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스코필드의 의료보험기록을 점검하던 새라 탠크레디는 마이클이 과거에 정신병 치료를 받았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치료한 바 있는 정신과의사 브라이튼을 찾아가 문의한다. 마이클 스코필드가 앓고 있던 정신병은 ‘잠재력 억제부족증’(Low-latent Inhibition). 브라이튼의 설명은 이어진다. 이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는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사물들을 눈으로 볼 수 있지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가령, 여기에 전등이 하나 있다고 하자. 일반인은 이 전등을 눈으로 보고 그 이미지를 머리에서 인식할 뿐이지만 잠재력 억제부족증을 앓고 있는 환자는 그 전등의 모든 것들을 머릿속에서 다 들여다 볼 수가 있다. 즉, 전구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고 나사못은 어디에 몇 개가 필요하며 심지어는 그 나사못을 고정시키는 너트까지도 그들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청사진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그들의 대뇌가 주위의 환경으로부터의 자극에 대해 고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인의 대뇌에서는 이러한 자극을 일정 수준에서 차단시켜 주는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청사진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만약 IQ가 낮은 사람이 잠재력 억제부족증에 걸리게 되면 소위 ‘미친 사람’ 혹은 ‘바보’가 되는 것이고 IQ가 높은 사람이 이 정신질환을 앓게 되면 마이클 스코필드와 같은 창의적인 ‘천재’가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는 최근의 화제작 ‘프리즌브레이크’(Prison Break)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우리는 여기서 ‘천재’에 대한 서양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즉, 천재란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특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보편적으로 누구나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천재적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 모두는 원래 다 천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잠재적인 천재성이 그대로 다 발현되면 우리 인간이 일상생활을 제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므로 이 능력을 적절히 차단시켜주는 신비스러운 장치가 우리의 머릿속에 함께 내장된 것이다. 천재와 천치에게는 이러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물을 볼 때 천재와 천치는 공히 그들의 머릿속에 어떠한 청사진이 그려질 텐데 전자의 경우에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칭송받겠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헛것을 보고 있는 거라고 매도당한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되면 ‘바보와 천재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도 양자가 모두 동일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다시 한 번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천재와 천치 중 어느 쪽이 됐든, 사물을 볼 때마다 복잡한 청사진이 자꾸 머릿속에 나타난다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울까? 그래서 천재는 일반적으로 단명한 것이 아닐까? 이번에는 반대로 생각해보자. 주위의 환경으로부터 오는 자극을 머릿속에서 적절히 여과해 주는 장치가 항상 정상적으로 작동해 ‘헛것(=청사진)’이 보이지 않는 (의학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우리 일반인들은 행복한 삶을 보장받은 대단히 축복받은 존재가 아닐까? 잘 보이지 않으니까 상상해 보고, 잘 모르겠으니까 옆 사람에게 물어보고 이야기 나누며 다시 생각해 보고, 오랜 노력 끝에 깨닫게 되면 그래서 즐겁고, 또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웃고 떠들며 사는 대다수 일반인들의 비천재적인 삶이 훨씬 더 행복한 것이 아닐까?


영어영문학부 이세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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