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금) KBS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에서 여성 징병제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여성 징병제에 성인남녀 1012명 중 52.8%가 찬성했고, 35.4%가 반대했다. 지난달 19일(월)엔 청와대 국민청원엔 여성 징병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청원이 게시됐다. 해당 청원은 지난 18일(수)까지 진행됐으며 1만2243명의 동의를 얻었다. 새로운 병역 제도가 요구되는 현재 여성 징병제에 관한 논의가 꾸준하다. 여성 징병제의 도입을 비롯해 한국의 병역 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병역 제도, 변화의 길목에 서다
한국에서 여성은 모병제, 남성은 징병제로 병역을 수행한다. 이는 ‘병역법’ 제3조에 근거한 것이다. 모병제와 징병제는 병역의 강제성에서 차이가 있다. 모병제에서 군 복무는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지만 징병제에서 개인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병역의 의무를 진다. 현재 한국은 지휘관급 군인을 모병제로 선발하고, 일반 병사를 징병제로 모집한다. 현행 병역 제도에서 여성은 일정 교육을 거친 후 부사관과 장교부터 지원해야 하고 남성은 일정 나이가 되면 병사로 입대해야 한다.

최근 한국에선 새로운 병역 제도의 필요성이 논의되고 있다. 세계정세 변화, 4차 산업혁명 등 사회 환경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출생률 감소는 군 병력이 줄어드는 직접적 원인이다. 지난 8월 25일(화)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합계출산율은 0.92명이었다. 합계출산율 0점대는 지난 2018년 조사에서 최초로 기록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추세다. 국방부는 지난 2018년 ‘국방개혁 2.0’을 수립하며 국방 여건이 병역자원의 급격한 감소에 직면했다고 봤다.


새로운 병역 제도로 모병제, 병역특례제도와 함께 여성 징병제가 논의되고 있다. 모병제에서 군 복무에 자원한 개인은 전문 군인으로 육성된다. 따라서 모병제는 병력은 소수지만 개별 병사의 전투력은 높다. 병역특례제도는 병역 의무를 지닌 일부 개인을 군에 복무하는 대신 병무청이 인정한 다른 기관에서 활동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는 특정 산업·학문 분야에 이바지하는 연구 인력이나 체육·문화 부문에서 국가가 인정하는 결과를 낸 예술인에게 적용된다.

여성 징병제는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군 복무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여성 징병제에선 양성 모두를 징집하므로 많은 병력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여성 징병제는 남북 대치 상황, 상비군 병력 확보 등의 군사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꼽힌다. 그러나 성평등 실현과 병영 환경 등의 측면에서 여성 징병제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국방의 의무, 여성에게도?”
일부 국가는 주변국과의 분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여성 징병제를 채택했다. 이스라엘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과 함께 서아시아에 위치한 국가로 주변국과의 충돌이 잦다. 이에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때부터 남성과 여성 모두를 병사로 징집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09년 프레시안 보도에서 이스라엘 활동가 알렉스 파루신(Alex Parushin)은 이스라엘 군 내에서 실제 여성의 지위는 비서, 복지 등 행정 업무에 그친다고 말했다. 사회의 성별 위계가 군 내에서 재생산된다는 것이다.

군 인력 확보를 근거로 여성 징병제 시행에 찬성하는 입장도 있다. 현재 한국에선 인구 감소에 따른 병력 부족이 예측된다. 지난달 13일(화)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모종화 병무청장은 오는 2032년엔 가용한 병력이 18만 명 이하로 감소할 것이라며 병역 제도에 관한 검토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같은 입장은 군 인력 감소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인식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노상연(화공생명 19) 학우는 “출생률이 낮아서 여성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주장은 다소 징벌적인 조치로 보인다”며 “여성 징병제를 찬성하는 이유는 여성도 남성과 같은 국가의 일원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여성 징병제를 통해 양성평등을 이루고자 한 사례도 있다. 노르웨이는 주변국과의 마찰이 적어 징집 가능한 6만 명 중 1만 명만 확보해도 국방 안보에 지장이 없다. 그러나 지난 2016년 노르웨이는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다. 군 병력이 부족한 상황이 아님에도 노르웨이가 여성 징병제를 도입한 이유는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노르웨이는 성평등 지수가 세계 2위에 이르는 국가다. 성평등 지수는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지위를 가졌는지를 나타낸 수치다. 또한 지난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에 따르면, 여성 임원 할당제를 도입한 노르웨이는 기업 임원들의 40% 이상이 여성이었다.

한국에선 여성 징병제 찬성 근거로 현실 사회에서의 실질적인 성평등 실현을 들기도 한다. 법은 여성과 남성에게 국민으로서 동등한 의무와 권리를 규정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론 임금과 고위직 임원 수 등에서 성별에 따른 차이가 나타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019년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 비율은 32.4%로 회원국 중 최상위 수준이다. 여성과 남성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징병 대상에 남성만 포함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는 측도 있었다. 노 학우는 “국가에 봉사하는 일이 특정 성별에만 국한돼 안타깝다”며 “국가를 지키는 일의 가치가 실현되려면 여성 징병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성 징병제, 아직은 시기상조”
여성을 고려한 병영 시설이 부족하므로 여성 징병제는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 10월 한겨레는 방탄 헬멧, 방탄조끼 등 군에서 사용하는 주요 장비가 여성의 체형에 맞춰 제작되지 않고, 관련 정책의 시행 여부도 아직 불투명하고 보도했다. 조영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교육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여전히 군대엔 여성이 복무하기 어려운 환경이다”며 “여성 징병제가 실시되려면 여성이 군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월경, 임신과 같은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이유로 여성 징병제 시행이 어렵다고 보기도 한다. 이혜주(영어영문 20) 학우는 “월경통이 심한 여성도 있고 출산 후 후유증을 앓는 여성도 있다”며 “여성의 신체적 특징으로 인해 병역 의무를 이행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에서 헌법재판소는 군복무를 남성에게만 의무로 요구하는 현행 병역법이 헌법적 가치에 위반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간 현행 병역법이 성차별적이라는 헌법 소원은 모두 다섯 건 제기됐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0년, 2011년, 2014년 세 차례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고, 법률 요건을 갖추지 못한 두 번의 소원은 심사를 거부당했다. 헌법재판소는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성도 생리적 특성, 임신, 출산 등으로 훈련과 전투에 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여성 징병제 시행 전 군 내 성범죄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달 16일(금) 문화일보는 지난 2015년부터 지난 6월까지 5년간 군에서 파면된 장교 58%의 사유가 성폭행, 성추행과 같은 성범죄였다고 보도했다. 또한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군대 내 성폭력의 심각성에 대해 ‘심각하다’ 또는 ‘매우 심각하다’고 답한 여성 군인(이하 여군)은 54.1%였다. 익명을 요구한 학우는 “현재 여성 징병제 논의가 성범죄에 관한 대책에 기반해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여군을 고려한 병역 제도가 되려면
최근 병역 제도에서 여성 군인을 고려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 1월 29일(수)에 개최된 ‘제9차 여군 비중 확대 및 근무 여건 보장 추진협의회’에서 여군의 처우를 개선하는 대책을 마련했다. 국방부는 여군의 역량 개발을 위해 정책부서 및 전투부대 지휘관 보직을 늘렸다. 성범죄 감소를 위해선 성폭력 피해자 상담·신고 통합지원시스템을 실시하고, 성 고충 전문상담관과 국방부 성폭력 근절 전담 인력을 증원했다. 또한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힘썼다. 자녀가 2명 이상인 경우 사용 가능한 자녀돌봄 휴가를 연간 2일에서 3일로 확대하고, 군 어린이집과 공동육아나눔터를 확충했다.

그러나 여군의 근무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국방부의 정책은 아직 미비하다. 군 어린이집을 증설하는 정책엔 여성을 임신 가능한 존재로만 본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군인권센터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국방부가 제시한 육아휴직과 같은 정책은 여군의 진급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 징병제가 여성을 독립된 인간으로 바라보는 정책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재 여성 징병제에 관한 논의에선 여러 의견이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병역 제도가 요구되면서 여성 징병제를 비롯해 모병제, 특례제 등 여러 대안도 검토되는 단계다. 비단 여성 징병제가 아니더라도 이제는 여성을 고려한 병역 제도가 제시돼야 한다. 조 연구위원은 “병역제도를 공론화해 논의하기는 쉽지 않다”며 “병역제도에 대한 다양한 의견 수렴의 장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말한다.


여성 징병제에 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조영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문화교육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병역 제도는 군에 복무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차별을 야기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병역 제도에 관한 논의는 병력 규모, 군 복무 환경 등을 고려해 현실적인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국민으로서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당사자인 여성에 관한 고려도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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