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중심이 되는 수어는 농인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지후트리 ‘수화 아티스트’는 음성 언어를 사용하는 청인이지만 농인의 시각언어인 수어를 활용한 예술을 선보인다. 그는 분야를 넘나드는 예술을 통해 대중이 수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그의 손으로부터 피어난 수어 예술을 살펴보자.


■지후트리의 뿌리를 살피다
지후트리 수화 아티스트는 자신을 ‘손소리꾼’이라고 표현한다. 수화 아티스트의 한글표현인 손소리꾼은 손을 사용해 소리를 전달한다는 의미다. 그가 직접 정의한 직업명인 ‘수화 아티스트’는 두 가지의 뜻을 지닌다. 하나는 한자 ‘손 수(手)’, ‘말할 화(譮)’를 사용해 수어로 이야기한다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한자 ‘손 수(手)’, ‘그림 화(畫)’를 사용해 수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그는 수화 아티스트라는 직업명의 두 가지 뜻처럼 수어 그림, 수어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활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화 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가족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장애가 수화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계기가 됐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면역력이 약해지신 어머니는 한쪽 청력을 갑자기 잃으셨어요. 아버지치럼 저희 가족을 돌봐주시던 삼촌은 사고로 한쪽 팔을 잃으셨죠. 가족들은 장애를 원망하기보단 덤덤히 받아들였어요. 자신의 불편한 점을 인정하고 고민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적응해 나가셨죠. 그들이 보여준 긍정적인 모습은 제게 많은 영향을 줬어요. 어머니의 청각장애로 알게 된 수어, 사고로 팔을 잃은 삼촌, 콤플렉스였던 제 손이 떠올랐어요. 이 세 가지의 교집합이 손이었죠. 그때 수어로 예술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수어를 그림으로 나타내기 위해 어떤 연습을 하셨나요?
영수증 뒷면에 손을 그리는 연습을 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종이에 선 하나만 잘못 그어도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할 것 같아 두려웠죠. 이런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쉽게 구할 수 있는 영수증을 활용했어요. 한번 사용된 뒤 구겨지거나 버려진 영수증이 아까워 친구들에게 영수증이 있으면 다 달라고 했죠. 그렇게 모은 영수증을 스테이플러로 찍어 저만의 연습장을 만들었어요. 이 연습장을 가지고 다니며 그림 연습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두려움이 사라졌고 과감하게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수화 아티스트로 자리 잡은 지금, 영수증을 보시면 특별한 감정이 들 것 같아요.
어떻게 영수증에 그림 연습을 시작했는지 저 스스로도 신기해요. 아직도 영수증을 가지고 다니는데 볼 때마다 그때가 떠오르죠. 환경을 생각해 영수증을 연습장으로 택했어요. 작은 행동일지라도 환경을 위해 직접 재활용을 실천했단 점에서 기특하단 생각이 들어요. 과거의 저를 칭찬해주고 싶네요.


■도화지 위 수화(手畫)를 퍼포먼스로
지후트리 수화 아티스트는 수어 그림을 통해 수화 아티스트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여러 차례 개인 전시회를 개최했다. 또한 지난 2014년엔 프랑스 파리의 세계적인 미술 전시판매장 루브르 아트페어에 그림 <꽃>을 출품하기도 했다. 그는 장애를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을 퍼포먼스에 적용했다. 지후트리 수화 아티스트는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2021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시상식’에서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다.

가족을 주제로 한 그림 ‘아빠’와 ‘가족’에서 주황색, 빨간색과 같이 채도가 높은 색이 눈에 띄어요. 원색을 사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림 ‘아빠’에 사용된 홍시색은 제가 아빠와 찍었던 사진 속에 있는 색이에요. 아빠와의 여행에서 봤던 노을색도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어요. 외할머니께서도 원색 옷을 좋아하셨어요. 저한텐 그들이 좋아한 것이나 함께한 경험의 색깔이 강렬하게 남아있어요. 제가 시골에서 자라서 자연 관찰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의 색과 닮은 원색을 그림에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 지후트리의 그림 '가족'이다.

그림 ‘꽃’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궁금해요.
이 작품은 꽃이 만개한 때를 나타낸 그림이에요. 저는 사람마다 꽃을 피우는 시기가 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통해선 저라는 사람이 꽃을 피우는 시기를 표현했어요. 꽃은 금방 지지만 꽃을 피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인 만큼 더 아름답게 보이죠. 꽃이 피고 지는 생성과 소멸을 이 그림에 담았어요. 제가 언제 꽃을 피울지 모르지만, 수화 아티스트로서 했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저와 비슷한 분야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어요. 

수어 그림에서 나아가 수어 퍼포먼스까지 진행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현대무용에서 사용하는 몸짓이나 손짓이 수어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평면적인 수어 그림에서 나아가 수어를 입체적으로 나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또 제가 표현하려는 감정이나 생각을 그림보다 더 복합적으로 전달하고 싶어 수어 퍼포먼스를 함께 진행하게 됐어요.

삼성전자, 룰루레몬 등 다양한 기업과 협업을 하셨어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협업은 무엇인가요?
‘악당광칠’이란 국악밴드의 음악에 맞춰 수어를 표현한 삼성전자와의 협업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를 포함한 4명의 출연진 중 한 명은 보깅(Voguing), 한 명은 한국무용 댄서였고 나머지 한 명은 태권도 동작을 응용해 춤을 췄어요. 생소한 예술인 수어가 널리 알려진 예술과 협업한 경험은 저와 비슷한 영역을 꿈꾸는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수화 아티스트로서 뿌듯함이나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제3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뿌듯함을 느꼈어요. 장애인이 주인공인 행사에서 제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었다는 게 뜻깊었죠. 참여자분들이 찾아오셔서 제 퍼포먼스를 잘 봤다고 말씀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었죠.

수화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데 겪은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수화 아티스트란 직업은 정해진 길이 없어 어려웠던 것 같아요. 처음엔 황무지를 개척하는 느낌으로 시작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화 아티스트란 직업을 생소해 했죠. 농인이 아닌 청인이 수어로 예술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제게 수화를 가르치려 하신 농인분도 있었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SNS에 수어 그림을 올렸어요. 점차 사람들이 수어에 대해 궁금해하고 더 알려달라고 했죠. 이를 통해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끼고 지금까지 수화 아티스트란 직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어요.


■“수화로 서로를 그리다”
최근 방탄소년단이 신곡 ‘Permission to Dance’에 국제 수어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지후트리 수화 아티스트는 수어에 대한 높은 관심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사람들이 수어에 관심을 갖는 동시에 농인들의 문화에 공감하길 바란다. 그가 앞으로 수화 아티스트 활동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일까.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를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모두가 잠재적 장애인이란 생각을 가져야 해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장애인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을 볼 때 ‘이 시설은 왜 만들어졌을까?’ ‘이렇게 넓게 만든 이유는 뭘까?’ 등 사소한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러한 작은 관심으로부터 배리어 프리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장애인이 겪고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장애인들이 계속해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요. 이런 목소리가 사회나 정치에 반영돼야 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정책이 만들어져요.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배리어 프리를 이룰 수 있죠.

수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을까요?
수어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수어를 활용한 예술들이 생기는 건 정말 좋은 현상이에요. 우선 수어는 손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썹의 위치나 표정 등을 사용한단 것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또한 수어에 대한 기초적인 문화를 이해해야 해요. 본격적으로 수어를 공부하기 전에 수어나 농인에 관한 책을 읽는 것도 추천해요.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또 저와 같이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환경 때문에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보면 속상하더라고요. 그래서 지후트리 장학재단을 만들어 청소년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그게 저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목표예요.

마지막으로 수어를 낯설게 느끼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2016년에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됐어요. 이는 음성언어인 한국어와 농인의 수화 언어가 동등한 자격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해요. 수어도 한국어, 영어, 독일어처럼 똑같은 언어이기 때문에 너무 낯설어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그들이 만들고 향유하는 농문화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지후트리 수화 아티스트는 본지 기자단에게 안녕, 사랑, 감사를 뜻하는 수어를 알려줬다. 간단한 수어를 배운 경험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지후트리 수화 아티스트는 일상 속 작은 관심이 변화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들이 속해 있는 문화와 사용하는 언어에 귀 기울여보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우리의 행동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를 만들 것이다.


*농인이 사용하는 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임을 밝혀 수화언어의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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