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전 연령대와 성별 집단에서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20대 여성의 자살률은 전년 대비 25.5% 증가했다. 또한 지난해 국정 감사 당시 보건복지부가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2020년 응급실 내원 자살 시도자 현황’에 따르면 응급의료기관 66곳에 실려 온 자살 시도자 중 20대 여성의 비율은 20.4%로 남녀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20대 여성 집단의 자살률 증가는 사회적 현상으로 분류돼 ‘조용한 학살’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한다. 조용한 학살은 사회적으로 조명받지 못하고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치부돼왔던 여성의 노동, 빈곤을 비롯한 복합적인 문제가 20대 여성의 자살률 증가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고 있는 조용한 학살, 그 원인은 무엇일까. 


구조적 차별에 멍든 여성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지난해 9월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에 따르면 2018년 범죄에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의 비율은 57.0%로 남성 44.5%보다 12.5%P 높았다. 특히 20대 여성 집단은 데이트 폭력과 성폭력 피해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데이트폭력의 현실, 새롭게 읽기’ 보고서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지난 2017년 14,136건에서 지난 2019년 19,940건으로 41.1% 증가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9년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에서도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이었으며 그중에서도 20대 여성이 24.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20대 여성의 정신 건강은 우울, 불면 등으로 인해 위협을 받고 있다. 지난 6일(목)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울 평균 점수는 20대 여성에서 가장 높았고, 우울 위험군 비율은 30대 여성에서 가장 높았다. 김현수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센터장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20대 여성들은 사회적 단절로 인한 외로움과 우울을 겪고 불면과 같은 적응상 어려움을 호소한다”며 “사회가 불안전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 어렵다는 점이 20대 여성 자살률의 증가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여성은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위기로부터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집단이기도 하다. 기업의 신규 채용이 감소하고 대면 서비스업이 침체하면서 지난해 취업자 수가 크게 감소했다. 통계청의 지난 1월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줄어든 전체 취업자 중 64%가 여성이다. 지난해 취업자는 남성에서 전년 대비 8만2천명(-0.5%) 감소했고 여성에서 13만7천명(-1.2%) 감소했다. 같은 기관에서 지난해 8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보면 지난해 기준 여성 근로자 중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율은 약 45%로 남성 29.4%보다 매우 높은 비율이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은 “20대 여성 대부분이 시간제 일자리인 비정규직에 종사한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서비스 산업의 고용 한파로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의 상황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노동시장에서 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도 조용한 학살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여성들은 모집부터 퇴사까지의 과정에서 각종 성차별 위험에 노출된다. 지난 3월 동아제약은 면접에서 여성 지원자를 향한 성차별적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임 위원은 “20대 여성의 우울증 및 자살률 증가와 같은 복합적인 문제는 성차별적인 노동 시장 전반에서 비롯되기도 한다”며 “여성들이 차별의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죽음의 행렬, 여기서 멈추려면
정부와 공공기관은 다양한 심리지원 정책으로 여성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조용한 학살에 주목해 20대 여성을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지원 정책을 강화했다. 지난해 11월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개최된 자살예방정책위원회는 청년 여성의 자살률 급증에 주목해 청년 여성과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취업지원 제도를 확대하기로 했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선 코로나19로 심적인 고충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원 체계를 운영한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가 운영하는 서울특별시 COVID19 심리지원단은 마음처방전 같은 심리 안정을 위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또한 서울시 자살예방센터는 시민들의 심리 상담을 돕는 챗봇(Chatbot) ‘누구나’를 개발해 심리 지원 강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 센터장은 “20대 여성들에게 사회와의 연결감과 새로운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심리 상담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용한 학살을 막기 위해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20대 여성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9년 실시한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선 만 25세에서 29세 사이의 여성 59%가 비혼을 지향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거 지원 정책 대부분은 신혼 부부에 치중돼 있으며, 주택청약제도 역시 자녀 수가 많을수록 더 높은 가산점을 부여한다. 여성 일자리를 지원하는 다시일하기센터와 여성인력개발센터의 정책 역시 대부분 경력 단절 기혼여성이 그 대상이며 비혼 여성을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여성 청년의 여건 개선을 위한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34만명의 여성 고용을 유지하고 여성의 근로여건 개선을 위해 추가 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 지난 3월 동아제약의 성차별 면접이 공론화된 이후 지난달 29일(목)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기존엔 성차별을 겪으면 노동위원회에 진정만 요구할 수 있었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시정까지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조치를 받고자 사정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진정과 달리 시정은 직접적으로 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 임 위원은 “남녀고용평등법의 개정은 노동 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면서도 “법은 개정됐지만 제도나 정책에 대한 실제 판결에 성차별 개선을 위한 성인지감수성이 반영되기 위해선 성평등한 조직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용한 학살은 코로나19로 갑작스럽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그간 많은 여성이 감내해야만 했던 문제가 이제야 수면 위로 떠올랐을 뿐이다. 김현수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센터장은 “청년 세대가 자살을 고려할 정도로 우울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선 청년 세대와 소통하려는 사회 전반의 노력이 지금의 몇 배 이상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 청년의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한 지속적인 대화와 이를 지원할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전화 ☎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 129, 생명의 전화 ☎ 1588-9191, 청소년 전화 ☎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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