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를 다루는 영화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 김미조 영화감독의 첫 장편 영화 <갈매기>는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감 없이 나타냈다. 관객은 성범죄를 소재로 한 그의 작품에서 윤리적 고민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화가 성범죄를 고발하는 올바른 태도를 고민해온 김 감독을 따라 그가 꿈꾸는 세상을 만나보자.


울타리를 벗어나 비로소 꿈을 찾다
김미조 영화감독은 예상치 못한 경험을 통해 영화제작의 꿈을 키웠다. 변호사, 교사 그리고 기자를 꿈꿨던 그는 수 차례의 대학 입시를 거쳤다. 계속된 입시에 피로감을 느낀 김 감독은 더이상 진로를 바꾸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사범대 진학을 결정했다. 사범대를 졸업해 선생님이란 정해진 진로를 걷겠다는 다짐에서였다. 그러나 김 감독은 안정된 삶에 안주하지 않고 그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고자 호주로 떠났다. 타국 사람들의 획일화 되지 않은 삶은 김 감독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를 벗어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김 감독은 “정형화된 삶에 회의를 느끼고 한국에서 학습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어요”라며 “인생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자문하면서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했던 영화에 대한 꿈을 깨닫게 됐죠”라고 말했다.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힐 것을 걱정한 김 감독은 과외와 영화 제작을 병행했다. 그는 “연출은 노력과 재능이 모두 필요해요”라며 “처음엔 재능도 없이 시작했다가 생계가 어려워질까 걱정했죠”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과외란 대비책을 마련해두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영화에 몰두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당시 선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과외에서 얻은 수익에 의존했던 그는 연출로 얻는 수익이 증가하자 감독 활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은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 가졌던 생계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고 있죠”라며 “이젠 제가 꿈꿨던 영화감독으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김 감독이 영화감독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꾸준한 노력 덕분이었다. 그는 가족 혹은 헤어진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소재로 단편영화를 제작했지만 영화제에 초청받지 못했다. 김 감독은 “영화제에서 입상하지 못했을 땐 제 작품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생각했죠”라고 회상했다. 이후 김 감독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시나리오 대회에 입상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잇따른 수상에 그는 “마치 불가항력적인 존재가 영화감독이란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것 같아요”라고 표현했다.

김 감독의 영화는 여성을 향한 폭력과 부조리를 고발한다. 그는 학생을 향한 교사의 권력형 성범죄를 다룬 단편 영화 <혀>와 <혐오가족>, 자신이 성범죄 피해자임을 밝히며 가해자에 대항하는 중년 여성의 이야기 <갈매기> 등을 연출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줄곧 얘기했다. 부조리를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은 불평등한 체제 속에서 대항하는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는 “여성에 대한 폭력 외에도 사회 전반에 존재하는 불의와 그에 대항하는 개인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왜 불편한 영화를 만드냐고요?”
김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살풀이’라고 표현한다. 무당이 한을 풀기 위해 살풀이춤을 추는 것처럼 김 감독에게 영화는 우리 사회에 빈번한 성범죄에 대한 분노 분출구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성범죄 피해자가 좌절하지 않고 가해자에 맞서는 모습을 그리며 분노를 해소했죠”라고 말했다. 그가 만든 영화는 일상 속 부조리를 향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김 감독은 “여성 대상 폭력에 대해 그동안 느꼈던 의문을 자연스레 각본에 반영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영화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세계를 탐구하는 창이자 부정적 감정을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였던 것이다.

김 감독의 첫 장편 영화 <갈매기>는 성폭력 피해를 고백하는 미투 운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미투 운동 이후 대중은 우리 사회에 위계형 성범죄가 만연함을 알게 됐다. 이에 김 감독은 관객들이 <갈매기>와 같이 성범죄 고발 영화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성범죄 근절을 위해 미투 운동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성범죄 피해자와의 연대를 강조한다. 그는 “단순히 기억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피해자의 회복으로 이어져야 해요”라면서도 “하지만 현실에선 성범죄 이후 피해자의 삶에 대한 관심은 높지  않죠”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감독은 성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주변의 적대적인 시선에도 굴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는 “집안에 여성이 많아 성범죄에 노출된 적이 잦았어요”라며 “누군가는 자신과 무관한 일로 느끼겠지만 제게 성범죄는 멀리 있는 일이 아니었죠”라고 말했다. 또한 김 감독은 “살인을 다룬 영화라고는 말하지 않으면서 유독 성폭력을 다룬 영화는 범주화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라고 덧붙였다. 성폭력 영화에 대한 편견에 맞선 그의 의지는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김 감독의 영화엔 성폭력 묘사 장면이 없다. 성범죄를 재현하는 장면을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하면 성범죄를 비판하려는 영화의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 김 감독의 의견이다. 김 감독은 “영화는 편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비극적이고 잔인한 장면을 관객에게 직접 보여줄 필요는 없죠”라고 말했다. 그는 성폭력이란 소재를 다루더라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줘선 안 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갈매기>에서 성폭력 피해자인 ‘오복’의 불행과 고통에 집중하기보다는 상처에 굴하지 않고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김 감독은 영화를 보는 관객이 성폭력 사실뿐 아니라 이후 피해자의 저항에도 관심을 가지길 원했다.

<갈매기>는 피해자인 오복이 가해자 ‘기택’의 가게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자신의 성폭력 피해를 밝히며 막을 내린다. 김 감독은 결말을 통해 피해자에게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싸우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비극적인 일을 겪은 오복이 포기하지 않고 싸울 것이며 계속 싸우다 보면 가해자인 기택은 무너질 것이라고 격려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실제 피해자가 실천하기 힘든 일을 영화 속 인물이 대신해서 보여줌으로써 현실의 관객들에게 여러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김 감독의 목표다.

개인을 바꾸는 영화와 개인이 바꾸는 세상
김 감독은 영화가 가진 힘을 관객에게 전해주고자 한다. 그는 고전 영화를 접하면서 연출이 화려하지 않은 영화도 의도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단순한 구조 안에서 주제를 전하는 고전 영화의 방식에 매료된 것이다. 김 감독은 “본질 위에 서 있다면 전달방식에 영향을 받지 않고 결론으로 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영화 자체가 주는 열기와 에너지를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해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관객의 생각은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갈매기를 보고 ‘우리 가족도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라는 관객의 반응이 인상 깊었어요”라고 말했다. 김 감독에게 영화란 다른 세계에서 펼쳐지는 일에 관심을 갖게 해주는 장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온 김 감독은 소시민들의 울분과 애환을 다루며 관객이 알지 못했던 세상에 관심을 갖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 감독으로서 분류되기보단 ‘김미조’라는 영화감독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그는 “여성 감독에게 주로 붙는 ‘섬세한 감독’과 같은 수식에 국한되고 싶지 않아요”라며 “어떠한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 감독이 되고 싶죠”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많은 여성이 나오는 서부극이나 강렬한 액션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라고도 덧붙였다. 영화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믿는 김 감독은 “누군가 희생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어요”라며 영화연출을 희망하는 청년들을 독려했다.


영화 제작과정 중 촬영 현장을 가장 좋아한다는 김 감독은 영화라는 결과물보다 영화를 만드는 작업 과정에 매력을 느낀다. 영화란 여러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함께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이들에게 김 감독의 여정이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다룬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상처받지 않길 원한다는 김 감독의 바람은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김 감독의 영화를 만나본 관객들은 그의 다음 작품도 만나볼 준비가 됐다.

 ▲ 김미조 영화감독의 첫 장편 영화 '갈매기'의 포스터로, 성폭력 피해자인 중년여성 ‘오복’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맞서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국내외 다양한 영화제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 김미조 영화감독의 첫 장편 영화 '갈매기'의 포스터로, 성폭력 피해자인 중년여성 ‘오복’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맞서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해당 작품은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한 국내외 다양한 영화제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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