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들으며 학문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은 대표적인 대학 교육의 형태다. 이외에도 대학생은 교내 도서관에서 서적을 읽거나 교내 공연장에서 유명 인사의 무대를 관람할 수 있다. 각종 운동을 즐기기 위해 교내 체육관을 방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발길이 뜸한 교내 시설이 있다. 바로 대학 박물관이다. 대학 박물관의 존재감은 정부와 대학 사회의 무관심으로 인해 흐릿해지고 있다. 하지만 대학 박물관의 명맥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선명하다.


관심 밖에 내몰린 대학 박물관
국내 대학 박물관은 대학이 종합대학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설립됐다. 지난 1967년 개정된 ‘대학설치기준령’에 따르면 국내 대학은 종합대학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반드시 교내에 박물관을 설치해야 했다. 본교 박물관장직을 맡은 본교 김세준 문화관광학부 교수는 “대학은 주변 지역에 관한 역사적 기록과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러한 자원을 학내 구성원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도 공유하자는 취지로 해당 법령의 개정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대학 박물관의 입지는 대학설치기준령이 재개정되면서 좁아지기 시작했다. 지난 1982년 개정된 대학설치기준령에선 종합대학교에 대한 박물관 의무 설치 조항이 삭제됐다. 해당 법령의 재개정 이유에 대해 안신원 한국대학박물관협회장은 “당시 도시 공간의 제약성을 고려해 교내 부지 기준 및 부속 시설 수가 완화될 필요성이 제기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법적 기반이 사라지자 대학 박물관에 대한 제도와 정책 개발의 활성화가 어려워졌다.

대학 재정이 악화하면서 대학 박물관에 편성하는 예산이 삭감됐다. 최근 지방 대학은 물론 수도권의 주요 대학에서도 신입생이 미달하고 있다. 지난해 50만 633명이었던 수시 모집 지원자 수는 올해 44만 8678명으로 전년 대비 10.4%(5만 1955명)가 하락했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 수는 49만 3433명으로 사상 처음 50만 명 이하를 기록했다. 안 협회장은 “출생률 저하로 인해 학령인구가 감소하자 대학의 재정 상태가 어려워졌다”며 “대학의 지출 규모가 낮아짐에 따라 대학 박물관에 공급되는 예산 또한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대학 박물관을 비롯한 사립 박물관은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기도 쉽지 않다. 정부 입장에선 국가·지자체 소속인 국·공립 박물관의 지원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내 박물관 1관당 인구가 12만 300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만 명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최근 정부가 국·공립 박물관의 건립을 적극 추진하면서 사립 박물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더욱 축소됐다. 지난 2012년 358관이었던 국·공립 박물관은 실제로 지난해 430관까지 늘어났다.

▲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를 참고해 최근 9년 간 국·공립 박물관, 사립 박물관, 대학 박물관의 등록 추이를 그래프로 그렸다.
▲ 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를 참고해 최근 9년 간 국·공립 박물관, 사립 박물관, 대학 박물관의 등록 추이를 그래프로 그렸다.

대학 박물관의 관람객 감소엔 코로나19도 영향을 미쳤다. 많은 대학에서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학내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비대면 학기가 이어지며 학생들이 학교에 방문하는 빈도도 줄었다. 박재은(독일언어문화 18) 학우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본교 박물관의 교육 프로그램 대부분이 중단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더 나은 전시를 위한 처방
대학 박물관은 대학 및 정부 측의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안 협회장은 “대학 박물관이 생산하는 컨텐츠에 비해 투입되는 예산은 매우 미흡하다”며 “대학 박물관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대학 박물관에선 학예사 근무 환경의 개선을 위해 인력 충원을 요구한다. 김 교수는 “학예직은 관리직보다 인원이 적어 순환 근무를 하기 어려운 편이다”며 “조교나 연구생을 활용한다면 대학 박물관 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대학’ 박물관, 두 글자가 주는 특별함
대학 박물관은 한계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대학 박물관만이 수행 가능한 역할을 맡고 있기도 하다. 먼저 대학 박물관은 대학 역사와 관련한 작품을 보존해 후대에 계승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대학 역사와 관련된 유물은 교내에 있을 때 진가를 발한다. 타 박물관에선 비교적 중요도가 떨어지는 작품도 대학 박물관에선 특별한 작품이 된다. 많은 대학 박물관이 각 대학의 정신을 잘 나타내는 소장품을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박 학우는 “자교 역사가 담긴 유물을 보관하는 것은 대학 박물관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대로부터 계승된 대학 역사는 학내 구성원 간의 결속력을 형성시킨다. 학내 구성원은 대학의 창학 이념, 건립 과정, 동문 업적을 배우며 애교심과 소속감을 높일 수 있다. 이는 학내 구성원이 본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김 교수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선 먼저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역사를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본교 제2창학캠퍼스 백주년기념관 1층에 위치한 숙명역사관의 입구다.
▲ 본교 제2창학캠퍼스 백주년기념관 1층에 위치한 숙명역사관의 입구다.

대학 박물관 방문 경험이 다른 박물관에서의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김 교수는 “전시를 감상할 땐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보는 것이 좋다”며 “이러한 고민을 대학 박물관을 관람하며 미리 해 본다면 추후 다른 박물관에 방문했을 때 더욱 넓어진 시야로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대학 박물관은 학내 구성원 및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각 박물관의 개성을 살린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해당 역할은 대학 박물관이 지역 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안 협회장은 “많은 대학 박물관에서 초·중·고등학교 단체 관람, 자유 학기제 프로그램, 진로 체험 등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며 “문화 시설이 부족한 지역에선 대학 박물관의 존재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고 말했다. 본교 제2창학캠퍼스 르네상스플라자 정영양자수박물관에선 자수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 수업이 운영됐다. 고려청자를 상설 전시 중인 한양대 박물관에선 고려청자 모형 제작 강좌가 열렸다. 또한 홍익대 박물관에선 단색화와 조선 목가구에 대한 전시와 연계해 1970년대 한국 미술에 대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 본교 제2창학캠퍼스 르네상스플라자 정영양자수박물관에서 개최한 의 전시 모습이다.
▲ 본교 제2창학캠퍼스 르네상스플라자 정영양자수박물관에서 개최한 의 전시 모습이다.
▲ 본교 박물관 공식 웹사이트에선 을 360° VR(가상 현실, Virtual Reality)로 관람할 수 있다.
▲ 본교 박물관 공식 웹사이트에선 을 360° VR(가상 현실, Virtual Reality)로 관람할 수 있다.

대학 박물관은 자교 학예사 양성 기관의 기능도 수행한다. 학예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선 한국박물관협회에 등록된 박물관에서 일정 기간 실무 경험을 쌓아야 한다. 따라서 학예사를 꿈꾸는 학우들은 자교 박물관에서 근무하며 학예사 과정을 준비할 수 있다. 일부 대학 박물관에선 자교 학생들로 구성된 **도슨트(Docent) 서비스도 운영된다. 관련 업계 진출을 희망하는 대학생들은 자교 박물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하며 학예사 업무를 체험해 볼 수 있다. 안 협회장은 “대학 박물관에서 배출된 학예사가 전국의 여러 문화 기관에서 훌륭한 활약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이 존재하는 목적은 인재를 길러내기 위함이다. 따라서 대학은 대학생에게 어떤 가치를 지니고 어떤 꿈을 꾸며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건넨다. 그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대학이 지향하는 인재상이기 때문이다. 대학 박물관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이제 강의실과 도서관, 공연장, 체육관에 가려져 있던 대학 박물관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본인만의 정답을 논하게 될 대학생을 위해 대학 박물관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인구를 국내 박물관의 수로 나눈 값임.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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