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 10일은 선거의 중요성을 알리고 투표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유권자의 날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새롭게 도입된 지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0년대 들어 최대 투표율을 달성했다. 김예지 동문은 미래한국당(현 국민의힘) 비례대표 11번으로서 그 현장의 중심에 있었다. 국민의 목소리를 국회에 전달하는 ‘메신저’가 되기 위해 국회의원이란 직업을 택한 김 동문은 본교 피아노과 졸업 후 피아니스트, 피아노과 교수, 평창 패럴림픽 바이애슬론 선수 등 여러 직업을 경험했다. 늘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지며 용기 있게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자칭 물음표 인생의 소유자 김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생의 동반자, 피아노
피아노가 취미이자 특기였던 김예지 동문은 지난 2000년 본교 피아노과에 입학했다. 일반전형 수석으로 피아노과에 합격했지만 대학 생활은 쉽지 않았다. 시각장애가 있는 김 동문에게 점자교재와 점자악보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 일본에서 점자악보를 수입하거나 점역사에게 악보 제작을 의뢰해야 했다. 김 동문은 “단체 시험 진행이 어려워 직접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정규 시험 시간이 아닌 교수님과 협의된 시간에 따로 시험을 진행하곤 했어요”라고 말했다. 대학 생활 동안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아 생긴 어려움을 김 동문은 스스로 극복하려 노력했다.

점자 악보를 사용하던 김 동문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악보 제작의 필요성을 느꼈다. 비장애인이 사용하는 악보는 오선지에 음표의 높낮이가 표현돼 곡의 흐름이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반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악보는 도드라진 일정한 점들을 통해 각각의 음표가 아닌 일부의 화음만을 설명하고 있어 곡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김 동문은 장애 유무, 성별, 연령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 가능한 디자인의 악보를 원했다. 위스콘신대학교 메디슨캠퍼스 대학원 박사학위 과정 프로젝트로 악보 개발을 시작한 김 동문은 오선과 음표가 입체적으로 구현된 다차원 촉각 악보를 만들었다. 김 동문은 “다차원 촉각 악보는 직관성이 뛰어나 특히 다선율로 이뤄진 건반 악기에 사용될 때 큰 효과를 발휘해요”라고 말했다.

피아니스트가 된 김 동문은 지난 2015년 피아노과 실기 강사로서 본교의 강단에 섰다. 김 동문은 4년간 본교에서 실기 강사로 활동한 후 지난 2019년부턴 1년 동안 본교 대학원 피아노교수학전공 초빙대우교수로서 활동했다. 김 동문은 “본교에 재직할 때 피아노를 전공하다 무대 공포증 때문에 작곡과에 진학한 한 학생을 만났어요”라며 “그 학생이 저와의 레슨에서 용기를 얻어 피아노과 복수 전공을 결심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라고 말했다. 모교에서 제자들을 지도했던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는 김 동문은 본교를 떠나 국회에서 활동하는 지금도 제자들과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김 동문은 “자신의 안부를 전해주고 정치 활동을 응원한다는 연락을 보내 주는 제자들이 있어 힘이 나요”라고 말했다.

▲일반 점자 악보는 좌측과 같이 돌출된 점자로만 곡을 설명하고 있어 점자 체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사용할 수 없다. 이와 달리 김예지 동문(피아노 04졸)이 개발한 우측 ‘다차원 촉각 악보’는 악보상의 음표 모양과 위치가 그대로 도드라져 있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곡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반 점자 악보는 좌측과 같이 돌출된 점자로만 곡을 설명하고 있어 점자 체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사용할 수 없다. 이와 달리 김예지 동문(피아노 04졸)이 개발한 우측 ‘다차원 촉각 악보’는 악보상의 음표 모양과 위치가 그대로 도드라져 있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곡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수자의 ‘메신저’가 될 발걸음
김 동문은 국회 입성 전부터 강연을 통해 장애 예술인에 대한 정책을 제안해 왔다. 이에 현 소속당은 당에 입단해 국회에서 직접 정책 발의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김 동문은 장애인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되고 싶어 권유를 받아들였다. 제21대 국회의 구성원이 된 김 동문은 안전상비의약품에 점자 또는 점자 및 음성변환용 코드 기재를 의무화하는 약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해 시각장애인이 약품 정보를 올바르게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외에도 그는 예술계 성범죄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피해자를 위한 법률 지원을 촉구하는 예술인 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며 국민의 필요에 부합하는 다양한 정책을 발의하려 노력하고 있다.

김 동문의 안내견 ‘조이’는 국내 최초로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장에 출입한 안내견이다. 그동안 국회는 ‘회의 진행에 방해되는 물건을 본회의장에 반입해선 안 된다’는 국회법 제148조에 따라 본회의장 내 안내견 출입을 거부해 왔다. 안내견의 본회의장 출입 여부가 논란이 되자 여야는 안내견을 ‘회의를 방해하는 물건’이 아닌 ‘시각장애인의 눈’으로 대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고, 국회사무처는 조이의 본회의장 출입을 허용했다. 김 동문은 “장애인복지법을 만든 입법 기관이 안내견 출입을 반대하는 일은 있을 수 없어요”라며 “왜 안내견이 모든 장소에 출입이 가능해야 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장애인 안내견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김 동문은 지난해 6월 일명 ‘조이법’이라 불리는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의 주 내용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안내견 출입이 거부되지 않도록 안내견 출입 거부 사유를 대통령령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공공기관이 공익광고를 통해 안내견 인식 개선에 참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한다. 김 동문은 “안내견 출입을 거부한 주체에게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진 않아요”라며 “당연히 보장돼야 하는 장애인 이동권에서부터 안내견 출입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자리잡혀야 해요”라고 말했다.

 

“배리어프리를 통해 평등한 세상으로 가요”
김 동문은 장애가 있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다. 김 동문은 장애인 관련 정책의 핵심으로 ‘배리어프리’를 꼽았다. 배리어프리를 확대하기 위해 김 동문은 저상버스 및 장애인 콜택시와 같은 장애인 이동권 문제, 장애인 정보 접근성 문제 등을 개선할 예정이다. 김 동문은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장애인 활동 지원 급여 수급자가 65세에 이르면 장기 요양급여가 제한됐던 문제는 개선됐지만 65세 이후 장애 판정을 받을 시 지원이 제한되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해요”라며 “장애인 급여 문제, 기본권 문제 등 임기 동안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김 동문은 “한두 번의 노력으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어려움을 알기에 국회의원으로서의 4년 동안 적극적으로 장애 관련 현안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에요”라고 말했다.

배리어프리 확대를 위한 김 동문의 노력은 그의 연주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난 2월 10일(수)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선 시각장애가 있는 피아니스트로 살아온 김 동문의 삶을 주제로 한 ‘배리어프리를 위한 피아니스트 김예지의 릴렉스 콘서트’(이하 릴렉스 콘서트)가 진행됐다. 김 동문은 공연 진행에 있어 부가적인 부분으로 인식돼 왔던 수어, 음성해설을 공연의 주요소로 배치했다. 김 동문은 릴렉스 콘서트를 통해 수어와 음성해설이 보조적 수단이 아니라 또 하나의 예술적 가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수어를 위해 수화 아티스트가 참여하며 콘서트에 의미를 더했다. 수어를 구사하는 손 모양을 그림으로 나타내거나 수화로 연극을 진행하는 수화 아티스트는 농인에 대한 사회 편견을 개선하고 배리어프리를 확대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릴렉스 콘서트와 다차원 촉각 악보는 ‘모두를 위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김 동문은 “장애인 혹은 비장애인 같이 특정 집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사용하고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둘의 의미가 연결되죠”라고 말했다. 이번 콘서트는 다차원 촉각 악보가 한국에선 처음 소개되는 자리였다. 지난 2018년 독창성을 인정받아 다차원 촉각 악보의 특허 등록을 마친 김 동문은 “기존 점자악보와 달리 직관성을 가진 저의 악보를 관객과 공유할 수 있게 돼 뜻깊었어요”라고 말했다.

주목받는 여성 리더이자 끊임없이 도전하는 김 동문은 숙명인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계속 도전하라고 조언한다. 김 동문은 본인의 개성을 인정하면서 미래를 계획하고 도전하는 것이 본교의 슬로건인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김 동문은 “저는 항상 고민하고 걱정하지만 노력을 멈추진 않아요”라며 “서로의 자리에서 응원하고 격려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숙명인이 힘을 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늘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두고 도전하는 김 동문은 그의 표현에 의하면 ‘물음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분야를 묻자 그는 “항상 관심 분야가 달라지는데 지금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느라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여념이 없는 김 동문의 노력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자는 메시지가 되어 우리에게 도착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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