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칼럼]

‘우리 삶에서 운이 작용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흔하다.’ 필자가 처음 응시했던 지난 2016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 17번 지문의 첫 문장이다. 

해당 지문은 도덕적 평가가 운에 따라 달라져선 안 된다고 말한다. 도덕적 평가는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운은 의지에 따라 통제할 수 없으므로, 운에 따라 평가되는 일은 공평하지 않다. 

도덕적 평가에선 행위는 타고난 성품과는 별개라는 이유로 태생적 운의 존재를 부정한다. 또한, 모든 사람이 같은 상황에서 같은 행동은 하는 것은 아니므로 상황적 운의 존재도 부정된다. 끝으로 결과와 무관하게 도덕성에 대한 평가가 이뤄져야하므로 결과적 운의 존재도 부정된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배경과 출신을 배제하고 능력에 따라 평가한다는 점에서 공평해 보일 수 있다. 개인의 운이 아닌 능력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능력은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되는가. 개인이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것인지, 상황에 따라 발휘되는 것인지, 아니면 결과를 통해 보여지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필자는 개인의 노력을 통한 결과를 기준으로 능력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결과만이 능력을 보여준다고 믿었기에 3번이나 수능을 응시했고, 누구보다 바쁘게 살기 위해 애썼다. 필자가 해내지 못한 일에 대해선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24일(목) 국민은행이 신입사원 공개채용에서 지원서에 독일어 점수를 기재하도록 했다. 독일어 구사가 가능한 채용내정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 대해 국민은행은 채용담당자의 실수를 이유로 독일어 점수 기재란을 삭제했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능력을 평가받는지 알 수 없다. 우리 삶에서 운이 작용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흔하기 때문이다. 능력에 대한 평가에서도 운이 부정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민은행의 공개채용 과정이 태생적 운도, 상황적 운도, 결과적 운도 부정되는 공정한 결과를 보장한다고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비단 해당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공정한 과정 앞에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항상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란 불가능한 일이며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는 언제나 운에 의해 평가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