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음의 순서가 ‘ㄱ,ㄴ,ㄷ,ㄹ’이 아니라 ‘ㄱ,ㅋ,ㄴ,ㄷ’이라면? ‘훈민정음의 창제원리와 한글 자모 순서’에 관한 학술토론회가 국립국어원과 국회의원 강길부 의원실 주최로 지난 5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주제발표 및 토론에 앞서 열린 개회식에서 이상규 국립국어원장은 “현행 한글 자모의 배열 순서에 대한 논의는 통일을 대비한 남북한 어문 규정 통합 작업에도 활용될 수 있다.”며 토론회의 의의를 밝혔다.


첫 번째 발표자인 김명호 한글연구가는 “외국인이 처음 한글을 배울 때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창제의 원리대로 자모 순서가 배열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모순을 제자원리로 배열하면 원리를 그대로 이해하며 배울 수 있어 쉽지만, 지금의 한글 자모순 배열은 규칙과 기준이 없어 외우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김 연구가는 한글 자모의 순서가 기록된 자료를 제시하며 발표를 진행했다. 자음 배열이 처음 나타난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자음은 소리 체계에 따라 배열됐다. 즉, 세종대왕은 설음, 순음, 치음 등의 기본자를 만든 후 여기에 가획해서 자음을 추가했는데 이 창제원리가 자음 배열 순서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다시 말해, ㄴ,ㅅ,ㄱ 등의 기본자의 순서를 배열하고, ㄴ을 기본으로 가획된 ㄷ과 ㅌ은 ㄴ의 다음에 배열됐다.


최초의 자음 배열 체계가 무너진 것은 1527년 훈몽자회 범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때의 배열 순서는 처음 배열원리에 ‘종성에 쓰느냐, 안쓰느냐’의 기준이 추가됐다. 이에 따라 초성과 종성에 모두 쓰는 ㄹ,ㅇ,ㄴ,ㅁ,ㅅ,ㄱ은 앞 쪽에, 초성에만 쓰이는 ㅋ,ㅌ,ㅍ,ㅊ,ㅎ은 뒤 쪽에 배열됐다. 그 결과 훈민정음에서의 순서인 ‘아-설-순-치-후-반설-반치음’이 훈몽자회에서는 ‘아-설-반설-순-치-아-철-순-치-반치-후음’의 순서로 바뀌었고, 자음체계가 두 개로 늘어나 복잡해졌다.


모음의 창제 역시 가장 단순한 소리인 천,지,인(ㆍ,ㅣ,ㅡ)을 기본으로 한다. 나머지 모음은 천,지,인을 적당히 합쳐 만들어내는 결합방식을 취한다. 김 연구가는 “획이 하나이면서 한 가지 소리가 나는 천, 지, 인이 모음에서 가장 처음에 배열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글은 인정받지만 그 창제원리는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도 배열 순서 변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국립국어원 김세중 국어생활부장은 자모순을 제자원리에 따라 변경할 경우 고려해야할 사항에 대해 발표했다. 김 부장은 먼저 자모음 순서를 변경할 때, 기존 사전 및 색인을 모두 폐기한 후 새로 제작해야 하는 경제적 비용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오늘날 쓰이지 않는 ‘아래 아(ㆍ)’의 처리와 된소리 글자 배열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열 변경을 할 때는 이에 따르는 이익과 대가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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