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화) 본지 편집실에서 기자 2인과 학우 3인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저출생 문제의 당사자는 청년이다. 저출생은 청년들의 출산 기피 현상에서 기인하고, 청년 세대는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감소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2월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청년들의 현재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저출생 문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청년은 해당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본지 기자단은 지난 7일(화), 출산의 주체인 20대 여성과 저출생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담을 나눴다. 대담엔 결혼과 출산에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학우 3인이 참석했다.

▲대담에 참여한 김수빈, 이수민, 최지영(가명) 학우에 대한 설명이다.


나 그리고 출산
Q. 결혼과 출산에 대한 가치관이 각자 다른 걸로 알고 있다.
김: 결혼과 출산 모두 희망한다. 서로를 잘 챙겨줄 수 있는 가족을 만들고 싶다. 최근 엄마랑 대화하면서 내 얼굴에 보조개가 있단 걸 알았다. 나도 몰랐던 보조개를 엄마는 이미 알고 계셨던 거다. 엄마처럼 ‘내 자식이 태어난다면 좀 더 사랑해 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아이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이를 낳은 후 여성이 육아를 거의 책임져야 한다. 여성으로서 결혼과 출산을 했을 때 좋은 점은 없다고 느껴진다. 
이: 다른 나라에서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다. 아이를 키워보는 경험을 해보고 싶지만 현실을 보면 바보 같은 일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낳는 것에 불안감과 두려움이 있다. 출산 뒤 경력 단절 문제가 제일 크다. 우리나라에서 불안하게 아이를 키우는 것보단 나의 능력을 높이는 데 투자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 
최: 결혼과 출산 모두 희망하지 않는다. 결혼하는 본질적 이유는 외로움 해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외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은 결혼 외에도 많다. 굳이 결혼할 필요를 못 느끼겠다.

Q. 인구절벽과 저출생 현상을 체감한 적 있나.
김: 뉴스에서 숫자로만 봤는데 현실로 다가와 놀란 적이 있다. 올해 사촌 동생이 내가 졸업했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옛날엔 한 반에 25명씩 10개 반이 있었는데 지금은 20명씩 5개 반이라고 들었다. 딱 반 토막이 난 거다. 
최: 당연한 흐름이라 느껴서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내가 졸업한 학교도 인원이 반이나 줄어들었다. 그런데 그냥 아쉽고 안타까운 정도다. 애초에 저출생 문제가 발생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단 생각이 든다.
이: 동감한다. ‘올 게 왔구나’란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여성이 살아가기 힘든 나라다. 여성이 아이를 낳기 힘드니 소멸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최: 뉴스를 접하다 보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암담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도 소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막연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소멸이 가까워지면 나에게도 위협이 되고 생존이 어렵겠지만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저출생, 원인을 찾아서
Q. 본격적으로 저출생의 원인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자. 전문가들은 일자리와 주거 불안정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이: 일자리와 주거는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그러나 결국 ‘여성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환경’과 직결된다. 수요가 높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지방이 아닌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수도권으로 인구가 쏠리다 보니 집값이 오르고 일자리가 부족해진다. 자연스럽게 그냥 ‘아이 안 낳을래’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졌다.
최: 물론 경제적 요인도 저출생에 영향을 준다. 하지만 사실 대학생 관점에서 당면한 문제로 느껴지진 않는다. 경제적 원인은 저출생 현상이 심각해진 이유를 명확히 드러내지 못한다. 개인적으론 ‘성차별적인 환경’이 비혼과 비출산을 결심한 가장 큰 계기였다.

Q. 그렇다면 저출생의 가장 큰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이: 경력 단절이라고 생각한다. 육아휴직 후 복직해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나는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사회초년생이다. 추후 아이를 낳고도 경력을 쌓고 싶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이제 회식 못 가겠네’ ‘술 못 마시겠네’ ‘애 보러 가야 하니까 야근 못 하겠네’란 식으로 눈치를 준다. 갑자기 대기 발령을 내리거나 일을 그만두게끔 유도하기도 한다. 
김: 동의한다.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일자리를 결혼과 출산으로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아직 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고 말지, 이미 가진 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이: 최근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플랫폼도 많이 생기고 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여성이 경력 단절 상황에 놓여있단 걸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최: 임금이나 승진에서 여성이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단 것도 요인 중 하나다. 주변 선배들로부터 ‘담배 정치’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자들이 담배를 피우면서 정보를 주고받고 친목을 다진단 뜻이다. 그 과정에서 정보의 우열이 생기고 승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여성 직장인을 위한 목소리가 지금보다 커져야 한다. 여성들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찾고 평균 임금이 남성과 동등해지는 순간까지 다 함께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Q. 여성들이 가정에서 느끼는 부담도 영향을 미치나.
이: 그렇다. 우리나라에선 양육과 가사 부담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가중된다.
김: 가부장적인 가정 문화도 문제다. 가정에 대소사가 있거나 명절이 되면 주로 일하는 것은 여성들이다. 그래서 명절이 지나면 엄마들이 골골대시면서 ‘너는 나중에 능력 되면 결혼하지 말라’라고 하신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딸들이 나중에 결혼과 출산을 하고 싶겠는가.
이: 공감한다. 가부장적 제사 문화, 명절 문화가 여성들이 성차별을 가장 크게 느끼는 지점인 것 같다.

Q. 저출생을 초래하는 기타 요인엔 뭐가 있을까.
이: ‘모든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란 분위기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란 노래 가사도 있지 않나. 결혼과 출산도 인생의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고, 원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단 인식이 생겼다. 인식 변화가 저출생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최: 엄마와 아이들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것도 한몫한다. 대표적으로 ‘맘충’이란 단어가 있다. 왜 엄마들이 ‘맘충’이란 단어를 듣게 될 만큼 공격적이고 예민해졌을까. 애초에 사회가 그들에게 친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란 말이 있다. 아이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자랄 수 있도록 어른이 나서서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이: 사람들 간 ‘정’이 없어진단 얘기가 자꾸 들리다 보니 아이를 낳기 망설여지는 것 같다. 현재 사회엔 남녀·지역·세대 갈등이 팽배한다. 갈등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태어난 아이가 마음껏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존중받을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청년 여성이 말하는 ‘진짜 정책’
Q. 현행 저출생 대응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최: 정부가 정책을 제안하며 노력하고 있단 건 인정한다. 그런데 정작 정책이 주인에게 잘 돌아가고 있진 못하다. 
이: 동의한다. 이미 저출생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주변에서 아이를 낳은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국가에서 돈을 많이 지원해 준다고 한다. 정책만 들으면 이렇게 좋은 나라가 없다. 그런데 정책이 잘 시행되기 위한 환경이 뒷받침돼있지 않다. 단기적인 현금성 정책보단 본질을 꿰뚫어야 한다.

Q. 당장 제도 형성보단 인식 변화가 시급하단 건지.
최: 저출생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인식’이다. 정책상으론 여남 할 것 없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눈치를 준다. 은연중에 퇴사를 권고하기도 한다. 무언의 압박이 존재하는 것이다. 제도는 있지만 당사자들이 인식 때문에 이용하지 못한다. 제도가 원활하게 시행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김: 공감한다. 정책과 함께 사회적인 인식 변화도 이뤄져야 한다.
최: 정책이 정착될 수 있는 환경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바닷물에 민물고기를 넣는다고 해서 고기가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단발적으로 정책을 만들기보단 깊이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이: 금전적 지원만으론 저출생을 해결할 수 없다. 저출생은 많은 사회 문제들이 얽혀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우릴 N포 세대라 하지 않나. 현세대가 아이를 낳으려면 출산부터 양육까지 국가가 안정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김: 인식 개선을 위해선 교육도 중요하다. 국민의 생각과 정책의 방향이 일치해야 하는데, 그를 위해선 교육이 필요하다. 학교, 직장, 개인 할 것 없이 관련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이: 전 국민이 저출생에 대해 성찰해야 할 시기다. 여성을 문제 해결의 수단이 아닌 동반자로 보는 시각이 보편화돼야 한다.

Q. 문제 해결을 위해 추가로 필요한 것이 있다면.
김: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보장해야 한다. 결혼으로 맺어진 부모, 직접 낳은 자식이란 정상 가족의 틀에 얽매이기보단 동거, 비혼 출산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이: 공감한다. 이젠 새로운 정책으로 다양성을 존중할 때다. 싱글맘을 위한 유전자 정자은행 등 적극적인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

Q. 앞으로 정책이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최: 기존 정책을 건실하게 구체화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추가로 예산을 투입하기보단 정책이 잘 운용될 수 있도록 점검해야 한다. 단순히 정책을 만들고 끝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근시안적으로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정책의 시선이 ‘표를 위한 포퓰리즘’이 아니라 ‘청년을 위한 휴머니즘’으로 옮겨가야 한다. 그것이 인간다운 결혼과 출산을 이룩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Q. 20대 여성으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김: 그만 갈등하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 여성과 남성이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면 좋겠다. 사회가 좀 더 둥글어진다면 저출생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최: 여성들은 성차별에 대해 계속해서 지적해왔다. 앞으로 사회가 여성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줬으면 좋겠다.
이: 여성은 저출생 문제의 주체이자 당사자다. 여성이 현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 냈을 때 공감해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남성을 비하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 그러다 보니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기 조심스럽고 움츠러든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여성은 인구 위기를 해결할 수단이 아니다. 여성도 사람이고, 인간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난해 국무조정실이 시행한 ‘2022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혼 여성 55.3%, 미혼 남성 70.5%가 출산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출산을 망설인단 해당 통계는 청년 여성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다. 대담에서 여러 번 언급됐듯, 여성이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저출생 문제 해결의 열쇠다. 이젠 모두 합심해 그 열쇠를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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