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하철 임산부 자리를 법으로 확보해주세요’란 제목의 청원이 게재됐다. 해당 청원엔 ‘자리를 호의로 양보해주면 좋겠다’며 ‘임산부가 아닌 이가 배려석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란 내용이 담겼다. 이처럼 임산부 배려석이 도입된 지 약 10년이 흘렀지만 그와 관련한 논의와 갈등은 아직 진행 중이다. 임산부 배려석의 확대는 이뤄졌지만, 우리 사회의 배려심도 확대됐을까. 임산부 배려석 현황과 이를 둘러싼 사회 논의를 살펴보자.
 

'비워두는' 좌석
임산부 배려석은 임신으로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을 겪는 여성을 위해 마련됐다. 지하철을 비롯한 서울시 대부분의 대중교통에 설치된 해당 좌석은 시내버스 약 7400대 중 7000대에 존재한다. 또한 지하철 한 칸당 두 자리씩 임산부 배려석이 설치됐다. 이현지(한국어문 20) 학우는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몸에 주는 부담은 이동에 제약을 가한다”며 “임산부 배려석의 설치는 임산부가 사회적 약자로서 배려받아야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교통공사는 임산부들의 원활한 좌석이용을 위해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지난 2013년부터 보건복지부는 임산부에게 엠블럼이 부착된 가방 고리와 배지를 배포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09년 교통약자석에서 임산부 배려석을 분리하며 자연스러운 임산부 배려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했다. 이에 지난 2019년 한국리서치의 조사 결과 성인남녀의 약 80%는 임산부 배려석의 설치 목적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임산부에게 해당 좌석을 양보해야 하는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어느 정도 마련된 것이다. 서울교통공사 홍보실 담당자는 “강제성 부여보다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공감대 형성이 더 중요하다”며 “홍보와 합동 캠페인을 지속해서 시행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배려의 방향은 어디로
신체적 제약에도 임산부를 특혜자로 보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리서치의 조사에선 임산부 배려석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110명 중 11%가 ‘임산부 배려석이 역차별로 느껴진다’고 답했다. 임산부 배려석이 역차별이란 일부 주장은 배려석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한다. 실제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전체 응답자의 약 87%는 임산부가 아닌 이의 배려석 착석을 목격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자발적인 비워두기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김동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연구본부장은 “사람들에게 임산부 배려의 필요성을 계속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란 표현은 임산부가 아닌 태아를 위해 배려할 것을 강조한다. 실제로 서울시는 지난 2015년 임산부 배려석의 좌석과 등받이, 바닥이 분홍색으로 이뤄진 ‘핑크 카펫’을 만들었다. 핑크 카펫의 바닥엔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란 문구가 기재됐으며 ‘임산부 엠블럼’엔 ‘미래 주인공이 될 새 생명을 잉태한 임산부를 환영한다’는 뜻이 담겼다. 해당 디자인의 문구들은 오로지 태아만을 가리키고 있다. 정작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임산부를 위한 문구는 찾아볼 수 없다. 이 학우는 “해당 문구가 임산부를 ‘새 생명을 잉태한 이’라고만 정의 내린다면 ‘임신한 여성인 임부’와 ‘출산한 여성인 산부’를 통틀어 이르는 ‘임산부’란 단어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것이다”고 말했다.

당연함에서 비롯하다
임산부 배려석에서 진정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임산부 배려 인식 및 실천 수준 온라인 설문조사’에선 1500명의 임산부 중 44.1%가 ‘대중교통 배려석 이용 중 불편감’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학우는 “지하철을 타다가 앞에서 걸어오던 임산부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 남성을 본 경험이 있다”며 “그때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했는데,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실제 지난 1월엔 한 남성이 임산부를 앞에 두고도 배려석에 앉아 있는 사진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지 않는 대안이 거론되지만 이는 임산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행위다. 임산부가 오면 자리를 양보하는 ‘비켜주기’의 경우 임산부가 먼저 배려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김 본부장은 “배려 문화를 통해 비워두는 자리로 만드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했다. 양보를 유도하는 부산시의 ‘핑크라이트’도 비슷한 사례다. 핑크라이트가 설치된 전동차에선 임산부 탑승 시 좌석의 조명이 반응하고 배려를 유도하는 음성 안내가 나온다. 서울교통공사 담당자는 “인위적인 장치는 불편과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해당 기술이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 시켜 임산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임산부가 눈치를 보며 이용하는 임산부 배려석은 본래 목적에 맞지 않다. 새로운 방안보단 배려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10월에 시행한 ‘임산부 배려 인식 및 실천 수준 온라인 설문조사’에선 임산부 2명 중 1명이 ‘임신기간 동안 배려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임산부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배려는 임신한 여성의 이동권을 위한 최소한의 당위다. ‘비워두기가 나에게 손해인가 아닌가’를 고민하기 보다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는 날이 오길 희망한다.


참고문헌
정승희. (2019.12.30). [기획] 임산부 배려석 자리양보는 의무인가, 배려인가? 한국리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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