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낭송자: 이세훈(인문 04)

질투 없는 사랑이 있을까? 사랑이 시작되면 질세라 질투도 시작되고, 그 질투는 대부분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랑을 시작함과 동시에 질투를 한다. 츠지 히토나리의 『질투의 향기』중에는 ‘질투란 결국 자기애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시의 화자는 사랑이 하고 싶어 미친 듯이 사랑을 찾기만 했지 정작 자신을 사랑한 적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화자가 질투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은 것은 상처받기 두려워하는 끔찍한 자기방어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존본능과 연관된 질투, 그것은 나의 ‘힘’이다. 
 

시 낭송은 도서관 홈페이지(http://lib.sookmyung.ac.kr) ‘한국시와 감성리더’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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