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말들이 있다. 비리, 공금횡령, 비자금, 정경유착 등이 그것이다. 분명히 뿌리 뽑혀야 할 사회의 악인데 어찌된 일인지 점점 단어들의 노출빈도는 높아져가는 것만 같다.


얼마 전, 일부 대학의 총학생회에서 허위 행사를 꾸며 학교의 공금 8,000여만 원을 횡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수억 원대에 이르는 학생수첩ㆍ졸업앨범 계약과 관련해 인쇄업자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 사회조차 비리로 얼룩져가고 있었다는 사실은 씁쓸함으로 다가온다. 그들이 횡령한 돈의 대부분이 그들을 믿고 뽑아준 학우들의 등록금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국민의 세금으로 비리를 일삼는 일부 고위 관리직의 모습이 쉽게 떠오른다.


대학 문턱을 벗어난 현실은 더욱 암담하다. 지난주 내내 ‘삼성’이라는 두 글자가 한 일간지의 1면을 장식했다. 삼성에서 간부급 인사로 재직했던 한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떠오른 비자금 문제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본인의 동의 없이 개설된 차명계좌에 약 50억원이 넘는 돈이 담겨있다고 주장했다. 금융 실명제를 시행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차명계좌를 개설하는 것, 그 자체가 위법행위이다. 위법행위로 보관해 온 이 어마어마한 돈, 그 쓰임 역시 정당하지 않을 것임은 너무도 자명하다.


대선비자금 의혹, 안기부 X파일 사건 등 재벌기업에서 불거졌던 수많은 사건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의구심을 일으킨다. 그러나 대부분 이 사건들은 결국 ‘썰’로만 그치며 기억에서 잊혀져 간다. 반성보다는 잘못을 축소하기만 하려는 재벌가들의 태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거대 기업 수사를 꺼려하는 검찰, 미적지근한 태도로 보도를 피하는 언론……. 모두 진실을 은폐하는 주요 용의자다.


우리는 흔히 ‘결과가 좋으니까’라는 말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고 한다. 좋은 학점이라는 결과만을 위해 컨닝페이퍼를 만드는 모습, 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이들의 모습…….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고, 그 결과가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되는 법이거늘, 어찌된 일인지 지금 우리 사회는 눈앞의 성과에만 급급해 과정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비리는 본체만체 해버리는 것 같다. 그러나 당장의 이익을 위한 부정행위는 더 먼 미래의 파멸을 갖고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제 자리에 서서 다시 한 번 옷매무새를 가다듬자. ‘모 기업 무엇무엇 세계 1위’라는 화려한 조명에 눈이 멀어 그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하지 못하는, 혹은 애써 못 본 체 하는 과오를 저지르지 말자. 지금 덮어버린 잘못은 훗날 더 큰 파도가 되어 우리를 덮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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