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공주가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고생 끝에 저승세계 서천에서 생명수를 구한다는 설화 <바리데기>. 어렸을 때 한 번쯤 들어본 친숙한 설화 <바리데기>가 작가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로 새롭게 태어났다.


『바리데기』의 주인공 바리는 북한 공무원의 7번째 딸로 태어나 어려서 심한 염병(장티푸스)을 앓은 뒤 영혼, 짐승과 소통하고 무의식 속으로 빠질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갖게 된다. 이 능력으로 바리는 염병 귀신,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 등과 대화하면서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과 기근으로 인해 북한 사회는 혼란에 빠지고, 이때 바리의 외삼촌은 탈북을 한다. 그로인해 가족들은 정부의 탄압을 받아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바리는 중국을 거쳐 런던으로 밀항하게 된다. 온갖 고생 끝에 바리는 파키스탄 청년 알리와 결혼하는 등 안정된 삶을 찾는 듯 했다. 그러나 9.11테러와 아프간 전쟁의 발발로 전쟁터에 나간 동생을 찾기 위해 남편은 떠나고 바리는 혼자 남겨진 채 아이를 낳지만 아이는 돌을 넘길 무렵 뜻밖의 사고로 숨을 거둔다. 바리의 인생은 불합리한 오해와 편견에 상처받은 우리 사회 빈민들의 비극적인 상황처럼 끝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바리가 끝없이 연속되는 시련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의 고통이 닥쳐올 때마다 무의식 속으로 빠져 죽은 할머니의 영혼을 만났기 때문이다. 바리는 할머니에게 위로받고자 빠졌던 무의식 속에서 고통의 장면들을 보고 그 고통을 비현실인 것처럼 대해 고난의 상황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잃는 고통만은 참을 수 없었던 바리는 지금까지 견뎌왔던 내면의 분노와 절망, 슬픔, 아픔을 치유해 줄 마지막 희망인 ‘생명수’를 찾아 무의식 속 저승세계인 서천의 끝을 향해 긴 여행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바리는 고통 속에 죽은 인간의 영혼들로부터 자신들이 왜 고통 받는지,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등의 현대사회의 난제들를 대면하게 된다.


결국 서천의 끝에서 평범한 우물물만 찾은 바리는 “생명수는 없더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바리를 고통에서 구해 줄 희망이었던 ‘생명수’는 과연 무엇일까. 생명수를 지키던 마왕은 ‘우리가 흔히 밥해먹는 물’이라고 했고 바리가 살던 아파트 관리인 압둘 할아버지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남을 위해 흘린 눈물’이라고 했다. 이들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생명수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고 만질 수 있는 지극히 소소한 것일지 모르나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이 이야기를 쓴 작가 황석영이 오히려 독자에게 생명수가 무엇인지 되묻기 때문이다. 아마 작가는 이 질문을 통해 진정한 생명수는 각각 개인이 처한 시대와 상황, 느끼는 감정에 따라 다르며, 자신만의 생명수를 스스로 찾아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설 『바리데기』는 이승과 저승,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독특한 형식과 할머니의 정겨운 사투리, 숨 가쁘게 진행되는 사건, 작가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재미를 준다. 또한 그 속에 이주노동자, 전쟁, 빈부 차이 등 세계 사회의 그늘을 날카롭게 짚고, 불법체류로 쫓기는 사람들, 전쟁터로 내몰린 수많은 젊은이들의 모습 등을 생각하게 해 현재 우리 사회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생명수의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소설 『바리데기』속 바리가 아픔을 치료해 줄 생명수를 찾으러 갔듯이 우리들의 생명수는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보자.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