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제도에 얽매였던 과거에서 벗어나 결혼과 출산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가족을 구성하는 시기를 비롯해 그 형태도 다양해졌다. 지난해 11월 한 방송인이 결혼하지 않고 출산한 소식이 알려지며 ‘비혼모’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아직 사회는 이성 부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정상적인 가정의 형태로 규정한다. 이러한 정상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에겐 ‘한부모 가정’ ‘조손가정’ 등의 이름이 따로 붙는다. 차별적 사회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비혼 가정이라는 새로운 가족 형태를 선택하는 여성들이 있다. 스스로 비혼 가정에서의 출산을 선택한 ‘자발적 비혼모 여성들의 현재를 살펴보자.


가정을 꾸리는 또 다른 방법, 비혼 출산
비혼 출산은 정부가 보호하는 결혼 제도 밖에서의 출산을 말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비혼 여성의 출산에 관한 논의가 부족했다. 임신과 출산에 혼인을 전제하는 시각이 사회 전반에 만연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방송인이 비혼 출산을 한 일을 계기로 대중에게 비혼 출산이라는 화두가 새롭게 던져졌다. 비혼 출산을 선택하는 여성이 전 세계 사회에서 등장하면서 ‘자발적 비혼모’라는 용어도 함께 제시됐다. 동시에 정상 가족에서 벗어난 이들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은 해결해야 할 새로운 과제가 됐다.

한국 사회에선 보편적인 정상 가족 형태가 아닌 가정이 부정적으로 비춰진다. 양친이 없거나 부모 중 한 명만 있는 가정을 ‘결손가정’으로 지칭하는 것에서도 정상 가족에서 벗어난 가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김선혜 이화여대 여성학과 조교수는 “지금까지 정상 가족으로 통해온 가정의 모습이 정말 ‘정상’적인 형태인지에 대해 재고해야 한다”며 “이성 부부와 그 자녀로 구성된 가정이 더는 보편적인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던 어휘나 가족 정책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선 비혼 출산을 수용하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8일(수) 통계청의 ‘2020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비율은 지난 2012년 이래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그동안 당연하게 통해온 정상 가족 이념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비혼 출산은 여성이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 비혼 출산 가정은 호주(戶主)의 역할을 맡는 사람이 여성이므로 전통적 가족 형태와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18일(수)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사회 조사 결과’에서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문항에 응답한 비율이다. 지속적 증가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18일(수)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사회 조사 결과’에서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문항에 응답한 비율이다. 지속적 증가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인식의 변화에 따라 언어 사용에서도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존중의 필요성이 조명된다. ‘미혼모’는 ‘결혼해야 할 사람이 아직 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가부장제에 힘을 실어주는 단어다. 김 교수는 “‘미혼모’라는 표현은 모든 어머니는 당연히 혼인자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이는 여성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표현이므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족의 유형을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구분하는 것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김혜영 한국건강가정진흥원 이사장은 “한국 사회의 가족 형태가 일일이 분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져 각 가족을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하다”며 “피부양자와 부양자로 가족 구성원을 정의한다면 가정의 유형이 아닌 부양 대상의 특성에 따라 추가 지원하는 가족지원정책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도 엄연한 ‘가족’입니다”
한국에선 아직 비혼 출산과 관련된 제도가 미비하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하 생명윤리법)’ 제24조 제1항에 따르면 배아생성의료기관은 난자 또는 정자를 채취할 때 배우자의 서면동의가 필요하지만 비혼자는 해당 부분을 공란으로 남겨둘 수 있다. 그러나 대한산부인과학회의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은 체외수정시술 대상을 혼인 관계에 놓인 부부로 한정한다. 비혼 여성도 임신할 수 있는 대안인 보조생식술이 이성 부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민정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보건사무관은 “보조생식술 진행 시 배우자의 서면 동의도 필요한 절차는 아니다”면서도 “의료기관 윤리 지침상 현실적으로 비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시술은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비혼 여성이 출산 목적으로 정자를 기증받는 일도 불가하다. 비윤리적으로 난자 채취가 이뤄진 *황우석 박사 사건 이후 윤리 조항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식 세포에 관한 윤리의식이 지나치게 강조되자 생식 세포의 의학적ㆍ사회적 수요가 간과되는 문제로 이어졌다. 공공 정자은행 부재와 여성의 재생산권 제한 등이 대표적인 예다. 박남철 한국공공 정자은행연구원 이사장은 “여러 측면에서의 수요와 필요성을 고려하지 않고 윤리적 기준에만 맞춘 과도한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며 “정자의 이용과 기증자 모집에 대한 명확한 법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공 정자은행은 비혼 출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다. 정자은행은 기증자로부터 채취한 정자를 동결 보존해 뒀다가 보조생식술이 필요한 이들에게 공급하는 기관이다. 출산과 양육의 경제적 여건을 갖췄지만 스스로 임신이 불가한 비혼 여성은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게 공공 정자은행이 없다. 지난 2019년 세계 최대 정자은행인 크리오스 인터내셔널(Cryos International Sperm Bank)의 지원으로 국내 정자은행 설립이 추진된 적은 있으나 정자의 상업적 이용에 대한 우려가 야기돼 무산됐다. 박 이사장은 “일반 부부가 출생한 아이의 선천성 기형 발병률이 정자은행이 공급한 정자로 출생한 아이의 발병률보다 4배가량 높다”며 “출산을 선택한 비혼 여성이나 난임 부부 대부분은 양육 조건이 충분히 갖춰진 상태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성장 환경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저출생 극복을 위한 난임 지원 제도에서도 자발적 비혼모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현행 난임 지원 정책은 정상 가족 범주에서 벗어난 가정은 모두 배제한다. 지난해 2월 6일(목)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 모자보건사업 안내’에 따르면 난임 지원은 ‘난임진단을 받은 난임 부부’의 보조생식술 경제적 부담 경감을 목적으로 한다. 김 교수는 “사회 제도가 여성의 재생산권을 정상 가족의 규범 내로 제한하면 적은 숫자의 가정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된다”고 말했다.

모든 가정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려면
차별 없는 지원을 위해선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임산부를 포용해야 한다. 현재 운영되는 비혼모 지원 정책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비혼모 혹은 비자발적인 비혼모를 그 대상으로 삼는다. 김 교수는 “생계 부양과 돌봄 노동을 홀로 수행하는 비혼모는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며 “비혼모를 포함한 모든 여성에게 임신·출산·양육에 있어서 차별 없는 사회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돌봄 지원을 확대하고 각 가정에 맞춤형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며 “자발적 비혼모를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은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혼 출산을 포함한 모든 출산 형태의 존중은 인구 절벽의 극복에도 도움 된다. 지난해 12월 11일(금)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 동향 2020’에 따르면 한국의 비혼 출산 비중은 30%~50% 규모를 유지하는 서구 국가보다 현저히 낮다. 지난 2019년 혼외 출생아는 전체 출생아의 2.3%에 그쳤으며 이는 OECD 국가 중 최저치다. 김 이사장은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용할 수 있는 사회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며 “모든 개인을 보호하는 안전망이 사회에 정착할 때 혼인을 통해서든 비혼에서든 출생률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위의 통계에 따르면 혼외 출산을 허용한 국가는 전체 출생률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비혼 출산으로 태어난 아이의 양육환경 보장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비혼 여성의 출산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에서 비혼 출산은 아동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비혼 가정의 아이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받지 않고 자라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담론이 이뤄져야 한다. 김 이사장은 “여성의 재생산권을 보호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출생을 선택하지 못하는 아동의 권리 보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아이에게 건강한 생활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는지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가정 형태를 포용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비혼 출산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기존의 부정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새로운 가정 형태에 대한 논의는 형식적인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이 사무관은 “비혼 출산을 향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을 개정하거나 제도를 신설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며 “현재는 초기 공론화 과정으로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한 단계다”고 말했다. 혼외 출산이 법적으로 허용되더라도 이들이 차별 대상으로 여겨진다면 가정의 다양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재생산권 및 자기결정권은 여성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다. 김선혜 이화여대 여성학과 조교수는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라면 여성의 재생산권도 보장돼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비혼 출산에 관한 논의를 시작으로 가족 구성의 다양화를 긍정하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고, 자발적 비혼모를 향한 존중과 배려가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때다.

*세계 최초로 난자에 체세포를 이식해 복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했다는 황우석 교수의 논문이 조작된 내용으로 밝혀진 사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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