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질된 대학의 기능···‘학문’에서 ‘취업’으로
정부 정책 또한 대학을 취업양성소로 부추겨
대학은 정책 따라가기 급급한 현실

그러나 대학의 본질 잊어선 안 돼
취업률만으로 평가할 수 없어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2015년도 중앙일보 대학평가 결과가 공개됐다. 본교는 지난해 34위에서 올해 33위로 한 단계 상승했지만 여전히 낮은 순위에 머물렀다.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크게 교육여건, 교수연구, 국제화, 평판/사회진출도 네 영역을 기준으로 대학의 순위를 매긴다. 이공계가 강화되지 않은 본교는 사회진출도 영역에서 비교적 낮은 점수를 받았다.

중앙일보 대학평가 결과에서 순위가 작년 대비 대폭 상승한 대학들도 있다. 17위에서 8위로 9단계 상승한 한양대(ERICA), 12위에서 7위로 5단계 상승한 이화여대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정책을 잘 따랐다. 취업률이 높은 이공계의 모집인원과 지원을 늘려 확대하고, 비교적 취업률이 낮은 인문계를 축소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오늘날 대학은 취업률이 높으면 좋은 대학으로, 그렇지 않으면 비교적 좋지 않은 대학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사회적 풍조는 대학을 취업양성소로 변질시키고 있다.

◆ 사회의 요구에 휩쓸려 온 대학
대학이 취업양성소가 된 배경에는 1990년대 시행된 ‘대학 자율화’ 정책이 있다. 대학 자율화 정책으로 인해 사립대학의 설립이 자유로워졌고 정원의 자율적 조정이 가능해졌다. 이후 대학 정원은 꾸준히 증가했고, 대학을 졸업한 학생은 많지만 그들이 일할 자리는 모자라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 1월 통계청에서 시행한 *잠재구직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15-29세 청년층 잠재구직자는 59만 3000명이며, 그중 44.4%의 학력이 대졸 이상이다. 청년 두 명 중 한명 꼴로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와서도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 인력은 늘어났지만 절대적인 일자리의 수는 증가하지 않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져 고용시장이 경직됐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장이 취업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대학생들은 취업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대학이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문패를 떼고 취업 양성소로 전락해 버린 이유다.

최근 시행된 교육부의 정책은 대학의 취업 중심의 개편을 심화시켰다. 교육부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학구조개혁을 추진해왔다. 지난달 21일(수), 교육부는 충남대학교에서 사회수요 맞춤형 인재양성 사업 기본계획 시안 발표 공청회를 개최했다. 공청회에서 설명한 주요 사업은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PRIME)’ (이하 PRIME 사업)과 ‘대학 인문역량 강화 사업(CORE)’ (이하 CORE 사업)으로 두 가지다. 먼저, ‘PRIME 사업’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과 대학이 배출하는 인력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고 대학생들의 취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다. 이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 대학은 사회의 산업 수요가 많은 이공계 정원을 늘리고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은 인문계의 정원은 줄여야 한다. 선정된 19개 대학은 내년 한 해 동안 교육부로부터 총 2012억 원을 지원받는다.

두 번째로 ‘CORE 사업’은 대학의 자율적인 인문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으로 4년제 대학의 인문대학 중 12곳을 선정해 총 344억 원을 지원한다. 지원을 받기 위한 구체적인 예시로 글로벌 지역학 학과·연구소를 개설하거나 혹은 인문학과 실용학문을 융합한 학과를 개설하는 것 등이 제시됐다. 표면적으로 CORE 사업은 PRIME 사업에서 소외될 수 있는 인문계를 지원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CORE 사업의 지원 금액이 PRIME 사업의 6분의 1 정도로 지원이 빈약하다. PRIME 사업에 편향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위 두 사업은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 등급에 큰 영향을 끼친다. (본지 제1301호 1면 ‘대학 구조개혁 평가, 본교 정원 4% 감축 권고 받아’ 기사 참고) 따라서 학교와 학생 모두에게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요구를 얼마나 충족하느냐에 따라 지원금 규모와 등급이 결정되기  때문에 대학은 선택권 없이 따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개혁’아닌 ‘개조’ 중인 대학들
본교는 올해 하반기 PRIME 사업과 CORE 사업에 집중한다. 먼저 PRIME 사업에 맞춰 2016학년도부터 공과대학을 신설하고 학과별 정원을 재배치한다. CORE 사업을 위한 방책으로는 인문계열 학생들을 위한 융합전공을 개설하고 역량지원을 늘리는 것이 있다. 이를 통해 본교는 학교 재정수입을 확보하는 동시에 학생 지원을 늘림으로써 대학 발전의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고자 한다.

하지만 인문 계열과 공학 계열의 균형적 발전을 추구하겠다는 계획과는 달리 2016학년도에 신설되는 공과대학 신입생에게만 이례적으로 파격적인 장학금을 지원한다. 입학성적 기준 상위 50%의 학생에게 첫 학기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학 중에도 타학과와는 다른 장학금 지원 기준이 적용된다. 공대 신입생에게 지급될 장학금은 교비로 충당된다. 김도희(한국어문 10) 학우는 “여성 이공계인 양성은 사회의 요구에 부합한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아직도 여성 전문가가 부족하다”며 “계열별로 균형적인 지원과 관심이 학교의 궁극적인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3월 건국대학교는 해당 대학 영화과와 영상학과의 통폐합을 선언했다. 두 학과 간의 연관성이 없음에도 건국대는 대학구조개혁 평가의 지침과 낮은 취업률을 이유로 학과 통폐합을 강행했다. 학생들의 반발과 시위가 이어졌지만 현재까지 건국대학교의 학과 통폐합 철회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취업 위주의 지원 정책을 펴는 것은 교육부뿐만이 아니다. 최근 미래창조과학부는 소프트웨어 중심 대학으로 8개 대학을 선정해 연간 약 2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소프트웨어 중심 대학은 사회 수요가 많은 소프트웨어 전문인력과 융합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선정된 대학은 소프트웨어 중심 학과를 신설하거나 규모를 늘리기 위해 기존 학과들을 통폐합 했다.

정부의 재정적 지원과 취업률만을 위해 대학을 개편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문제만이 아니다. 해외 대학들도 인문계의 취업률이 낮아 이공계를 확대하거나, 전문직 교육을 시작하는 양상을 보인다. 일본은 지난 6월 전국의 86개 국공립대학에 인문사회과학 계열과 사범 계열의 조직 폐지 및 개혁을 추진하도록 통보하고, 그에 따라 정부 기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일본 내 학계는 취업 시장에 대학을 맞춰 인문학과를 폐지하는 것은 학문의 본질을 무시하고 대학을 ‘직업양성소’로 전락시키는 행위라며 크게 반발했다. 일본 대학총협회는 “인문과학을 경시하는 것은 대학교육의 근본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대학, 본질에 충실하라
한편 대학이 취업하기 위한 곳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도 학문적 발전이라는 본질을 지키고자 하는 대학들이 있다. 하버드 대학교의 경우 철저히 이론 중심의 학문을 지향한다. 학생들의 사고를 확장시키고, 학문을 위한 학문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또한 하버드 대학교는 교양과목을 중심으로 전공 분야를 교육해 학생들이 다양한 학문을 총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학문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람직한 대학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베이징 대학교의 초대 총장 채원배는 대대적인 대학 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대학생들이 학문적 바탕 없이 현실적 이익을 앞세울 때 사회가 부패하며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채원배는 ‘인격미의 함양’과 ‘학문의 도야’가 대학의 궁극적 목표라고 밝히며 이러한 이념을 토대로 대학 개혁을 주도했다. 그 결과, 베이징 대학교의 인문계를 강화시켜 세계적인 명문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본교 송기창 교육학부 교수는 취업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현 시점에서 전공 과정을 자격증 취득이나 스펙을 위한 수업으로 구성한 일부 대학에 대해 “이는 대학이 스스로 대학이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대학이 대학의 본질인 학문 연구를 완전히 포기한다면 더 이상 대학으로 남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대학이 기업이나 학생들의 요구대로만 움직이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와 학생들의 요구를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학문 연구라는 대학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필요하다”며 “취업 준비에 집중한 나머지 지성, 정의 등 대학의 본질적 가치들이 사라져가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학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학은 대학평가에서 낮은 순위를 받고,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재정적 지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업률이 우수함을 평가하는 기준이라면 평가대상이 되는 기관은 대학일 필요가 없다”는 송 교수의 말처럼 대학은 취업률만으로 평가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본래 대학은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생겨나 학문적 성과와 그에 따른 사회적 발전에 초점을 맞춰왔다. 하지만 점점 대학은 교육보다는 취업을 위한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학이 ‘취업양성소’로 변질되고 있는 지금, 취업 이전에 대학이 진정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심도 있게 고찰해 봐야 할 때다.

*잠재구직자: 최근 구직활동을 안 했을 뿐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 아르바이트 등 단기 근로를 하지만 재취업을 원하는 ‘시간 관련 추가취업가능자’나 구직노력을 했으나 육아 등으로 당장 시작하지 못하는 ‘잠재취업가능자’와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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