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차별은 일상 곳곳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말한다. 1970년 하버드의 정신의학자 피어스는(Chester.M.Pierce)는 차별이라고 단정짓긴 어렵지만, 소수자 집단의 정체성에 위협적이거나 침해가 되는 언행에 주목했다. 그는 이를 가리켜 ‘아주 작은’이라는 뜻의 ‘마이크로(micro)’와 ‘공격’을 의미하는 ‘어그레션(aggression)’을 조합한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라고 정의했다. 국내에선 이를 미세한 차별 또는 먼지 차별이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미세한 차별을 경험하고 있을까?


“어디까지가 차별인가요?”
노골적이거나 의도적인 차별과는 달리 미세한 차별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미세한 차별이 걱정이나 칭찬 등의 형태로 가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는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선’이 모호해 부당하게 차별을 당해도 인지하기 어렵다”며 “명백한 차별과 달리 미세한 차별은 문제 제기가 어려워 고착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세한 차별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가 인식하기 어렵다. 진성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혼자 있으면 사람들이 반말 하며 보호자 동행 여부를 묻는 경우가 많다”며 “무심코라는 말로 장애인을 향한 일상적 차별을 정당화한다”고 말했다. 

미세한 차별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장애인은 여성이자 장애인이라는 범주로 분류돼 복합적인 차별을 경험한다. 진 활동가는 “실제로는 사회가 규정한 성 역할을 따르기 위해 강도 높은 가사노동을 수행하면서도 사회에선 보호받기만 하는 존재로 인식되는 장애 여성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개인은 성별, 장애, 인종, 출신 지역, 출신 국가, 고용 형태 외에도 여러 영역에서 약자에 해당하는 개인은 복합적인 차별을 경험한다. 

한국 사회에선 미세한 차별에 대한 논의가 아직 부족하다. 해외에선 차별해선 안 된다는 시민의식과 법적 규제가 확립돼 있으며 나아가 미세한 차별에 관한 법적 규제의 필요성도 이미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고 있다. 본교 홍성수 법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노골적인 차별을 지양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미세한 차별에 대한 문제도 동시에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기 중 미세차별, ‘농도 나쁨’
미세한 차별은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비속어나 유행어는 장난으로/문제 인식 없이 소수자 비하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8년 3월에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6명 정도가 일상에서 혐오표현을 접했으며 차별적 표현의 대상으론 특정 지역 주민, 여성, 노인,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이 있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미세한 차별에 직면하고 있을까. 공기처럼 우리의 삶에 만연한 차별에 대한 학우들의 경험을 들어봤다. 

이수진 (교육 19)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표현 중 여성을 조롱하는 요소가 담긴 단어를 장난으로 사용하는 것을 듣고 상대방에게 그런 표현은 지양하자고 말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저를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가 다툼이 일어날 뻔했죠. 장애인 비하 표현을 문제의식 없이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요. 조금만 생각해도 차별적 표현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일상에서 너무 자주 접하다 보니 인식이 무뎌진 것 같아요.”

안수진 (공예 20)
“머리를 짧게 잘랐을 때 가족에게 ‘남자 같고 든든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늦게 들어와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했죠.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느껴져 불편했어요” 

익명 학우A
“최근에 휴대폰을 ㅇ사에서 ㄱ사의 모델로 바꿨어요. 지인에게 바꾼 휴대폰 모델의 기능에 관해 물어봤다가 ‘ㄱ사의 휴대폰을 쓰는 여자에게 호감이 간다, ㅇ사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여자는 허세가 심하고 소셜네트워크에 빠져 살 것 같다’는 말을 듣고 불편했던 경험이 있어요.” 

익명 학우B
“장애인이 대중교통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이동도 어려웠던 옛날에 비하면 나아진 거 아니야?’라고 가볍게 얘기하는 걸 듣고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어요. 이런 차별들이 장애인을 향한 폭력으로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를 것 없는 사람이기에 동등한 이동권을 누려야 하죠.”


미세한 차별, 연대로 맞서라 
미세한 차별에 대항하기 위해선 개인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는 “부당한 차별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차별에 문제 제기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개인이 혼자서 차별에 대항하기란 쉽지 않다. 피해자가 차별 피해를 주장하면 되레 ‘예민하다’거나 ‘피해의식이 심하다’는 질책을 받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성추행 사실을 신고했을 때 수사기관이나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이 피해자에게 성추행의 책임을 돌리는 2차 가해가 있다. 이에 이 이사는 “남들에게 예민해 보여도 괜찮다”며 “불편하고 번거롭더라도 저항의 목소리를 내야 변화가 찾아온다”고 용기를 낼 것을 독려했다.

이처럼 개인이 차별에 대항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선 무엇이 차별인지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홍 교수는 “정치 지도자를 비롯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차별의 해악을 지속해서 확인해야 한다”며 “기업 내에서부터 추상적이더라도 차별 금지를 선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별은 연대의 힘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 한국 여성의 전화에선 먼지차별 근절 캠페인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를 진행하며 사회구성원이 일상의 차별에 대항하기 위한 연대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이 이사는 “차별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현세대가 연대를 통해 해결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다”고 말했다.

차별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구체적으로 규정된다면 미세한 차별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현재 우리나라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가 이뤄지는 등 명시적 차별에 대한 제도와 사회적 합의를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홍 교수는 “단순히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미세한 차별을 규제할 수는 없다”며 “법이 제정된 이후 지침과 결정례가 쌓이면 미세한 차별에 대한 기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무언가로 호명할 수 있는 것은 권력이다. 누군가를 향한 놀림을 ‘가벼운’ 농담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알려준다. 반대로 원하지 않는 기표가 자신에게 부착되는 경험은 소수자로서 사회적 위치와 무력한 상태를 확인시켜준다." 김지혜 작가의 저서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한 부분이다. 내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한 마디의 차별이 누군가에겐 평생의 상처로 남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남에게 무심코 건넸던 말이 혹시 상처가 되는 말은 아니었을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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