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은 음악에 맞춰 동작으로 감정과 의지를 표현하는 예술 행위다. 무용의 기본이 되는 몸짓은 인간의 가장 일차원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다. 이토록 단순한 몸짓을 어떻게 하면 더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는 예술가가 있다. 바로 무용가이자 공연 기획자로 활동하는 김혜연 안무가다. 김 안무가는 일상에서 예술의 흔적을 찾아내 이를 새롭고 신선한 형태의 안무로 창작한다.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치면서 무용을 알리고자 노력 중인 김혜연 안무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무용의 본질을 깨닫다
김혜연 안무가는 언제나 춤과 함께였다. 김 안무가는 “유치원 때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했어요”라며 “언니에게 직접 동작을 알려주며 부모님 앞에서 같이 춤을 추자고 부탁하곤 했죠”라고 말했다. 초등학교에 진학한 김 안무가는 방과후에 진행된 발레와 한국 무용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부모님의 허락을 구해야 했다. 김 안무가는 “무용을 배우게 해준다면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죠”라며 “좋아하던 간식도 쉽게 포기할 만큼 무용을 배우고 싶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수강하게 된 방과후 수업은 김 안무가가 무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가 됐다. 김 안무가는 “무용 선생님이 제 외모와 신체 감각이 무용가에 적합하다고 하셨어요”라며 “그 말을 듣고 중학교 때부터 정식으로 무용을 배우게 됐죠”라고 말했다.

김 안무가는 어머니의 특별한 교육 방식 덕분에 예술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김 안무가의 어머니는 독서를 중요하게 여겼다. 김 안무가는 “독서 습관 덕분에 새로운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김 안무가의 어머니는 모르는 게 있다면 주변인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하도록 김 안무가를 교육했다. 김 안무가는 “주변인으로부터 공부나 궁금한 것들을 배우면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어요”라며 “타인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지금의 창작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죠”라고 설명했다.

무용에 대한 김 안무가의 생각은 대학교 시절 접하게 된 한 공연을 통해 변화했다. 당시 김 안무가에겐 정해진 동작을 연마하고 습득한 기술을 선보이는 정도의 수업이 무용에 대한 경험의 전부였다. 무용에 대한 김 안무가의 생각을 바꾼 건 한 공연이었다. 해당 공연은 어깨에 있는 먼지를 털거나 넥타이를 매는 것과 같은 일상 속의 흔한 행동을 소재로 활용했다. 김 안무가는 “다리를 높게 들거나 회전을 빨리하는 등 고난도 동작을 소화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단 사실을 깨달았죠”라며 “인생의 사소한 부분까지 이야기로 표현하는 게 진정한 무용이란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이 깨달음은 직접 안무를 창작해보고 싶단 마음으로 이어졌다. 김 안무가는 안무 창작법을 공부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씩 대학로에 방문해 다양한 공연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무용단 소속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김 안무가는 안무가란 꿈에 조금씩 다가갔다. 공부와 무용단 활동을 병행하기 쉽지 않았지만 대중과 소통해 무용의 가치를 알리고자 하는 김 안무가의 열망은 끊이질 않았다. 김 안무가는 안무 창작에 꾸준히 도전해 경기도 무용단 내에서 본인의 작품을 공연할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진행된 ‘제삼자화상’ 공연을 시작으로 경기도 무용단 내부 및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정식 창작 공모전에서도 우수 안무가로 선정되는 성과를 이뤘다. 김 안무가는 “무용가가 창작한 안무가 정식 프로젝트의 안무로 채택되는 건 굉장히 드문 사례예요”라며 “재능이 있다면 직위나 직책과 관계없이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것을 실감했죠”라고 말했다. 김 안무가는 이후 ‘상태가 형태’ ‘혜석을 해석하다’ ‘인형아 약속해’ ‘그림자식’ 등 여러 작품의 안무를 기획했다. 그 중 ‘몸으로 읽는 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객 개발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무대를 비추는 진심
김 안무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제삼자화상은 제삼자와 자화상의 합성어다. 김 안무가는 해당 작품을 통해 본인과 제삼자의 상처에 공감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제삼자화상엔 창작 과정에서 일어난 김 안무가의 심리 변화 또한 드러났다. 김 안무가는 작품을 기획할 당시 신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김 안무가는 “내면의 상처를 비우는 것이 첫 작업의 주제였어요”라며 “작업을 진행하면서 내면에 상처가 존재함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주제를 변경했죠”라고 말했다. 김 안무가는 해당 작품을 계기로 관객에게 본인의 내면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는 11월 5일(금) ‘서울무용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상태가 형태’는 김 안무가의 또 다른 대표작 중 하나다. 해당 공연에선 본인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이란 감정을 통해 표현된다. 김 안무가는 “색다른 방법으로 무대를 기획하기 위해 영화 형식을 사용했어요”라며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느끼게 되는 절망감을 긍정적으로 나타내고 싶어 만든 작품이죠”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안무가는 “상태가 형태는 기존의 제 작품과는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라며 “해당 작품을 통해 미래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현재 역시 소중하단 사실을 알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김 안무가는 무용가와 안무가의 매력이 각각 다르다고 느낀다. 김 안무가는 “무용가로서 공연할 때 나 자신을 알아가며 표현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요”라며 “안무를 창작할 땐 각 배역의 특징을 자세히 탐구한 후 구현해내는 게 즐겁죠”라고 말했다. 공연 기획자로선 관객에 대한 책임을 다해 극을 이끄는 과정이 특별하다고 김 안무가는 전한다. 무용가와 안무가를 병행한 경험은 김 안무가가 세상을 보는 관점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됐다.

김 안무가에 따르면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선 함께 작업하는 동료 예술가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김 안무가는 “함께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이 곁에 있었기에 어떤 시련도 극복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무대는 안무가의 상상으로만 채워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창작 과정에서 안무가는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김 안무가는 “작품을 만드는 건 삶을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예요”라며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버티는 게 중요해요”라고 강조했다.


“일상에 무용을 전해요”
김 안무가는 무용을 알리기 위해 온라인 종합 예술 모임 ‘여니스트(Yonist)’의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여니스트는 ‘인연 연(緣)’과 ‘아티스트(Artist)’가 합쳐진 단어로 소통하는 예술가가 되자는 뜻에서 김 안무가가 지은 이름이다. 평소 무용만큼 독서를 사랑하는 김 안무가는 책을 매개로 여러 분야의 사람을 모으고자 했다. 김 안무가는 “약 스무 명의 적은 인원이 참여하는 독서 모임으로 여니스트가 시작됐죠”라며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 외에도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적인 독서 모임과 달리 책을 읽은 후 30분 동안 무용을 배워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여니스트 회원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무용을 더한 것이다. 이외에도 공연을 관람한 후기를 같이 나누는 ‘공감톡’과 무용 수업의 비중이 더욱 높아진 ‘몸으로 말하는 책’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여니스트는 발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활동이 권장되는 최근의 상황에 맞게 ‘북트니스(Booktness)’라는 온라인 독서 모임 또한 운영 중이다.

김 안무가는 좋은 안무가가 되려면 독서를 통해 세상의 다양한 면에 관심을 두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안무가는 “책에 담긴 여러 이야기는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창구가 돼요”라고 말했다. 김 안무가에 따르면 책을 완독하는 과정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책의 흐름을 따라가고 내용을 이해하는 복잡한 과정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작성하는 건 김 안무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서 과정이다. 김 안무가가 추천하는 책은 예술가로서 성장하고 싶은 학생에게 도움이 될 줄리아 카메론(Julia Cameron)의 「아티스트 웨이(The Artist’s Way)」와 인생에서 행복을 찾는 과정을 다룬 책인 프랑수아 를로르(Francois Lelord)의 「꾸빼씨의 행복 여행」이다.

김 안무가는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지 않을 생각이다. 지난 6월 개최된 국내 글로벌 스타트업 박람회 ‘넥스트라이즈 2021 서울’에서 김 안무가는 ‘4족 보행 강아지 로봇, 스팟’과 ‘반려 로봇과 안무가가 만난다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해당 퍼포먼스는 로봇의 움직임이 무용 동작에도 녹아들었단 점에서 대중에게 신선한 인상을 선사했다. 여니스트는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모임으로 발전할 예정이다. 김 안무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용가와 안무가로서 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계속 활동하는 것이다.


“예술은 일상이고 일상은 곧 예술이에요” 김혜연 안무가가 여니스트(Yonist) 회원들에게 전한 말이다. 방 안의 조명조차 나를 위해 묵묵히 불을 밝혀주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김 안무가의 생각이다. 김 안무가는 일상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이 특별한 존재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도 김 안무가처럼 주변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현재를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 지난 6월 개최된 국내 글로벌 스타트업 박람회 ‘넥스트라이즈 2021 서울’에서 김혜연 안무가가 로봇 강아지와 안무를 선보이고 있다.

 

▲ 김혜연 안무가가 운영하는 종합예술 모임 ‘여니스트(Yonist)’의 활동 모습이다. 해당 모임에선 독서 토론과 무용 수업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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