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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의 추억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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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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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원로교수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다. 그 교수님이 대학에 다닐 때 한 괴짜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분은 이런 저런 이유로 한 학기 수업의 대부분을 휴강하곤 하셨다. 그런데 학기말에 성적표를 받아보면 학생들 대부분의 평점이 시들시들(C, D)했다. 참다못한 학생들이 교수님께 “강의도 안 하셨으면서 학점까지 짜게 주시면 어떡합니까?”라고 항의하러 가면, 교수님 왈, “내가 강의를 안 했는데, 자네들이 이 과목에 대해 아는 것이 뭐가 있어? 아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학점을 잘 줄 수 있겠나?” 생각해보니 교수님 말도 일리가 있더란다. 웃으면서 연구실을 나올 수밖에. 요즘 상황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얘기지만, 당시 교수와 학생들이 갖고 있던 유머감각과 여유가 부러울 따름이다.


이번에는 필자가 어떤 대학에서 처음 시간강사를 했을 때 얘기다. 학기 말에 교직 이수를 하고 있던 4학년 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준 B학점 때문에 교사자격증을 못 받게 됐다면서 A학점을 달라는 것이다. 물론 안 된다고 했지만, 그는 매일 집으로 전화해서 사정을 했다. 계속 안 된다고 했더니 직접 집으로 찾아왔다. 눈물을 뚝뚝 흘려가며 교사자격증을 꼭 받게 해달라고 했다. 인간적으로 뿌리치기가 너무 힘들어서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내가 초보 강사라는 것을 알고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전임교수가 된 후에도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었다. ‘나중을 위해서 알고 싶은데 저의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알려달라’는 메일은 애교있는 예에 속하지만, 다짜고짜 ‘왜 이런 성적이 나왔는지 알려달라’는 전화나 메일은 기분을 약간 상하게 한다. ‘교수님 과목 학점이 안 나와서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고전적인 호소에는 무뎌졌지만, ‘절대평가를 하는 과목인데 왜 C학점을 주시느냐, A학점은 못 주실망정 B- 대신에 B+는 주실 수 있는 것 아니냐’ 등의 항의에는 아직 민감하다.


요즘 학생들에게 학점은 학기 말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 듯하다. 학점에 연연해 자신이 꼭 수강하고 싶은 과목을 수강하지 못하는 학생과 상대평가를 피해 정규학기의 전임교수 강의 대신 계절학기의 시간강사 강의를 듣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오죽하면 내 강의를 한 번도 안 듣고 졸업하는 학생이 있으랴. “교수님 강의를 들은 적은 없지만, 추천서 좀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라는 메일을 받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운 좋게 수강인원이 20명 이하인 과목이라도 맡게 되면 다른 학생들이 추가로 신청할까봐 내 마음도 초조해지는 것을 보면 나도 별 수 없는 인간임을 느낀다. 그러나 학점은 학점일 뿐, 학점이 수강신청의 기준이 돼서는 곤란하다. 학점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노력과 활동의 결과다. 내실 없는 학점은 내실 없는 대학 생활을 웅변해줄 뿐이다. 대학원입시 면접 때, 성적표를 보면서 전공과 관련이 없는 듯한 과목을 왜 수강했느냐고 묻는 경우가 자주 있다. 대답 대신 멋쩍게 웃는 학생을 대학원에서 뽑고 싶지 않다면 기업도 마찬가지일 게다. 대학 나온 사람치고 ‘학점의 추억’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이제 절대평가 과목을 찾아 애꿎게 생쥐만 학대하지 말자. 강의계획서와 교수얼굴과 성적표를 교차시키면서 눈치작전을 반복하지도 말자. 학점에 연연해 동아리 활동이나 봉사 활동, 과외 활동 등을 포기하는 것도 재고하자. 사회는 학점만 쳐다볼 만큼 어수룩하지 않다. 사회는 내실 있는 학점과 함께 내실 있는 대학 생활기록을 요구한다.

교육학부 교육학전공 송기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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