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통이라고 하면 '지루하고, 재미없고, 어려운 것'이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다.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를 '신선하고, 재밌고, 쉽게' 만든 현대 예술, 미술전시 '한국미술_여벡의 발견'과 판소리극 <뉴욕스토리>이다.

가득 찬 여백을 찾아

우리나라 전통회화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여백의 미를 이제는 현대미술에서도 빼놓아서는 안 될 것 같다. ‘한국미술_여백의 발견’에서 전통회화 속 여백의 미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여백의 미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월 27일까지 삼성미술관 리움(Leeum)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한국미술_여백의 발견’은 ‘여백의 발견, 자연’ ‘자유, 비움 그러나 채움’ ‘상상의 통로, 여백’이라는 세 가지 소주제로 이뤄져 있다. 이 주제를 따라 전시장을 둘러보면 여백은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먼저 ‘여백의 발견, 자연’에서는 여백이 우리와 친숙한 자연에서 출발함을 보여준다. 자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여러 작품 중, 여름날 소나기가 그친 후 웅장한 인왕산을 모습을 묘사한 정선의 진경산수화 <인왕제색도>가 눈에 띈다. 검은 것은 먹이요, 흰 것은 종이이자 여백인 정선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자연 속에 어우러져 있는 여백을 볼 수 있다. 김수자의 <빨래하는 여자-인도 야무나 강가에서>(옆 사진)는 종이 위에 묵이 아닌, 스크린 속의 영상으로 자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넓고 깊은 야무나 강을 바라보는 작가의 뒷모습을 찍은 이 영상은 야무나 강이 화장터와 접해있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단순한 영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여백의 출발점인 자연은 ‘자유, 비움 그러나 채움’에서 무위자연으로 확대되고, 결국에는 자유로 규정된다. 작가가 작품 속 공간을 비워 자유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겨난 여백은 작가와 관람객의 자기성찰 등 보이지 않는 사유로 채워진다. 실제로 어두운 주황빛을 띈 벽과 푹신한 공기쿠션으로 만들어진 박기원의 <진공>(옆 사진)은 관람객이 직접 그 작품 공간에 누워 편안하게 사유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자유롭게 비워진 공간은 상상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상상의 통로, 여백’은 작가의 상상이 깃들여진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 백두산 천지를 소재로 한 김홍주의 <무제>는 천지 주변의 봉우리들은 섬세하게 재현했지만, 연못은 흰 여백으로 표현했다. 또한 풍부한 상상력으로 끊임없이 도전한 백남준의 작품 <TV 부처>는 TV가 부처를 바라보는지 부처가 TV를 바라보는지, 보는 이를 헷갈리게 한다.


자연에서 출발한 여백은 인간의 사유를 자유롭게 했고, 그 자유는 기발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을 통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여백은 어느 샌가 무언가로 가득 채워져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이번 전시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여백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덩더쿵, <뉴욕스토리> 들어보세


뉴욕의 한 네일아트 가게에서 메니큐어 색깔 외우는 소리가 덩더쿵 북소리에 맞춰 판소리로 들려온다. “오메, 색깔 이름도 가지가지, 다 외울 수 있으려나, 그래도 한번 불러 보는디. 리얼리레드, 쌘티맨탈레드, 레드핫, 롱스템로지샤킹핑크, 하와이안핑크, 하아와이안펀치, 핑크팬더~”


오는 29일(목)까지 대학로 성균 소극장에서 열리는 판소리극 <뉴욕스토리(부제:손톱가게)>는 성균 소극장이 전통예술 전용공간으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열리는 페스티벌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뉴욕스토리>는 소리꾼이 뉴욕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언니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해주는 연극 형태로, 2명의 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가 1인 다역을 소화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뉴욕의 한국 교포가 운영하는 네일아트 가게에 순박한 충청도 아줌마 미카엘라가 새로 취직한다. 돈 벌러 갔다가 소식이 끊긴 남편을 찾아 뉴욕으로 온 미카엘라는 한국인인 실비아, 써니, 마리아에게 영어와 네일아트 기술을 배우며 뉴욕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고향, 시댁에 맡겨둔 아이들이 그리워 하루하루는 힘겹기만 하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편과도 이혼하게 된다. 영주권을 얻기 위해 미국여자와 위장 결혼을 했다던 남편이 결국에는 미카엘라를 떠나 그 미국여자와 살기로 한 것이다. 미카엘라는 네일아트를 하며 번 돈으로 밍크코트를 입고, 좋은 구두를 사 신었지만 ‘아이고, 아이고, 내 인생이 절단 났어유.’라며 통곡한다.


뉴욕 한국 교포들의 중요한 생업 중 하나인 네일아트 가게를 배경으로 그들의 애환을 보여주는 판소리극 <뉴욕스토리>는 어두운 줄거리를 판소리의 북소리처럼 흥겹고, 신나게 표현했다. 넥타이를 매고 북을 치던 점잖은 고수가 갑자기 능청스럽게 여자 목소리를 내며 미카엘라를 위로하는가 하면, 소리꾼이 영어 단어와 문장을 북소리에 맞춰 판소리로 부르는 등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신선한 웃음을 준다. 또한 여느 공연처럼 조용히 관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꾼의 강요 반, 관람객의 의지 반으로 극 중간 중간에 ‘얼쑤, 좋다’하고 흥을 돋우고, 팝송에 맞춰서 신나게 춤을 추는 등 직접 극에 참여하는 재미도 있다.


미카엘라와 가게 아줌마들의 판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어깨를 들썩이게 되는 <뉴욕스토리>. 극의 끝부분에서 실비아가 판소리로 말하던 ‘See you again'이 단순한 작별인사가 아닌, 꼭 다시 만나야 할 것 같은 약속으로 느껴진다. 우리도 판소리 장단에 맞춰 불러 볼까나, ‘See you a~gain, 뉴욕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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