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사람들은 ‘독립’이란 단어를 흔히 사용한다. ‘독립적인 성격’ ‘본가에서 독립하다’ ‘대한민국 독립 만세’ 등 다양하게 쓰인다. 어떤 사람은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하는 것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곳으로 나아간다. 그들은 이전과는 달리 참고 자료도, 자원도 없는 곳으로 간다. 필자가 조명할 주제는 독립영화다.

필자는 독립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눈에 띄게 상업영화를 선호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업영화의 정갈한 세트장이나 인지도 있는 배우가 주는 익숙함이 편했다. 그래서 필자는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중에 하나를 고르자면 상업영화를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필자는 올해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서이제 작가의 「0%를 향하여」를 읽고 처음으로 독립영화에 관심이 생겼다. 이 책은 독립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암울한 독립영화계의 현실에 회의감과 절망을 느끼며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주인공이 영화계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독립영화에 생경한 필자에게 낯설게 다가왔다. 이를 계기로 필자는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몇 군데를 찾았다. 영화를 고르는 일은 호기롭지 않았으며 일정 수준의 재미를 보장받지 못하리라는 감각은 여전히 유쾌하지 않았다. 

그렇게 극장 방문을 미뤘던 필자가 몇 차례나 시청한 영화는 이우정 감독의 <최선의 삶>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임솔아 작가의 「최선의 삶」이다. 필자가 이 책을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영화화됐으며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 골랐다. 책에 등장하는 장면을 영화에선 등장하지 않는 장면으로 치환한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배우의 연기력과 감독의 연출에 모자람이 없어 다시 놀랐다. 그래서 한 번 더 관람했다. 사람을 짓밟으면서까지 몸싸움 장면을 연출하고 싶지 않아 이를 생략했다던 감독의 말이 생생하게 들렸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다만,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관객 수엔 슬픔을 느꼈다.

집에 돌아온 뒤 상영관에서 받은 포스터와 굿즈(Goods)를 만지작거리며 영화를 기억했다. 다른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가 소진되지 않은 포스터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엔딩 크레딧에서 본 수많은 제작진들의 사연이 궁금했다. 어떻게 영화 촬영을 위해 자택을 제공하게 됐는지, 함께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주고받은 조언의 내용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떠한 보상도 없이 오직 영화만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뛰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처음엔 그들의 행동을 납득하지 못했지만 한편으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잘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자본에 기대지 않아도, 어쩌면 기대지 않았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창작의 효과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 효과를 누군가 알아주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0%를 향하여」에서 독립영화에 몸담은 사람들은 독립영화는 망했으며 이제는 상업영화를 해야 한다고 절망한다. 아예 영화판을 떠나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필자는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고 이제는 우리가 그 노력을 알아보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삶에서 놓친 최선을 포착하기 위해 서로의 최선을 믿어야 한다.

법 20 김지현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