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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평화사절단 40人 “위안부 문제, 보고만 있을 수 없다!”화해와 감동으로 마침표 찍은 제12회 ‘피스로드’
서어리 기자  |  smpser71@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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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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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6일, 한국ㆍ일본ㆍ중국ㆍ말레이시아에서 온 40여 학생들이 경기도 광주시의 어느 외진 마을에 모였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하는 워크샵 ‘피스로드’에 참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이 나눔의 집에서 보낸 6박 7일 간의 ‘평화의 길’(피스로드, Peace Road)여정, 끝까지 한번 따라가 봅시다.


지난 호에서는….
첫날, 피스로드 참가자들과 첫 만남을 갖고 각 참가자들의 위안부 문제에 관심 갖게 된 계기를 들어봤다. 이튿날, 오전에는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을 견학했고, 오후에는 강일출 할머니의 피해 증언을 들었다.



토론 또 토론. 할 말 많은 ‘위안부’ 문제


(지난 호에 이어서 계속) 강일출 할머니의 증언이 끝나고, ‘일본의 전쟁 가해와 버림받은 할머니들’에 대한 주제로 제2토론이 시작됐다. 우선 증언을 듣고 난 후의 소감부터 나눴다. “오늘 증언이 싫었다.”라고 운을 뗀 한국인 윤은주(21)씨는 이어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에서 묘사된 위안부들의 처참한 삶의 모습은 과장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할머니의 이야기가 소설의 내용과 너무도 비슷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한국인 강명훈(26)씨는 “할머니들의 사과와 배상 요구는 자존심의 문제만이 아니다. 할머니께서도 말씀하셨듯, 애초에 위안부가 없었다고 부인하는 것은 그들의 삶 역시 부인하는 것이 된다”며 일본 정부에 대한 사과 요구의 타당성을 말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보다도 국내에서의 ‘의도적 무관심’을 더 큰 문제로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아울러 현 정부가 ‘실용’을 내세우며 사실상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한일 양국의 침묵의 카르텔이 더욱 심화 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제2토론이 주로 역사적, 외교적인 차원에서 이뤄졌다면, 제3토론은 위안부 문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인권’ 혹은 ‘성폭력’ 문제에 대한 주제로 진행됐다.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을 부를 때 흔히 쓰는 ‘종군위안부’라는 단어는 사실 오히려 본질을 덮는 단어이다.* 그럼에도 어감이 자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 문제가 있는데 이는 곧,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성폭력은 폭력으로 인정받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은 딜레마를 겪을 수밖에 없다.


중국조선족 퍄오 렌저(박인철)씨는 “남성중심의 유교국가인 동양에서 여성의 몸은 신성시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폭력을 당한 사실을 아웃팅(outing)하는 것 자체가 여성에게는 여성으로서의 지위를 잃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라며 여성 성폭력 사실을 쉬쉬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폭력이 폭력으로 간주되지 않는 것은 이처럼 여성에게 순결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참가자 모두 동의했다. 그렇지만 개인 역시 사회의 일원이므로, 우리 모두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했을지도 모른다는 반성을 하며 토론을 마무리했다.


매일 연이은 토론으로 지칠 만도 하련만, 많은 참가자들은 본 토론 시간을 훌쩍 넘겨 밤새 토론에 열중했다. 하고픈 이야기가 많을수록 잠 못 드는 밤은 더욱 많아졌다. 얼굴이 누렇게 뜨고, 부스스해져갔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치열한 지식논쟁의 희열과 비로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해하고 관여할 수 있다는 뿌듯함 때문인지 모두들 쉽게 잠들 수 없는 눈치였다.


일장기 앞에 두고 한 목소리로 “사죄하라!”


2월 20일 수요일, 광화문 일본 대사관으로 향하는 피스로드 참가자들의 손에는 ‘진실을 사랑합시다’ ‘우리는 죽지 않는다’와 같은 문구가 새겨진 플래카드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시위에 가져가기 위해 참가자들이 미리 만들어 놓은 플래카드였다. 그밖에 율동을 준비한 참가자들도 있었다. 모두들 자신들이 준비한 것들이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이날로 801회를 맞는 시위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정대협을 포함한 여성단체 관계자들, 피스로드 참가자를 포함해 유치원 어린이들, 중고등학생들도 모였다. 홀로 피켓을 만들어 온 할아버지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일본 대사관을 향해 ‘사죄하라!’라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른 채 지나가던 사람들도 가던 길을 되돌아와 기웃거릴 정도로 힘찬 구호였다. 구호에 더욱 힘이 실릴수록 할머니 뒤에 서있던 피스로드 참가자들의 플래카드도 더욱 번쩍 치켜 올라갔다.


정대협 대표의 성명서 낭독과 유치원 어린이의 편지 낭독이 이어졌고, 피스로드의 참가자들의 야심작인 단체 율동이 이날 시위의 대미를 장식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말레이시아인이 일장기가 펄럭이는 대사관 앞에서 민중가요 ‘바위처럼’에 맞춰 신나게 춤추는 모습은 단연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시위 내내 굳은 얼굴로 구호를 외치던 할머니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피스로드 참가자들과 함께 춤을 췄다. 그 사이 교감을 나눈 것일까, 함께 율동을 하던 한 일본인 남학생 참가자와 할머니가 따뜻하게 포옹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이 자리에서의 일본인 학생과 한국 위안부 할머니와의 포옹은 무척 묘하고도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이런 풍경 뒤로, 열댓 명의 의경이 지키고 서있는 일본 대사관 건물에는 늘 그렇다는 듯 조용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


일주일 간의 피스로드의 일정을 끝으로 ‘위안부’ 문제에 있어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지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키나와에서 왔다는 일본인 타마시로 후쿠코(24)씨는 “오키나와에도 위안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위안부 문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어쩌면 내 자신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나는 일본인으로서 일본 정부를 움직여야만 하는 책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 돌아가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이 문제에 대해 꾸준히 공부해 이것이 나의, 그리고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인 김태현(18)씨는 “피스로드 참가 전 후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나의 시각이 달라진 것 같다. 그 이전에는 단지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기 때문에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피스로드에서의 토론과 행사 참여를 통해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위안부 문제를 꼭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왜곡ㆍ과장 없이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남아있는 수첩의 빈 공간들은 차차 공부하고 생각해서 적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들 역시 열심히 공부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주변에 제대로 알리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피스로드의 총 책임자 무라야마 잇페이(27)씨는 “나눔의 집에서 생활한지 2년째 돼가는 데, 어느 날 한 할머니께서 나에게 언제까지 있을 것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말은 ‘나에 대해 언제까지 생각해줄래’라는 말과 같았다. 이곳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은 정말 많다. 일 년에 몇 천 명이다. 오는 사람도 많지만, 이것을 또 잊어버리는 사람도 많다. 이번 피스로드는 여기서 끝나지만, 참가자 모두에게는 진실을 전달해야하는 책임이 있다. 이후의 여러분들의 생활에서 피스로드에서의 생각과 모든 이야기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마지막 날, 밤새 이야기하느라 잠을 설친 참가자들의 초췌한 몰골이 웃음과 눈물로 얼룩져 엉망이 됐다.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채로 함께 사진 찍느라, 손 맞잡고 인사하랴 정신없는 가운데 이제 서로에게 안녕을 고해야만 하는 시간이 왔다. ‘다음에 또 만나요’ 서툰 한국어로 끝인사를 마친 일본 참가자들이 공항에 가기 위해 먼저 차에 올랐다. 일본 참가자들을 태운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남은 참가자들은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그렇게 6박 7일간의 피스로드 여정이 막을 내렸다.


잇페이씨의 말처럼, 나눔의 집에는 한 해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그리고 이 피스로드도 어느덧 12회째를 맞이했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세계 각지를 돌며 몇 번이나 증언을 하고 있고, 이 문제가 이슈화된지도 1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직은 일본의 겉치레식의 사과만 있었을 뿐,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Your action is more powerful than you think’. 이것은 피스로드 행사 중 번외 활동으로 다녀온 국제엠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에서 본 캠페인 광고 문구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 문구의 내용대로 우리들의 소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큰 힘을 만들 수 있다. 편지, 시위, 투고 그리고 피스로드와 같은 행사에 참가하는 일 등 방법은 다양하며, 그 힘은 실제로 이 문구처럼 ‘당신의 생각보다 더욱 크다’. 그러므로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들, 모두 행동하라!


사과의 말 한마디 듣지 못 한 채…
피스로드 워크샵 기간 내내 병상에 계셨던 문필기 할머니(83)가 지난 5일 끝내 지병을 이지기 못하고 별세했다. 문 할머니의 타계 소식은 곧 우리가 안고 있는 과제의 데드라인(Deadline)이 더욱 앞당겨졌음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로부터 ‘진심어린’ 사과와 배상을 받기 위해 한 사람 한사람의 노력이 더욱 절실한 때이다.

 



* ‘종군위안부’ ‘위안부’ 명칭 해석: ‘따를 종(從)’자가 포함돼있어 자발적으로 군에 따라갔다는 의미. 또한 위안부 문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용어인 ‘성노예’대신 ‘위안부’를 사용하는 것은 피해여성들이 성노예라는 말을 접했을 때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대체어 격으로 사용한 것.
** 1992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의 주관으로 처음 시작한 수요시위는 16년 동안 누적인원 10만 명을 기록한 세계 최장기 시위이다. 얼마 전 800회를 넘긴 수요시위는 오는 8일 100주년이 되는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하는 '제20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에 선정돼 그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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