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미추홀구에 위치한 ‘수성당 약국’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분홍빛 가운을 입은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약사이자 시민사회 활동가로서 40년 가까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김말숙(약학 85졸) 동문이다. 김 동문은 오늘도 약국을 찾은 손님을 환한 미소로 맞이한다. 본지 기자단은 온기가 넘치는 그 공간에서 김 동문이 그려온 삶의 궤적을 좇았다.
 

언더서클 출신 대학생, 약사가 되다
지난 1981년 본교 약학과에 입학한 김말숙(약학 85졸) 동문은 학업뿐만 아니라 여러 동아리 활동을 즐기는 학생이었다. 그는 독서 모임, 학보 제작, 미술 동아리 ‘설미’ 등에 참여했다. 당시 대학엔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비공개 동아리인 언더서클이 활성화돼있었다. 그는 언더서클에서 독서 모임을 가지며 사회 문제에 눈을 떴고 그때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김 동문은 본교 3학년 재학시절 학보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약대는 수업이 많아 공부를 따라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했어요”라면서도 “그래도 대학생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김 동문에게 그림은 바쁜 대학 생활의 도피처였다. 김 동문은 “설미에서 그림을 그리며 대학 생활에서 느꼈던 피로를 해소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대학 재학 시절 ‘재인천약학대학총연합회’에서의 경험은 김 동문의 삶에 큰 영향을 줬다. 그는 해당 단체의 회장을 맡아 강원도 영월, 인천 자월도 등 의료 환경이 열악한 농촌 지역에 방문해 투약 봉사와 근로 봉사를 했다. 김 동문은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취약계층을 도우며 약대생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투약 봉사는 김 동문이 약사이자 시민사회 활동가로 진로를 설정한 계기가 됐다. 그는 “총연합회에서 활동하며 앞으로 우리 사회에 봉사하는 약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어요”라고 말했다. 김 동문은 현재까지 외국인을 대상으로 무료 투약 봉사를 해오고 있다.

김 동문은 지역 주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약사다. 그는 약국에서 만나는 주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약 20년 전 약국을 찾았던 손님들과도 여전히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연락을 주고받는다. 김 동문은 “약사는 지역 주민의 건강을 지키는 최전방의 파수꾼이라고 생각해요”라며 “단순히 의약품을 판매하는 걸 넘어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보듬고 치유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죠”라고 말했다. 그는 약사로서 지역사회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제1회 약사봉사대상과 대한약사회장 표창패를 수상하기도 했다. 김 동문은 코로나19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나 이동 투약 서비스가 확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약사가 나서서 시각장애인이나 독거노인과 같이 재택치료가 어려운 이들을 도와야 해요”라고 설명했다.
 

“약사지만 시민사회 활동가입니다”

▲ 김말숙 동문이 지난 2016년 건립된 인천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시민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김 동문: 우측에서 세 번째)
▲ 김말숙 동문이 지난 2016년 건립된 인천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시민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김 동문: 우측에서 세 번째) <사진제공=김말숙 동문>

김 동문은 대학 졸업 후 약사로 일하는 동시에 다양한 분야의 시민단체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봉사를 통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여성 시민단체인 인천 YWCA의 회장으로서 세월호 인천 시민대책위원회를 조직한 김 동문은 지난 2015년부터 현재까지 세월호 추모 행사를 주도하고 있다. 인천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의 대표인 그는 지난 2016년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인천시 부평공원에선 그가 건립을 추진한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김 동문은 인천시민사회단체연대(2017년-현재), 한국 걸스카우트 인천연맹 (2018년-현재), 인천광역시 민간동행위원회(2021-현재) 등 여러 시민단체에서 임원직을 지내며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폭넓은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최근 김 동문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의제는 ‘지속가능발전’이다. 김 동문이 대표로 있는 수성당 약국 간판엔 ‘지속가능발전 목표와 함께하는’이란 문구가 적혀있다. ‘지속가능발전’은 지구환경의 보전을 위해 자연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경제, 사회 부문이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지구가 살아야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어요”라며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동문는 지난 2018년 인천지속가능협의회 상임회장으로서 인천 굴업도에 직접 방문해 쓰레기 정화 활동을 펼쳤다. 그는 “환경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하다 인천 근처 섬에 많은 양의 쓰레기가 떠밀려온단 사실이 떠올랐어요”라며 “굴업도에 100명의 인천 시민들과 함께 가서 온종일 해양 쓰레기를 수거했죠”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 지난 2018년, 김말숙 동문이 몽골 ‘인천 희망의 숲 조성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김말숙 동문]
▲ 지난 2018년, 김말숙 동문이 몽골 ‘인천 희망의 숲 조성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김말숙 동문>

김 동문은 가장 기억에 남는 봉사로 ‘몽골 인천 희망의 숲 조성 사업’을 꼽았다. 이는 기후 위기에 대응해 몽골 사막 다신칠링솜과 바양노르솜 지역에 나무를 심는 사업이다. 김 동문은 지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직접 몽골을 방문해 묘목을 심었다. 그는 “처음 몽골에 가서 나무를 심으면서 ‘10년 후 이 나무가 푸르게 자라면 나무 그늘 아래서 도시락을 먹자’고 다른 자원활동가들과 약속한 게 기억나요”라며 “10년이 지난 2018년에 정말 나무 밑에서 도시락을 먹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뜻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평화의 소녀상은 인천 시민이 십시일반 모금한 결과 세워질 수 있었다. 굴업도 환경 정화 역시 시민뿐 아니라 선박회사, 매립지 공사, 지자체 등 여러 단체가 협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동문은 “봉사를 하다보면 개인이 혼자서 해낼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라며 “많은 사람의 참여가 모여 유의미한 변화가 이뤄질 때 보람을 느끼죠”라고 말했다.
 

‘나를 위한 두 가지 질문’

▲ 김말숙 동문이 그린 작품 '바람이 내게로 온다 2', '바람이 내게로 온다 4' 의 모습이다. [사진제공=김말숙 동문]
▲ 김말숙 동문이 그린 작품 '바람이 내게로 온다 2', '바람이 내게로 온다 4' 의 모습이다. <사진제공=김말숙 동문>

김 동문은 자기 계발의 한 영역으로 취미를 가질 것을 조언한다. 김 동문은 미술가이자 연극배우다. 그는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여러 차례 전시회에 출품했다. 지난달부턴 ‘대한민국 나비효과 전’에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8년 연극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지난 2018년 <나의 초상>에서 연기자로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는 “취미생활을 하며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어요”라며 “특히 연기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일생을 살아볼 수 있어 한 번쯤 도전해보는 걸 적극 추천해요”라고 제안했다.

김 동문은 후배들에게 다양한 일에 도전하되 좋아하는 일은 꾸준히 시도해보라고 말한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볼 것을 권유한다. 내가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할까, 그리고 내가 좀 더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김 동문은 “시민단체에서 일하다보면 사람들이 잠시 일하다가 떠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워요”라며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면 공을 들여 그 일에 온전히 전념해보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약사 은퇴 후 작은 장애인 복지관을 세우는 것은 김 동문의 오랜 목표다. 발달장애 3급 아들을 둔 그는 성인이 된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부족하단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껴왔다. 김 동문은 “특히 보호자가 없는 발달 장애인은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요”라며 “그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스스로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김말숙 동문은 “소소한 일상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표현한다. 인터뷰 말미, 그는 후배들에게 평범한 삶에 최선을 다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미소지었다. 김 동문은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며 사회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숙명인들을 많이 만났어요”라며 “우리 후배들도 숙명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고 살아가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약국 조제실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에선 삶에 대한 확신이 느껴졌다. 김 동문의 말처럼 내가 영위하고 있는 삶에 자부심을 가져보자.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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