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78년. 대학로 소극장 ‘공간사랑’에 난데없이 장구, 북, 징, 꽹과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농촌 길, 마당, 놀이판 등에서 연주되던 풍물놀이가 실내 연주용으로 변형돼 무대 위에 오른 것이다.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김용배 네 명의 청년들이 연주한 이 음악은 곧 ‘사물놀이’라 불렸고, 그것은 올해로 탄생 3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30년 동안 사물놀이는 그 기원인 풍물놀이와는 다르게 제한된 공간에서 연주됐지만, 그 무대가 결코 작은 것은 아니었다. 사물놀이가 연주된 무대는 국적과 장르를 불문하고 모두가 모여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세계를 무대 삼아
사물놀이는 우리 민족의 전통음악이자 놀이인 풍물놀이를 ‘실내의 무대’라는 현대의 여건에 맞춰 변화시킨 음악이다. 변화로 인해 실외에서 실내로 실질적인 연주공간은 작아졌지만, 무대 때문에 오히려 사물놀이는 세계의 대중들 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세계 어디든 무대만 있다면 사물놀이가 연주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물놀이의 첫 세계 진출 무대는 1982년 미국 달라스에서 개최된 ‘82 세계타악인대회(PASIC)'이다. 이 무대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사물놀이의 존재가 알려졌다. 이후 사물놀이는 1984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슈퍼커션(SUPERCUSSION)'과 ‘월드 드럼 페스티벌(World Drum Festival)' 등으로부터 초청받아 공연된바 있다. 1991년까지 100여 개국에서 약 600회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물놀이의 해외공연은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


사물놀이의 해외 활동은 곧 바로 세계인들의 적극적인 활동과 찬사로 이어졌다. 뉴욕, 도쿄, 베를린 등 곳곳에 사물놀이 캠프가 생겼고, 대영백과사전에는 ‘사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신조어 ‘사물노리안(samulnorian)’이 등록됐다. 또한 사물놀이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세계를 뒤흔든 혼의 소리’, LA타임즈는 ‘인생을 활기차게 만드는 최고의 음악과 춤’이라고 보도했다.

모든 음악과 친구 되어
사물놀이는 국경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재즈음악, 국악관현악, 서양관현악, 피아노 연주음악, 대중음악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시도를 보여줬다. 그 예로 사물놀이패와 세계적 팝 뮤지션 허비 행콕(Herbie Hancock), 샤논 잭슨(Shannon Jackson) 등이 만나 결성된 SXL밴드,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의 협주곡 <신모듬> <단군>, 서양관현악과의 협주곡 <마당> <푸리> <터벌림> 등을 들 수 있다. 사물놀이 연구회 울림터 최병삼 대표는 “사물놀이는 리듬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장르와 잘 어우러진다”며 “그 중 재즈음악은 연주 방식이 자유로워 사물놀이와 함께 연주되기 쉬운 음악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30년간 재즈음악과 사물놀이의 만남은 두드러졌다. 1986년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한국 프리재즈의 선구자 강태환의 재즈음악과 사물놀이가 함께 연주된 것을 시작으로, 1988년에는 워커힐 미술관에서 공연 ‘정’이 열렸다. 이러한 사물놀이와 재즈음악의 만남은 사물놀이가 세계의 타악기나 재즈그룹과 만날 수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고 이는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사물놀이는 ‘토네 운트 게겐톤(Tone und Gegenton)' '위너 페스트 오켄(Wiener Fest Wochen)' 등의 재즈 페스티벌에서 초청 연주를 갖고,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다양한 재즈 페스티벌(Mores Jazz Festival)'에서 세계적인 재즈그룹 레드 선(Red Sun)의 음악과 함께 공연되기도 했다.

사물놀이는 지난 30년간 국경과 장르를 초월하며 사물놀이의 대중화, 더 나아가 ‘우리의 것’을 알리는데 앞장섰다. 이런 사물놀이가 탄생 30주년에서 그치지 않고, 더욱 긴 시간 대중 곁에 있기 위해서는 어떤 움직임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새로운 변화나 시도보다는 사물놀이의 근본인 풍물놀이로 돌아가, 전통적 가치 설립을 역설했다. 경기대 김헌선(국문학 전공) 교수는 “역사가 짧은 사물놀이 자체의 미래보다는, 오래된 풍물놀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며 “앉아서 하는 시끄러운 음악, 짜여진 음악에 치중하기보다는 풍물놀이의 자연스런 신명풀이와 춤사위를 되살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최 대표는 “사물놀이의 대중화를 위해 성급하게 변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사물놀이도 전통음악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서서히 변화함과 동시에 전통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람에 비유하면 어느새 30세를 맞이한 사물놀이. 사람의 나이 30세는 이립(而立), 즉 기초를 확립하는 나이라는데 사물놀이의 30세도 예외는 아닌가보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