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한 그릇이 나이 한 살

우리나라에선 사람들이 새해에 떡국을 먹으며 나이가 한 살 더 늘어난 것을 기념한다. 연말이 다가오면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에서 자신의 나이를 XX.9세라고 표기해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나이를 계산할 때 태어난 해에 1살이 되는 ‘세는나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 행정 및 법률에서 사용되고 있는 만 나이와는 다르다. 우리나라는 왜 여러 가지 세는나이와 만 나이를 함께 사용하고 있을까? 한국식 나이 제도를 사용하게 된 이유와 그 필요성을 알아보자.

세는나이? 한국식 나이!
우리나라는 일상에서 세는나이를 사용한다. 세는나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1살이 된다고 치는 나이 계산법으로, 세는나이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1월 1일에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 성균관 유교문화 활성화사업단 최영갑 단장은 “원년을 중시해온 우리나라의 전통 관습이 개인에게도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년이란 어떤 해가 처음 시작되는 해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선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연호를 공포한 이후부터 1919년을 원년(1년)으로 보고 있다.

현재 세는나이를 사용하는 국가로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국가들은 만 나이 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세는나이가 한국식 나이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해외에선 이러한 한국식 나이를 계산해 주는 온라인 사이트도 등장했다. 세는나이는 유교 문화에서 시작돼 동아시아 전반에서 사용되던 나이 계산법이었으나 세계적으로 만 나이를 사용하게 되면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동아시아권에서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됐다.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 이후, 일본은 1950년대부터 세는나이를 폐지했다. 북한과 베트남도 현재는 만 나이를 사용한다.

우리나라 행정 제도에선 만 나이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만 나이는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0살에서 시작해 매년 생일마다 한 살을 더하는 나이 계산법이다. 이는 세는나이와 달리 일 년 중 나이를 먹는 날이 사람마다 다르다. 현재 만 나이는 국제적 나이의 기준이 되며 우리나라에선 공공문서나 의료보험 등 공적 서류에서 주로 사용된다. 병역법과 청소년보호법을 비롯한 일부 법률에서도 연 나이가 사용된다. 연 나이는 태어난 연도만으로 나이가 정해지는 나이 계산법으로,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뺀 값이다. 즉 21학번이 된 2002년생의 올해 연 나이는 19세이다.

이름은 하나, 나이는 여러 개
한국식 나이 제도는 우리나라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 한국식 나이 제도와 관련 있는 우리나라 문화는 해가 바뀌는 봄에 학기를 시작하는 3월학기제가 대표적이다. 전 세계에서 3월 학기제를 시행하는 곳은 우리나라와 일본 2개국뿐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자신의 나이를 말하고 호칭을 정리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김현정(영어영문학 석사과정) 학우는 “우리나라는 나이에 따라 호칭이 크게 달라진다”며 “동아리 활동은 물론 학교에서 간단한 조별 과제를 할 때도 호칭을 먼저 정리한 후 대화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성수아(미디어 19) 학우는 “과거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했을 때 학생회 내에서 선후배 간에 정해진 호칭을 사용해야 했다”며 “나이를 중시하는 문화가 경직된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 같아 불편했다”고 말했다.

‘빠른 년생’도 우리나라의 고유한 나이 문화다. 지난 2008년까지는 3월 1일이었던 취학연령 기준일에 맞게 한 해의 3월 1일부터 그다음해 2월에 태어난 아이들의 초등학교 입학이 한 학년도에 같이 이뤄졌다. 당시 1·2월에 태어나 동급생보다 한 살 어린 나이로 입학한 아이들을 불렀던 말이 빠른 년생이다. 빠른 년생 아이가 학교에 한 해 먼저 입학했을 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 부모들이 자녀의 취학시기를 늦추는 사례가 매년 증가하면서 지난 2007년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됐다. 개정된 법안에 따라 지난 2009년 초등학교 입학 대상자였던 2003년생부터는 빠른 년생 제도가 사라졌다. 단, 부모가 원할 경우 조기입학을 별도로 신청할 수 있다. 빠른 2001년생인 박서연(문헌정보 19) 학우는 “처음 대학생이 됐을 때 대중교통에서 청소년 요금으로 결제하면 기사가 눈치를 주거나 친구들과 함께 술집에 갈 수 없어 불편했다”며 “빠른 년생 제도가 사라진 것은 반길 만한 일이지만 훗날 빠른 년생을 모르는 세대들은 그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이 계산법은 법률에 따라서도 다르게 적용된다. 청소년 보호법을 비롯한 일부 법률에선 연 나이, 민법을 포함한 나머지 법률에선 만 나이를 사용한다. 청소년보호법에서 규정된 술 담배의 구매 가능 연령은 연 나이 20세이며 공직선거법에서 규정된 투표 가능 나이는 만18세다. 본교 법학부 백경일 교수는 “우리나라 법률 대부분은 각 소관 부처의 주도 아래 만들어지고 있다”며 “일정한 체계 없이 시대 상황이나 정책, 사회 분위기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입법을 하다 보니 법적 나이 제도가 통일되지 못한 것이다”고 말했다.

전통은 지키고 제도는 새롭게
한국식 나이 제도는 점차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식 나이 제도가 우리나라의 전통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음력에 맞춰 명절을 보내는 것은 한국식 나이 제도가 반영된 대표적인 전통문화다. 음력을 사용할 경우 매년 절기에 따라 생일이 달라지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생일 대신 새해 첫날인 설을 기준으로 나이를 센다. 현재 우리나라는 양력을 사용하고 양력설인 1월 1일을 기준으로 나이를 먹음에도 여전히 음력설에도 차례를 지낸다. 양력 달력에도 작은 글씨로 음력 날짜가 함께 적혀있는 경우가 많다. 최 단장은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간편화된 것을 좋아해 나이 제도도 한 가지로 통일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며 “아직 구세대와 신세대가 공존하는 사회인만큼 세대 간의 논의가 잘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나이 제도를 하나로 통일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지난 2019년엔 국회에서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다. 해당 법률안의 내용은 국내 법률과 공문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만 나이 계산법을 사용하도록 의무화 또는 권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입법안의 취지는 법률과 일상생활 간 나이 제도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행정비용의 낭비, 국제 사회와 다른 연령 기준으로 인한 혼선 등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해당 입법안이 폐기되면서 우리나라의 나이 제도는 아직 정비가 필요한 상태다.

우리나라의 나이 제도 변화를 위해선 법에서 사용하는 나이 제도의 통일이 우선시 돼야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청소년 연령 기준이 통일돼있지 않으며  법에서 청소년을 이르는 명칭조차 미성년, 청소년, 연소자 등으로 다르게 규정돼있다. 백 교수는 “법적 나이 제도가 통일되지 못하면 법 집행의 혼란을 초래하고 법적 안정성을 침해한다”며 “이는 준법정신을 저하시키므로 반드시 연령 기준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 단장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나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센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면서도 “나이 제도를 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통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선 국제 나이와 국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일상적 나이 계산법의 혼동으로 인해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다. 김현정 학우는 지난 2019년 한 해 동안 4번의 입출국을 하면서 나이가 5번 바뀌는 일을 경험했다. 지난 2019년 기준 한국 나이로 24세였던 김 학우는 미국에 도착했을 때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나이로 22세가 됐다. 이후 미국에서 1년 동안 머물다가 중간에 잠시 한국에 들어와 살았다. 연말에 돌아왔을 땐 다시 24살로 생활하다가 한국에서 새해를 맞으며 25살이 됐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니 한국에 잠깐 머무는 사이에 생일이 지나서 만 23세가 됐다. 미국에서 1년을 보내고 한국에 돌아오니 다시 25살이 됐고, 2021년인 지금은 26살이다. 김 학우는 짧은 기간에 나이가 여러 번 바뀌어 지금도 본인의 나이가 헷갈린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전통을 담고 있는 한국식 나이 제도를 반드시 세계화에 발맞춰 만 나이로 변경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나이 제도를 살펴보고 전통은 유지하되 단점을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성의 나이에 유통기한은 없다
스물의 나이로 성인이 됐음을 의미하는 ‘약관’,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인 서른을 가르키는 ‘이립’, 세상에 유혹에서 벗어나 판단을 흐리게 되는 일이 없다는 마흔을 의미하는 ‘불혹’은 모두 남성의 나이를 이르는 말이다. 여성의 나이를 단독으로 이르는 말은 초경이 시작되는 나이인 십육세를 의미하는 ‘파과지년’뿐이다. 나이를 똑같이 먹어도 이르는 말이 다르듯이 여성과 남성의 나이에 대한 시선도 다르다. 본교 학우들은 여성의 나이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경험한 적이 있을까?

최지희(한국어문 18) 아직 정식으로 사회생활을 하지 않아 직접적으로 경험한 적은 없지만 여자들은 비교적 어린 나이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시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취업을 빨리해야겠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계속 불안한 상태입니다. 저와 같이 나이에 대한 압박을 느낀 다른 여성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수아(미디어 19) 여성의 나이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은 나이가 있어도 연륜으로 보지만 여성은 어릴수록 사회적 가치가 높은 것처럼 취급됩니다. 30대 미혼 여성은 당연히 결혼해야 하는 존재로 여겨지지만, 또 직장에선 결혼하면 출산할 텐데 업무에 지장이 가는 것이 아니냐고 눈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주연(법 17) 빠른 년생으로 대학에 입학했더니 ‘2년 정도 휴학해도 나이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부럽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사회에서 젊은 여성을 선호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느꼈습니다.

김현정(영어영문 석사과정) 여성의 경우 남성과 달리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남성보다 나이에 대한 기준이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남성들이 약 2년 정도의 시간을 군대에 할애해야 하는 점은 이해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여성에 비해서 유한 기준을 적용받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송예나(문헌정보 19) 사회에선 여성에게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가치가 꺾인다거나 특정한 나이대엔 꼭 결혼해야 한다는 말로 나이에 관한 엄격한 잣대를 적용합니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서도 여성의 나이가 더 많을 경우 ‘남자가 더 아깝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박서연(문헌정보 19) 25세 여성을 이르러 흔히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말에 비유한다는 것에서부터 차별적 시선을 알 수 있습니다. 취업 시장과 결혼 시장에서도 여성의 나이는 동년배 남성에 비해 훨씬 더  중요한 조건처럼 여겨집니다. 이 때문에 여성은 30세가 되기 전에 결혼이나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따라서 여성의 나이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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