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었던 것 같다. 더위를 피해 들어간 서점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였다. 멀티미디어를 전공하던 당시에 컴퓨터만 보느라 충혈된 눈 탓인지, 더위 탓인지 전혀 다른 분야의 서적이 눈에 들어온 건 분명 운명이었다. 지금의 진로를 결정하는 계기가 됐으니 말이다.

책의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저자의 훈련소 때 일이었다. 밥을 남기던 잘난 동기에게 ‘농민들의 노고를 생각하라’는 훈계를 했는데 돌아온 말이란 ‘농민들을 위한다면 쌀값을 올려야하고 그러려면 당연히 수요가 늘어야 하고 그러려면 자기와 같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자를 더욱 화나게 한 것은 ‘미시적으로 보면 본인에게 밥은 한계효용이 지금 제로가 돼있는데 더 먹으면 한계효용이 마이너스가 되므로 그만 먹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라는 동기의 말이었다. 논리적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어 결국 육탄전까지 벌어질 뻔한 그 사건에서 저자가 내린 결론은 경제학을 공부하면 인간성을 망친다는 것이었다. 비록 저자의 경험이지만 나라도 저 상황에서 수요와 소비를 계산하고, 효용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밥을 남긴다는 그 동기에게 주먹은 아니더라도 분한 기분을 표현했을 것이다.

도대체 경제학이 어떤 학문이기에 인간성을 망치는 것일까? 궁금증 반, 재미 반으로 다음 학기에 바로 경제학 과목을 수강했다. 컴퓨터와 친해서인지 말솜씨가 형편없었던 학생이었던 탓에 인간성은 나쁘지만 논리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경제학을 시작한 후 과외를 하려 할 때 과외비용과 기회비용을 저울질해보고 효용을 더욱 만족시키는 것을 선택하는 내 모습을 보며 ‘드디어 나도 인간성을 망치는 경제학을 조금이나마 익혔구나’ 하는 마음에 만족했었다.

이런 나와는 달리 경제학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용성이 떨어지고, 어려울 텐데 잘 할 수 있겠냐’는 걱정부터 했다. 한마디로 경제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공부를 하다 보니 경제학만큼 현실을 반영하고자 노력하는 학문도 없다. 사회현상을 분석할 때 수리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다 보니 어렵게 느껴지지만 이 또한 다른 학문처럼 익숙해지면 편해진다. 경제학을 전공한 후 신문을 자주 읽게 됐는데 실생활에서 경제 문제는 신문 경제면에만 등장하지 않는다. 신문의 사회면 기사들과 저녁 TV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왜 단지 정치적이고 사회적이기만 한 것이 아닌지 경제학을 공부해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복잡한 세상, 모든 문제의 밑바닥에는 돈(화폐)과 돈의 흐름과 그 흐름 위에 선 사람들 간의 이해관계가 있다.

정치와 교육, 환경오염과 마약, 의료보험과 조세정의, 매매춘과 부정부패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의 관점에서 다룰 수 없는 문제는 거의 없다. 한마디로 인간의 행위 가운데 경제적 선택행위가 아닌 것은 없는 것이다. 나도 많은 선택 앞에서 고민을 했었는데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선택을 할 때 나의 기준이 명확해 졌다는 것이다. 즉, 경제학이 어려운 수학적 공부일 수도 있겠으나 나의 미래를 위해 또는 바로 닥칠 선택 앞에서 전보다는 현명한 선택에 도움을 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본인만 만족스럽게 지내도 되련만 요즘 들어 경제학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경제학은 딱딱하고 재미없는 학문으로만 여기지 말고, 세상사의 이면을 보게 하고, 미디어를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일종의 '개안'의 경험을 하게 되는 학문으로 봐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가지게 된다.

문화련(경제학과 대학원 석사2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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