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검은 기운이 서해를 덮쳤다. 전국에서 백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검은 바다와 기름 갯벌로 몰려들었다. 정부의 대책회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한국해양연구원들은 물리적 방제작업이 한계에 이르렀다며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바다 속의 기름은 계속 이동하므로 우리가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없으며, 자연의 정화능력에 맡겨야 합니다." 자연의 정화능력이 무엇이기에 태안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것일까? 땅과 물이 만나는 곳, 바다. 1152호 학술면에서는 태안을 살리는데 필요한 땅과 물의 자정능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토양수비대, 미생물 군단

토양의 대표적인 기능 중 하나는 물과 산소의 저장능력이다. 보통 나무가 자랄때 나무뿌리가 물을 머금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물을 머금고 있는 것은 흙이다. 이러한 흙 속의 물 덕분에 작은 생물들이 흙 속에 터전을 잡고,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다. 한편 흙은 작은 알갱이가 모여서 된 것이기에 알갱이 사이의 빈 공간인 '공극'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이 공극에 물과 산소가 저장되며, 이 물이 끊임없이 계곡으로 흘러나와 연중 물이 흐를 수 있는 것이다. 흙 속에는 물과 산소 이외에도 미생물들이 있는데 이 생물은 토양의 자정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

흙에는 유기물로 구성돼 있는 생물 즉 썩은 풀, 동물들의 사체 등이 많다. 그러나 대부분 큰 단위체의 유기물로 이뤄져있기 때문에 식물들이 흡수하기 힘들다. 흙에서 사는 지렁이는 바로 이러한 유기물을 먹어 식물이 유기물을 흡수하기 쉽도록 작은 단위체의 유기물로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지렁이의 입이나 소화관에서 나오는 산성의 소화액은 여러 가지 효소가 들어있어 이런 유기물질을 분해 · 배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분해 · 배설된 유기물은 흙의 영양분이 돼 식물이 잘 자랄 수 있게 한다.

바다의 토양인 갯벌에서도 지렁이와 같이 자연정화를 하는 생물들이 있다. 먼저,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경계지점에서 염생식물의 생산물을 먹고 사는 미생물은 오염물질이나 유기물질들을 1차로 분해한다. 이어 갯벌 속의 미생물과 갯지렁이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한다. 갯벌 1㎢ 안에 있는 미생물의 분해 능력은 도시하수처리장 1개의 처리능력과 비슷하며, 갯지렁이 500마리로 한 사람이 배출하는 배설물을 정화 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유기물의 최종면접관이라고 할 수 있는 해수에도 많은 미생물과 동 · 식물성 플랑크톤이 포함돼 있어 유기물을 분해한다. 우리 학교 지구환경연구소의 가수현 연구원은 "인류가 없는 지구는 존재할 수 있지만, 미생물이 없는 자연은 존재할 수가 없다"라며 미생물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수질검찰청, 산소특공대

계곡의 흔적이 보이는 화성의 사진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지구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에 기뻐했던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가 연구원은 "물은 3대 효소인 대기 · 토양 · 해양에 존재하는 물질이 순환할 수 있도록 원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자연의 생명유지를 가능하게 한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물은 천천히 뜨거워지고 천천히 식는 성질이 있어 지구의 온도를 조절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가까운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청계천 복개 이후 청개천 주변온도가 평균 1.7℃~3.3℃ 낮아졌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청계천의 물이 오염됐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인공적으로 흘려주는 물의 흐름이 정체돼 물에서 썩는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청계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고인 물이 썩는다'라는 속담처럼, 물은 흐를수록 건강하다. 정화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면의 산소가 흐르면서 물에 녹기 때문이다. 물속의 산소 역시 미생물과 관련이 있는데, 미생물은 크게 산소를 좋아하는 호기성 세균과 산소를 싫어하는 혐기성 세균으로 나눌 수 있다. 호기성 세균은 물이나 이산화탄소 정도만 배출하는 반면, 혐기성 세균은 유독물질을 배출해 악취를 낸다. 때문에 물에 산소가 부족해 호기성 세균이 줄어들면 물이 쉽게 오염될 수 있다.

물의 정화작용은 생물학적 · 물리적 · 화학적 작용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 수생식물과 수중생물의 생물학적 정화작용에 대해 알아보자. 물가의 갈대나 부레옥잠, 개구리밥 같은 수생식물은 투과되는 햇빛과 수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광합성 한 후 산소를 방출해 용존산소량을 높여준다. 또한 수생식물과 공생하는 플랑크톤 같은 미생물들이 생활하수나 산업폐수 속에 있는 유기물질을 먹고 살기 때문에 수생식물은 수질오염도를 낮추는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최근 수초의 이러한 정화능력이 부각돼 하천제방을 콘크리트 대신 늪지 식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물리적 정화작용에는 오염물질을 많은 양의 물과 섞는 희석,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염물질이 가라앉게 하는 침전 등이 있다. 한편, 산소를 인위적으로 결합시키는 화학적 정화작용은 생물학적 · 물리적 정화작용보다 그 효과가 적은 편이라고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자연의 자정 원리는 하수처리장에서 응용된다.

그러나 과연 자정능력이 우리가 내보내는 오염물질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쓰레기 매립, 비료의 지나친 사용 등으로 산성화된 토양에서는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물 역시 마찬가지다. 수질이 3급수에 이르면 자정능력이 한계에 다다랐다고 말한다. 가 연구원은 "자연의 정화능력이 없다면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부산물이 우리에게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빨래하고 버린 물을 다시 마셔야 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자정능력을 통해 우리의 괴롭힘을 묵묵히 참아내고 있는 자연. 자정능력은 분명 한계에 다다랐다. 자연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일, 이제 멈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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