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1일(화)은 우리나라의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다. 우리 선조는 명절이 오면 새 한복을 장만하거나 갖고 있던 한복을 깨끗하게 세탁해 입는 풍습인 ‘빔’을 즐겼다. 이로 인해 오늘날에도 많은 현대인이 한복을 입고 명절을 보내곤 한다. 고궁을 방문할 때나 문화예술 콘텐츠를 감상할 때도 한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엔 전통한복이 아닌 다양한 소재와 새로운 형태로 제작된 한복도 등장했다. 실용성과 한국적인 미를 전부 갖춘 21세기 한복은 우리의 삶에 얼마나 다가왔을까.


전통 의복, 현대의 유행이 되다
우리 선조의 생활복인 한복은 서양식 의복이 전파된 이후 옛것으로 여겨졌다. 19세기 후반 국내에 처음 도입된 양복은 대한제국 지도층의 옷차림으로 지정되며 대중에게 알려졌다. 이어 20세기 초반, 조선총독부가 대한제국의 왕권과 전통문화의 계승을 막기 위해 서양 의복 문화를 확산했다.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한복 대신 양복을 입는 사람이 많아졌다. 지난 1934년에 열린 국내 최초 패션쇼 ‘조선 유행 여자 의복 감상회’를 통해서도 당대에 양복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점차 한복은 의식을 진행하거나 특별히 예절을 차릴 때만 착용하는 옷이 됐다.

한복 대여 사업의 등장은 전통한복이 다시 부흥하는 계기가 됐다. 고가의 맞춤 한복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한복 대여 사업은 지난 1998년 개업한 ‘황금바늘’에 의해 시작됐다. 길기태 황금바늘 대표는 “당시 외환 위기로 국가 경제가 악화해 서민이 예복용 한복을 구매하기 쉽지 않았다”고 창업 계기를 설명했다. 지난 2013년부터 한복 착용 시 고궁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혜택도 제공되며 관광이나 사진 촬영을 위해 전통한복을 대여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류채림(일본 19) 학우는 “전주 한옥 마을에서 전통한복을 대여해 입어본 적이 있다”며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국의 멋을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전통한복의 부흥은 ‘신(新)한복’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신한복은 2010년대 나타난 용어로 전통한복의 고유한 특성은 유지하되 소재나 형태를 현대에 맞게 변형한 한복을 뜻한다. 1980년대 일어난 *민중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제작된 생활한복이 신한복의 시초다. 이후 활동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복의 형태가 간소화되면서 신한복의 개념이 한복 시장에 정착했다. 본교 김소희 의류학과 초빙대우교수는 “한복의 대중화를 위해선 소재와 형태가 현대인의 생활 방식에 맞게 변해야 한다”며 “기능성과 편리함을 고루 갖춘 한복이 활발하게 제작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신한복 중 하나인 생활한복은 일상에서 편히 입을 수 있는 원단과 형태로 제작된다. 생활한복엔 면, 리넨(Linen), 폴리에스테르(Polyester) 등 탄력성이 높은 직물이 사용된다. 이는 비단, 모시, 무명 등 훼손되기 쉬운 소재로 제작돼 관리가 어렵다는 전통한복의 단점을 보완한다. 현재 다양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생활한복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지난 3월 의류 브랜드 ‘퓨즈 서울(Fuse Seoul)’은 저고리 셔츠와 생활한복 바지를 출시했다. 이어 지난 6월엔 생활한복 브랜드 ‘리슬(Leesle)’과 기성의류 브랜드 ‘스파오(SPAO)’가 협업해 현대식 두루마기와 저고리 잠옷 등을 판매했다. 손서연(한국어문 20) 학우는 “특별한 졸업 사진을 남기기 위해 생활한복을 착용했다"며 “전통한복보다 활동하기 편하고 개성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케이팝(K-POP) 가수가 무대 의상으로 착용한 한복 또한 신한복에 속한다. 최근 ‘블랙핑크(BLACKPINK)’ ‘방탄소년단(BTS)’ ‘마마무(MAMAMOO)’ 등 여러 유명 케이팝 가수가 무대 의상으로 **철릭 원피스, 흑색 곤룡포 등을 입어 화제에 올랐다. 해당 의상은 전통한복 고유의 선과 색을 유지하면서도 무대의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화려함이 부각됐다. 김 교수는 “한국의 특징을 살린 의상은 젊은 층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며 “이로 인해 한복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증가하는 추세다”고 말했다.

한복은 국내 기업의 새로운 광고 소재로 활용된다. 인터넷 뱅킹 기업 ‘토스(Toss)’ 광고엔 전통한복을 입고 자동차에 탑승하는 모델이 등장한다. 전통과 현대의 공존은 이질적이지만 신선한 인상을 남긴다. 해당 광고는 소비자의 이목을 끌기 위해 한복을 이용한 사례다. 지난해 7월 공개된 한국관광공사의 지역 홍보 영상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 서울’에선 한복 정장과 오방색 문양을 소매에 새긴 신한복이 사용됐다. 해당 영상은 약 4760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한국의 멋과 특징을 잘 표현했다는 반응을 얻었다. 박채원(문헌정보 20) 학우는 “한복을 활용한 문화사업의 성장은 한복이 옛것에 불과하다는 관념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고 예상했다.

다채로운 우리 옷 ‘입고’ ‘보자’
국내 문화기관은 한복 착용을 장려하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지난 3월 31일(수)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한복 입기 좋은 날’로 지정했다. 당일 공개된 문체부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해당 기념일은 한복이 언제 어디서나 입을 수 있는 옷이란 인식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문체부는 한복진흥센터와 협업해 업무 시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한복 근무복을 개발하고 있다. 한복 근무복은 문화예술기관 종사자에게 우선으로 보급된 후 관광 업계 종사자까지 확대 제공될 예정이다.

지난 6월 17일(목) 한국문화재재단과 문화재청은 한복을 해외에 알리고자 제작한 영상 ‘코리아 인 패션(Korea In Fashion)’을 공개했다. 코리아 인 패션은 국내 문화유산을 소개하고 관광지를 홍보하는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유명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은 해당 영상을 통해 꽃과 봄을 주제로 한 신한복 31점을 선보였다.

종로문화재단은 지역 특성을 반영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한복의 대중화를 도모한다. 서울시 종로구엔 경복궁, 광화문, 북촌·서촌 한옥 마을 등 많은 역사 문화 유적지가 위치한다. 종로문화재단은 해당 유적지에서 관광객이 올바른 한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복 대여점 지원 사업을 시행 중이다. 이외에도 한복을 입고 종로구를 여행하는 동아리 ‘복동이’를 운영하며 한복의 자태를 가장 잘 살린 사람을 선발하는 ‘한복 뽐내기’ 대회를 주관한다. 오는 10월 9일(토)부터 24일(일)까지 보름 동안 개최되는 ‘2021 종로 한복 축제’에선 전통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대중문화 분야에서도 한복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26일(월)부터 지난 9월 18일(토)까지 브라질 재외한국문화원에서 우나영 작가의 ‘한복 일러스트(illustration)’ 전시회가 열렸다. 해당 전시에선 한복을 입은 서양 동화 속 주인공의 모습이 공개됐다. 전시 기간 동안 브라질 시민을 대상으로 한복 공예 수업과 기념품 지급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지난 4월 30일(금)엔 국내 게임 회사 ‘에어캡(AirCap)’이 캐릭터에게 한복을 비롯한 다양한 의복을 입히는 모바일 게임 ‘걸 글로브(Girl Globe)’를 출시했다. 에어캡은 게임 출시 2개월 전 진행한 시범 운영에서 국내외 이용자로부터 한복의 아름다움을 잘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걸 글로브는 해당 평가를 토대로 약 35만 명의 사전예약 신청자를 확보해냈다.
 

 

한복의 미래를 헤아리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한복 보전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동북공정은 중국이 옛 중국 영토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추진한 연구 프로젝트다. 중국은 최근 몇 년에 걸쳐 한복이 중국 전통 의복에서 파생됐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역사 왜곡 행위는 중국의 게임, 드라마,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선 우리나라의 전통을 잘 보존해 후대까지 계승해야 한다. 김예원(독일언어문화 21) 학우는 “현시대는 한국 역사의 가치를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한 시기다”며 “한국인으로서 우리 고유의 한복을 지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은 한복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관련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국내 대학에 개설된 한복 관련 전공은 배화여대 전통의상과, 원광디지털대 한국복식학과, 한국전통문화대 전통미술공예학과로 총 3개다. 길 대표는 “전통한복에 대한 사회의 수요가 낮아 관련 학부를 졸업해도 취업이 힘든 게 현실이다”고 한복 관련 학과 수가 적은 이유를 설명했다. 김 교수는 “한복이 시대적 흐름에 맞춰 발전하려면 한복의 역사를 심도 있게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복의 대중화를 위해선 비전공자를 위한 교육도 마련돼야 한다. 현재 본교 의류학과에선 한복의 형태를 이해하고 이를 도식화하는 강의 ‘한국 복식과 한스타일 패션’과 한복을 직접 제작하는 강의 ‘현대 예술과 전통 디자인’이 운영되고 있다. 반면 전 학우를 대상으로 한 한복 교양 강의는 개설되지 않았다. 류 학우는 “교양 수업이 개설된다면 평소 전통문화에 관심이 없던 학우도 한복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 학우는 “본교에 한복과 현대 의복의 차이를 배울 수 있는 교양 수업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한복 보전을 위한 노력은 우리나라 의복 문화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국가 간 문화 교류가 활발해진 요즘 자국문화와 외래문화가 충돌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김 교수는 “외래문화 사이에서 자국문화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전통을 계승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해 한복문화의 위상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복 시장의 전망 또한 현대인의 노력에 따라 달라진다. 길 대표는 “한복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선 한복진흥센터의 젊은 인재 양성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복은 19세기 후반 대한제국으로 양복이 전해지면서 생긴 명칭이다. 이 명칭은 ‘한국 고유의 의복’이란 뜻으로 서양식 의복인 양복과 구분되기 위해 지어졌다. 양복의 발달로 침체하던 한복은 21세기에 이르러 ‘신(新)한복’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문화의 핵심이 됐다. 본교 김소희 의류학과 초빙대우교수는 “서구 의복을 모방한 것에서 벗어나 한국인의 정신이 깃든 한복의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한국 의복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추석을 앞둔 지금, 한국적이고 다채로운 형태로 제작된 한복을 입어보는 게 어떨까.


*민중을 문화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상정하기 위해 1970~1980년대 동안 진행된 사회 운동임.
**고려 중기부터 조선 말기까지 문무관이 공복으로 착용한 전통 한복의 한 종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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