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는 작게는 학생식당의 식단에서부터 교내 행사와 학우들의 불만사항, 나아가 사회의 이슈까지 전달하는 대학사회의 창이다. ‘숙대신보’를 비롯해 각 학교마다 자리한 학보는 과연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최초의 학보부터 언론탄압의 시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학보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1967년 '숙대월보'의 모습


최초의 학보는 1912년 미국 선교사가 운영하는 평양 숭실학교 대학부에서 발행된 숭대시보(崇大時報)이다. 이후 고려대, 중앙대를 비롯해 각 대학교마다 속속 학보가 창간됐다. 현재까지 약 200여개 대학에서 학보를 발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90년대, 학보는 가장 큰 고비를 맞았다. 독재정권체제 언론탄압의 연장선으로, 학보를 단지 ‘교내의 소식만을 전달하는 매체’라고 규정지으며 당시 사상에 어긋나는 기사 작성을 일체 금지했다. 뿐만 아니라 주간교수 등 학교 내 권위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제작중단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89년, 문교부는 ‘학보의 발행ㆍ편집인 명의를 학생들로 바꿔 좌경화ㆍ체제부정 등으로 실정법을 어길 경우 학생들에게 사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를 발표했다. 실제 이 조치 이후 7~8월에만 학보 기자와 일반 학생 등 10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89년에서 90년에 이르기까지 고대신문, 경북대 신문, 수원대 학보 등 많은 학보들이 주간교수의 자의적인 원고 수정과 이에 대한 학생 기자들의 반발로 발행이 중지됐다. 숙대신보 역시 95년 사설을 둘러싼 주간교수와의 마찰로 제작이 중단되기도 했다.

1995년 제작중단 상황을 알리는 대자보


그러나 학보는 학생 운동의 중심에 서서 발 빠르게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기도 했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사상을 깨우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가득한 시위 현장에서 학보사 기자들은 카메라를 들고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학보 역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갔다. 과거 신문의 크기가 일괄적이었던 것에 반해 품 안에 쏙 들어오도록 크기를 축소한 ‘타블로이드판형’, 가로 비율을 축소한 ‘서구형 대판형’ 등 그 모양이 다양해졌다. 또, 면의 레이아웃 역시 사진과 그래프, 일러스트의 활용 비율을 높이며 시각적인 면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사 아이템도 과거에 주로 사회운동과 관련된 기사를 작성한데 비해 현재는 사회, 문화, 학술, 환경 등 다양한 대학생의 관심사를 반영하고 있다.


역사와 시대의 흐름에 함께 발맞춰온 학보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학보사 기자들의 기사를 향한 열정과 땀방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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