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이하 WISET)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이공계 학과에 입학한 여학생은 29.2%로 남학생의 절반에 불과했다. 대학 졸업 후 임원급 직책까지 올라간 여성의 비율은 10.6%로 더 줄어든다. 안혜연 WISET 이사장은 이공계에 부족한 여성인력 보충과 여성과학기술인 양성을 위해 힘쓰고 있다. 여성과학기술인으로 수십 년 살아온 뒤, 어떠한 이유로 여성과학기술인 후배를 육성하는 길에 올랐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안혜연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이하 WISET) 이사장은 이공계열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과학과 수학에 흥미를 느꼈던 안 이사장은 곧 컴퓨터의 매력에 매료됐다. 과학기술 트렌드에 민감했던 안 이사장이 당시 새로 등장한 컴퓨터의 미래성을 엿본 것이다. 그는 “77학번인 제가 대학생이었을 땐 컴퓨터학과가 존재하지 않아 수학과에 진학했어요”라며 “수학과에서 컴퓨터공학을 배울 순 있었지만 내용이 한정돼 다른 학교의 강의를 찾아 듣기도 했죠”라고 말했다. 

대학 졸업 후 최첨단 기술 회사 데이콤에 입사한 안 이사장은 ‘컴퓨터 네트워크’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그는 사원을 채용하러 미국에 온 삼성SDS에 고용돼 한국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삼성SDS 근무 중에도 새로운 과학 기술에 대한 안 이사장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그는  “어떤 공부를 더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인터넷 보안 문제가 화제란 것을 알게 됐어요”라며 “인터넷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하기 시작했죠”라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약 15년간 인터넷 보안 업무에 근무한 안 이사장은 “인터넷 보안이란 생소한 분야를 공부하면 제가 그 분야의 유일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죠”라고 얘기했다. 

그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란 신념을 갖고 있다. 동료 사원들과의 회의를 통해 업무가 진행되는 대기업의 운영 방식 특성상 그는 자신의 전공인 컴퓨터 네트워크 기술을 더 발휘하길 원했다. 이후 그는, 그가 원한 인터넷 보안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작은 회사에 합류했다.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된 회사에서 안 이사장은 인터넷 보안 외에도 마케팅 및 고객관리 서비스 등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회사를 운영하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 즐거웠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과학 기술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기술산업 현장에 뛰어들었다. 안 이사장은 “혼자 연구실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사람들과 과학기술 발전을 도모해 사회를 이끄는 일이 멋있어 보여 교수직 대신 산업시장을 택했죠”라고 말했다. 산업시장은 누가 더 많은 수익을 내는지로만 연구자에 대한 평가가 결정된다. 안 이사장은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는 기술산업 현장을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장소로 추천했다.

WISET, 여성과학기술인을 지원하다
지난 2019년 4월, 안 이사장은 산업현장에서의 경력과 실력으로 WISET의 이사장이 됐다. WISET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타 공공기관으로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그는 “산업 현장에서 30년 가까이 일해오면서 이젠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라며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단 생각 하나로 WISET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WISET 이사장 임기 동안 ▶WISET 생애주기지원시스템 발전 ▶여성과학기술인 가치 창출 문화 조성 ▶대외 네트워크 및 해외 선진 기관과의 교류 확대를 통한 우리나라 과학기술 경쟁력 기여에 힘쓸 예정이다.

WISET의 ‘생애주기지원시스템’은 해외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다. 생애주기지원시스템이란 성장단계에 맞춰 필요한 교육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대학생에겐 취업을, 재직자에겐 과학기술인들과의 네트워크를, 경력 단절 여성들에겐 직무 복귀를 지원한다. 문제를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 여성과학기술인 간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멘토링 및 컨설팅을 지원받을 수 있다. 안 이사장은 “WISET은 여성과학기술인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뿐 아니라 정책에도 관여하고 있다”며 “한미일 포럼과 아시아 포럼 등에서 WISET이 하는 프로그램을 지인들에게 소개하면 놀라며 부러워하곤 해요”라고 얘기했다. 

안 이사장의 목표는 여성들에게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주는 것이다. WISET은 지난 2001년부터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인상’ 수여를, 지난해부턴 ‘She Did it’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문화 조성 사업의 일부인 여성과학기술인상은 국가 과학기술 발전에 공헌한 여성과학기술인을 포상하는 제도다. 안 이사장이 추진한 She Did it은 2주에 한 번씩 WISET 공식 SNS에 여성과학기술인의 성공 이야기를 알리는 행사로 여성 최초의 한국과학상 수상자, 코로나19 진단키트 여성개발자 등이 소개된 바 있다. 안 이사장은 “학생들에게 여성과학기술인들의 성공사례를 보여줌으로써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여성들이 ‘나도 할 수 있다’란 마음을 가지길 바라요”라고 말했다.

그는 WISET 사업 중 ‘재직자 멘토링 프로그램’에 가장 보람을 느낀다. 10년 이상 근무한 재직자들은 임원급 자리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안 이사장은 재직자 멘토링 프로그램을 만들어 10년 이상 된 재직자 멘티들이 임원급 멘토들에게 멘토링을 받도록 기획했다. 그는 “멘티와 멘토 모두 만족스러워하는 사업이라 계속 관심을 두고 있는 프로그램이에요”라고 얘기했다. 

편견 없이 나아가기 위해
안 이사장에게 ‘여성이 적은 과학 분야에서 일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냐’란 질문은 이제 식상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불편함이 있기 마련이고, 여성이 적다고 힘든 일은 딱히 없단 것이 안 이사장의 의견이다. 그는 “과학계에서 일하는 여성이 적은 만큼 여러 명의 남성보다 소수의 여성이 눈에 띄어 오히려 저를 업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 쉬웠죠”라며 일하면서 느낀 여성으로서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이어 그는 “과학계 내 성비 불균형을 한계로 여기지 말고 자신 스스로 한계를 깨며 더 성장해야 해요”라고 조언했다.

사회에 존재하는 편견은 우리의 잠재력을 억누를 뿐이다. 안 이사장은 성별과 흥미를 연결 짓는 것 자체가 편견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성별과 관계없이 자기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단 의견이다. 그는 “과학 분야의 진로를 단순히 앉아서 기계 작업 혹은 개발만 하는 일로 알려진 것도 아쉬워요”라며 “기술이란 기초적인 지식의 일부일 뿐 다양한 분야로 나아갈 수 있어요”라고 언급했다.

여성과학기술인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자신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경우 WISET의 1:1 취업컨설팅이나 R&D 경력복귀 지원사업을 이용하면 된다. 안 이사장이 지난 3월 개설한 W브릿지를 통해 멘토링 프로그램 또한 지원 받을 수 있다. 그는 “여성이 얼마 없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여성이라서 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깨길 바라요”라며 “과학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좋은 성과를 내고 이를 사회에 계속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본교 학우들의 신산업 분야 진출을 위해 본교와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지난 6월 WISET의 안 이사장과 본교는 본 협약을 통해 신기술 관련 교육 콘텐츠 개발 및 강사 양성, 산업 분야별 여성전문가 데이터베이스 공동 활용, 여성과학기술인 대상 ‘디지털 리더십’ 프로그램 공동 개발 등을 약속했다. 안 이사장은 “과학계에서 여성의 비율이 적다고 이를 겁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도전한다면 이공계열에 재직하는 여성의 비율이 곧 50%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얘기했다.


“꾸준히 하되 조급해하진 마세요” 안혜연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이 학우들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어려우면 돌아가고, 힘들면 천천히 가면 된다. 성별과 사회 속 편견에 관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머지않아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 동료들을 마주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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