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우리는 빵을 위해 싸우지, 또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Yes, it is bread we fight for, but we fight for roses, too)’ 190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구호에서 영감을 받은 이 문장은 미국의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 ‘빵과 장미’의 일부다. 빵은 최소한의 배고픔을 해결할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한다. 오는 8일(화) 114번째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따라가보자.
 

광장으로 나온 여성들
세계 여성의 날의 시초는 19세기 초 미국에서 일어난 한 여성 운동이다. 지난 1908년, 미국 뉴욕 루트커스 광장엔 여성 노동자들이 모였다.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숨진 여성 노동자를 추모하고 여성의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듬해인 지난 1909년엔 미국사회당이 ‘전국 여성의 날’을 선포했다. 선포 1년 후 덴마크 코펜하겐의 ‘국제 사회주의 여성노동자 회의’에선 세계 여성의 날을 공식화했다. 그 뒤로 지난 1911년엔 독일, 덴마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헝가리에서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가 연이어 개최됐다.

러시아에서 일어난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로 세계 여성의 날의 의미가 확산됐다. 지난 1917년 3월 8일 러시아 여성노동자들은 1차대전 종결과 빈곤 해결을 위한 시위를 벌여 임시정부로부터 참정권을 얻어냈다. 해당 시위는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인 2월혁명과 10월 혁명으로 이어졌다. 이후 새로운 정부에게서 여성의 가사와 육아에 관한 복지 정책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지난 1919년엔 중앙집행위 산하에 독자적인 여성부 또한 설립됐다. 이후 유엔(United Nation, UN)은 세계 여성의 해인 지난 1975년부터 매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했다.

한국이 기억한 ‘여성의 날’
한국에도 ‘여권통문의 날’로 불린 전통적인 여성의 날이 존재했다. 지난 1898년 서울 북촌 양반가 부인들에 의해 발표된 여성인권 선언문인 ‘여권통문’은 미국에서 선포된 ‘전국 여성의 날’보다 약 10년 앞섰다. 천부인권 사상을 바탕으로 여성이 겪는 억압에서의 해방이 여권통문의 핵심이다. 여권통문에 따라 부인들은 한국 최초의 여성운동단체인 ‘찬양회’를 조직했다. 이후 최초의 사립 여학교인 순성여학교를 설립하고 여성 교육권과 경제권 및 참정권 운동을 펼쳤다. 1920년대엔 국내 최초의 서양화가인 나혜석과 박인덕을 비롯한 여성 인권운동가들이 세계 여성의 날을 ‘국제 부인의 날’이라 부르며 기념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과 시대적 편견으로 한국의 전통 여성의 날은 공개적으로 기념되지 못한 채 간신히 명맥만을 이어왔다. 해방 이후에도 세계 여성의 날은 독재 정권 하에 오랜 기간 탄압받아야 했다.

한국은 지난 1985년부터 세계 여성의 날을 공식적으로 기념해왔다. 성차별을 공적 의제로 다루기 위해 설립된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한 제1회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된 것이다. 한국여성대회는 매년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올해의 여성운동상’ ‘성평등 디딤돌’ ‘성평등 걸림돌’을 시상하며 성평등을 진전 혹은 퇴행시킨 개인과 단체를 선정하고 있다. 이는 축제의 장으로써 여성들의 교류를 도모하는 한편 성평등과 성차별 의제에 관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세계 여성의 날은 각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되고 있다. 대부분의 공산국은 세계 여성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인 러시아 공산혁명이 지난 1917년 러시아 여성노동자들의 세계 여성의 날 시위에서 촉발됐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세계 여성의 날을 ‘3·8부녀절’이라 부르며 여성 노동자들에게 유급휴가나 단축업무를 보장한다. 러시아와 베트남 역시 여성노동자에게 유급휴가를 제공한다. 한편 한국은 ‘양성평등기본법’이 통과됨에 따라 지난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법정 기념일로 공식 지정했다. UN이 세계 여성의 날을 공표한지 43년만의 일이다. 오경진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세계 여성의 날의 법정 기념일화는 국가가 여성의 날의 의미를 국민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단 것을 인정한 것이다”며 “법정 기념일화를 넘어 성평등을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전히 필요한 빵과 장미
세계 여성의 날이 제정된지 114년이 지났지만 여성의 참정권과 생존권은 여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빈곤 구제를 위한 국제 비영리 단체인 ‘원(ONE) 캠페인’의 지난 2017년 자료에 따르면 남수단의 여자아이 중 73%가 초등학교에 가지 못했다. 여성성기훼손 문화인 ‘할례(割禮)’와 조혼 풍습 등은 현재까지도 많은 아프리카 여성들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온 나탈리아(Natalia Neves do Nascimento, 정치외교 20) 학우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재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의 성평등 문화는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의 기준에 못미친다. 지난 2021년 9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0년 성별 임금 격차’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는 35.9%며 이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큰 수치다. 여성의 정치참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20년 기준 중앙부처 고위 공무원 여성 비율은 8.5%에 불과하며 여성 장관의 비율은 지난 2020년 33%에서 지난 2021년 17%로 하락했다. 오 사무처장은 “우리나라는 여성 인권에 관한 법 제도가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독특한 경우다”며 “명목적인 평등을 지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평등을 추구해야한다”고 말했다.
 

세계 여성의 날의 의미를 이어가려면 성차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자리잡아야 한다. 지난달 21일 한 대통령 후보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차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있는 나라다. 114년 전 루트커스 광장에서 외치던 루트커스 여성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우리에게도 썩지 않을 빵과 시들지 않을 장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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