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게 그린 아이라인과 굵게 말아 올린 파마머리. 무대 위 문희경 동문의 모습은 화려하고 카리스마가 넘친다. 그는 그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지금까지 뮤지컬 <맘마미아> <밑바닥에서> <미녀와 야수> 등 여러 작품에서 연기하며 뮤지컬계의 대모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뮤지컬 <나인>에서 영화제작자 ‘릴리안’으로 열연 중인 문 동문을 만나기 위해 LG아트센터 대 공연장을 찾았다. 그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 수수한 옷차림의 모습으로 나타나 “어머, 반가워. 얼른 들어와. 밥은 먹었어?”라며 정답게 인사를 건넸다. 무대 위 모습과는 달리 수수하고 부드러운 인상에서 그의 숨은 매력을 엿볼 수 있었다. 숨겨진 또 다른 매력을 기대하며, 그의 공연 준비와 함께 인터뷰를 시작했다.



노래하고 춤추는 불문과 퀸카

대학시절 그는 샹송 경연대회와 1987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대학시절이 평범하지 않았네요.’라는 기자의 말에 그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그리고 곧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그 땐, 정말 잘 나갔었지.”라며 짐짓 동의하는 화답을 한다. “당시 유행하던 첨단 패션과 헤어스타일은 다 섭렵했고, 미팅도 많이 했었지. 공부면 공부, 노는 거면 노는 것 뭐하나 빠지는 것 없는 불문과 퀸카였어. 대학 다닐 땐, 내가 정말 끝내줬어요.”


그의 대학생활은 결코 공부와 노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대학시절 그가 공부와 노는 것보다 더 열심히 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었다. “대학 4년은 내가 졸업 후에 어떤 일을 할지 정하고, 훗날 그 일을 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기라고 생각했어. 준비가 제대로 돼있지 않으면 아무도 날 인정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깊은 고민 끝에 대학생 문희경이 내린 결론은 바로 ‘뮤지컬 배우’였다. “대학생 때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너무 좋아했어. 그러던 중 우연히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뮤지컬을 보고 나도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지. 그때부터 뮤지컬 배우가 꿈이었어.” 대학시절 뮤지컬 배우를 열망했던 그가 몇 시간 후에 있을 공연을 위해 분장실 거울 앞에 앉아 메이크업을 했다. ‘뮤지컬 배우 지망생 문희경’에서 ‘뮤지컬 배우 문희경’으로 그의 모습은 변했지만, 메이크업을 하는 섬세한 손길과 진지한 표정에서 배우에 대한 열정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배움에 목말랐던 31살 연습생

그가 뮤지컬 배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그 시절,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은 생소한 공연물이었다. 때문에 뮤지컬 배우가 된다는 것, 뮤지컬 배우로 성공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개척되지 않은 길에 제 발로 뛰어든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가 이 일을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지. 힘들지만 보람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10년이든 20년이든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


대학 졸업 후, 뮤지컬 배우로 활동한 그는 31살이 되던 해에 뮤지컬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때까지 쌓아온 경력을 뒤로하고 기초부터 다시 배우고자 맨 처음으로 돌아간 것이다. 좀 더 큰 배우로 성장하기 위한 그의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그는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들과 함께 서울 예술단에서 춤, 노래, 연기의 기본을 배우는 늦깎이 연습생이 됐다. 그는 “도시락을 두 개씩 들고 다니며 밤새 연습했어. 굉장히 힘들었지. 다시 하라면 두 번 다시 못할 것 같아.”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힘든 만큼 값진 시간이었다. “남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창피하기는 했지만, 그때의 선택에 후회는 없어. 기초부터 다시 배우고 나니까 어떤 역할이든 다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거든. 뿌리가 깊은 나무가 돼야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시간이었지.”


자신감이 생긴 것도 잠시, 배움에 대한 그의 열정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좀 더 깊이 있는 공부가 하고 싶었던 그가 단국대 대중문화예술대학원 공연예술학과에 입학한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37살. “딸아이 유모차를 끌고 대학원에 등록을 하러 갔어. 그 모습을 보고 그곳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라니까.” 배우 문희경을 존중해주는 가족의 배려와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그는 마침내 단국대 공연예술학과 석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배움을 기반으로 지금의 ‘뿌리 깊은 뮤지컬 배우 문희경’으로 성장했다.


술집주인에서 아줌마까지, 변신이 즐거운 배우

<맘마미아>에서는 파란만장한 삶을 보낸 중년여인 ‘도나’, <밑바닥에서>에서는 술집주인 ‘타냐’, <나인>에서는 공연제작자 ‘릴리안’……. 뮤지컬에서 문 동문은 주로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최근 무대 밖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이와는 사뭇 다르게 엉뚱하고 코믹하면서도 친근한 이미지였다. 영화 <좋지 아니한가>에서 허리띠 졸라맨 엄마로, KTF 쇼(SHOW) CF에서는 다리미를 들고 호탕한 웃음을 보여주는 유쾌한 아줌마로 변신한 것이다. 어떤 모습이 진짜 모습이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 있게 “배우의 매력은 변신이지.”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조연상, 2007년 제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조연상 수상을 통해 실력 있는 배우로 인정받았다. 배우의 꿈을 이루고 그 실력도 인정받은 그이지만, 아직 못다 이룬 꿈은 있다. “내 인생에서 정말 모든 것을 걸고 해보고 싶은 작품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샹숑 가수 에디뜨 피아프를 다룬 뮤지컬이야.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영화 음악을 소개하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어.”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어느덧 기자 앞에는 화려한 분장에 멋스러운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뮤지컬 <나인> 속 영화제작자 ‘릴리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과 전혀 달라진 문 동문의 모습은 ‘배우의 매력은 변신’이라는 그의 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 했다. ‘저 사람이 그 사람이었나?’ 할 정도로 항상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어떠한 역할도 잘 소화해내는 배우로 남고 싶다는 배우 문희경. 다음 작품에서 보여줄 그의 또 다른 변신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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