라인 동영상으로 인해 2년 넘게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조 씨는 수많은 악성 댓글과 루머로 괴로워하다 지난달 5일(토)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조 씨를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은 다름 아닌 ‘사이버렉카(Cyber wrecker)’다. 사이버렉카란 인터넷상의 각종 이슈를 짜집기한 영상과 글을 게시해 조회수로 수익을 높이는 이들을 말한다. 사이버렉카는 높은 조회수를 위해 사실이 확인 되지 않은 정보로 미끼를 던진다. 미끼를 문 이들은 재미를 위해 해당 내용을 커뮤니티에 퍼 나르고 루머의 당사자는 마녀사냥의 대상이 된다. 루머를 통해 결집된 개인은 곧이어 사회 분위기와 여론을 조성한다.
 

거짓이 만든 생태계 교란
허위 정보가 여론을 조성하는 현상은 해외에서 처음 논란이 됐다. 지난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은 ‘탈진실(Post-truth)’을 올해의 단어로 지정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보도하는 주류 언론을 ‘가짜뉴스(Fake news)’라 칭하며 음모론을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유권자를 결집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며 탈진실이 도마에 올랐다. 탈진실이란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여론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의미한다. ‘사이버렉카(Cyber wrecker)’는 혐오를 부추기는 악성 게시물을 게재하거나 연예인을 둘러싼 자극적인 루머를 생성해 주목도를 높인다. 유명세를 탄 이들은 수많은 구독자를 양산하고 온라인 상의 허위 정보를 순식간에 퍼뜨린다. 사이버렉카에 의한 여론 형성 과정은 탈진실 현상의 전형적인 예다.

해외에서 주목했던 탈진실 현상이 최근 문제로 떠오른 이유는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 때문이다. 삼성화재 블루팡스 소속 김인혁 배구선수는 사이버렉카가 올린 근거가 불분명한 게시물로 외모에 관한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지난달 4일(금)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본교 심재웅 미디어학부 교수는 “사이버렉카는 어떤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지 알고 있다”며 “이들은 구독자수, 좋아요, 조회수를 토대로 생태계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사이버불링은 유명인을 넘어 일반인에게도 발생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020년 발표한 ‘사이버 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사이버 폭력을 경험한 성인의 비율은 지난 2019년 54.7% 대비 11.1%p 증가한 65.8%에 달했다. 

급증하는 ‘가짜뉴스’도 탈진실 문제 중 하나다. TV, 신문과 같은 전통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습득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정보에 접근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의 양은 단시간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정보의 사실 여부를 밝히는 데엔 시간이 필요하다. 심 교수는 “인간은 불확실한 상황을 회피하려 한다”며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는 두려움, 공포의 최소화를 위해 가짜뉴스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 이후 과학을 빙자한 가짜뉴스가 온라인 상에 유포됐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산하 SNU 팩트체크센터에 따르면 국내 언론사 30곳을 대상으로 기사의 사실 여부를 따져본 결과 136건의 코로나19 뉴스 중 80% 이상인 111건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본교 윤광일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가짜뉴스의 가장 큰 문제는 공포, 혐오 등의 감정이 일으킨 잘못된 판단이 사망이란 극단적 결과로 이르게 할 수 있단 것이다”라며 “실제로 해외에선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음모론으로 일가족이 사망한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우물 안 개구리’
탈진실은 인간의 고유한 심리적 특성인 ‘인지편향(Cognitive bias)’ 에 의해 강화된다. 탈진실 현상을 철학, 사회학, 심리학적으로 고찰한 「포스트 트루스:가짜뉴스와 탈진실의 시대」의 저자 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는 인류가 비합리적인 인지능력을 발달시키면서 탈진실 현상이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심리학적 특징인 인지 편향이 진실에 대한 외면을 강화하고 거짓을 믿게 하는 주범이라고 말한다.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Peter Wason)은 지난 1960년 자신이 본래 가진 생각과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인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을 제시했다. 확증편향은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는 정보엔 주목하고, 믿음을 부정하는 정보는 무시하도록 이끈다. 평소 비호감이라고 느낀 집단이나 인물에 관한 긍정적인 뉴스는 피하고 부정적인 뉴스만 찾아보는 것이 확증편향의 예다. 본교 최지연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다수의 심리학 연구를 통해 우리의 의사결정이 늘 합리적이지 않단 것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탈진실 현상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허위 정보는 온라인에서 더욱 빠른 확산을 보인다. 지난 2018년 미국 MIT 경영대학원 연구팀의 ‘온라인 상의 진짜 뉴스 및 허위 정보 확산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 상에서 진짜 뉴스가 1500명에게 도달하는 데 60시간이 소요된 반면 허위 정보의 확산은 단 10시간이 걸렸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무장한 가짜뉴스는 소셜미디어를 사용했을 때 6배 더 빠르게 전파된다. 심 교수는 “사람들의 인지 능력은 유지되거나 서서히 증가하는 반면 정보통신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둘 사이의 간극을 온라인 상의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가 채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는 소셜미디어의 특징도 탈진실 현상을 강화한다. 소셜미디어 내에선 개인의 관심사에 맞는 콘텐츠만 추천되는 ‘필터버블(Filter bubble)’이 존재한다. 필터버블이란 이용자가 소셜미디어 사용 시 제한된 정보를 제공받는 것을 말한다. 인스타그램(Instagram), 유튜브(Youtube) 등의 인터넷 정보 제공자는 이용자의 성향에 맞는 정보를 여과해 제한된 정보를 제공한다. 최 교수는 “필터버블은 이용자 개인의 성향을 제한하고 견해를 더욱 좁힌다”고 설명했다. 필터버블의 작동원리인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인터넷 검색 기록, 쿠키 등을 수집해 이용자가 플랫폼에 더 오래 머물도록 유도한다. 심 교수는 “이용자는 알고리즘을 통해 익숙한 콘텐츠만 보게된다”며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사실에 대한 가치 대신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콘텐츠’에만 집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에겐 현명함이 필요하다”
탈진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합리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기술적인 해결책 마련과 법적 제재 강화에 앞서 개인의 합리적인 정보 수용 태도가 우선시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 교수는 “내 견해와 판단이 항상 옳을 수 없단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나와 다른 생각, 견해, 판단이 존재함을 인지하고 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정보를 숙고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심 교수는 “탈진실 현상의 극복을 위해선 사이버렉카를 구독하지 않고 가짜뉴스의 조회수를 올리지 않는 등의 실제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 활성화는 탈진실을 벗어나기 위한 실마리다. 미디어 리터러시란 다양한 매체가 제공하는 정보를 해석, 분석, 평가, 생산할 수 있는 총체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핀란드에선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실시된다. 또한 매년 미디어 교육을 위한 ‘뉴스 주간’ 행사를 진행한다. 해당 주간 동안 아동과 청소년은 매체에 대한 이해력을 함양하고,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을 성찰한다. 뉴스 주간이 끝나면 ‘미디어 리터러시 주간’이 이어진다. 이 기간엔 전국 약 50개의 단체와 교육기관이 협력한 교육이 전개된다. 심 교수는 “미디어 사용이 필수인 시대에선 국가적 차원의 교육을 통해 종합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진실 현상의 해결을 위해선 허위 정보를 식별하는 정책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 국회에선 가짜뉴스에 관한 세부 법안 제정을 논의 중이다. 그러나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기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윤 교수는 “정보를 받아들일 때 작용하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완전히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개인이 가짜뉴스를 식별할 수 있도록 정책적 처방이 지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페이스북, 구글(Google) 등 인터넷 정보 제공자가 자체적인 가짜뉴스 모니터링을 강화하도록 자율 규제 방식의 협력을 제안하고 있다. 


정보 습득이 힘이었던 과거와 달리, 정보가 넘쳐나는 21세기에선 ‘제대로 된’ 정보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과거엔 TV와 신문의 뉴스가 정보 습득의 유일한 수단이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하루에도 수십번 지인과 공유하는 출처 불명의 소셜미디어 링크와 온라인 커뮤니티 또한 정보가 됐다.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리적 의심’이다. 성숙한 시민 사회는 정보의 홍수 속 허위 정보를 식별해내는 개인들이 얼마나 있는가에 달려있다. 


참고문헌 
KBS 특집 다큐멘터리, <호모 미디어쿠스 1부 : 왜 허위정보에 속는가> (2021)
채지선. (2020.04.25). ‘당신이 혹했던 코로나 속보, 따져보니 가짜뉴스’ <한국일보>
서현수. (2021.02.12). ‘누가, 왜 그 뉴스를 만들었나 되묻는 나라’ <한겨레21>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