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첫 주, 연극영화의 이해라는 과목의 첫 수업의 주제는 ‘이야기’였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수강생들은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Big Fish)>를 감상했다. 이 작품은 ‘이야기’를 잃은 지금의 영화들을 비판하기 위해 제작한 영화라고 한다. 영화를 감상하며, 비단 영화만 ‘이야기’를 잃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 미술시간의 주제가 되곤 했던 ‘장래희망 그리기’는 나에겐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NASA에 들어가 우주선을 설계하겠다는 야무진 장래희망을 어설픈 그림으로 그려냈을 때, 내 손에 들려 있는 스케치북은 이미 내가 설계한 우주선의 설계도였다. 그렇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내가 되고 싶은 것은 없었다. 내가 해야 하는 것만이 존재했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해야만 했고, 그 후에 내 ‘이야기’를 만들면 되려니, 간단하게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와 ‘이야기’에 관해서는 까맣게 잊은 채, 스무 살을 변명삼아 의미 없는 한 학기를 보내던 중, 교수님께서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라는 주문을 하셨다. 과제를 하며 나를 포함해서 대다수의 동기들이 나와 비슷한 때에 나와 유사한 이유로 그들의 ‘이야기’를 포기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대학생들이 꿈을 갖기 보다는 일하기 편하고 살기 쉬운 인생을 살기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 11월, 수업을 같이 듣던 선배의 초대로 우리 학교 정보방송학 전공의 영상제에 갔었다. 그날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한 여대생이 친구에게 ‘살길은 공무원 뿐’이라는 말을 듣고 서점에서 공무원 시험의 참고서를 슬며시 빼 드는 내용의 영상을 보았다.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슬프도록 공감이 갔다.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 내가 무엇을 위해 가고 있는지 재차 묻게 되었다.


수업에서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야기는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어느 감독은 ‘이야기’를 잃은 영화들을 비판했고 나는 ‘이야기’를 잃은 20대에게 우리 삶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우자고 말하고 싶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우리도 각기 다른, 멋진 이야기를 남기는 것은 어떨까 싶다.

                                                                                                 임재희(법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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