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론 > 부장칼럼
공정에 앞서 관용을 생각하다
김지선 기자  |  smpkjs97@s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9.2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지난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동안 아르바이트를 쉬게 됐다. 그제야 함께 일하는 기자들과 똑같이 마감일엔 기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출근 시간에 맞춰 나가야 한다는 압박과 퇴근 후에도 편집실로 돌아와 발행 업무를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은 잠시 내려놓았다. 기사에 몰두하고 학업을 돌볼 여유도 생겼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하향하면서 아르바이트와 숙대신보 활동을 다시 병행하게 됐다. 오전에 기사 개요를 확인하고 인터뷰 요청서를 결재하면 오후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실시간 강의 중에는 카메라를 끈 채로 결재가 필요한 인터뷰 질문지를 검토했다. 다가오는 중간고사를 걱정하긴 했지만 정말 ‘걱정’만 했다. 바닥을 치는 성적을 올리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채 부채감만 키워갔다.

해야 하는 일은 많은데 제대로 하는 일은 무엇도 없었다. 생계를 위해선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기사 발행을 위해선 취재 상황을 살펴야 했으며, 졸업을 위해선 학점을 채워야 했다. 출근 시간을 맞추려 폐가 아프게 뛰었고, 취재원이 구해지지 않아 기사를 포기했으며, 졸업은 점점 더 요원해진다. 노력이 지나쳐도 모자랄 판에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다. 모든 결과는 당연히 미흡했다.

같은 목표를 바라본다고 같은 시간이 주어지진 않는다. 기회가 평등하다는 말은 시간이 균등하게 주어진다는 뜻이라는 걸 새삼스레 실감했다. 해야 할 일엔 시간이 필요하고, 상황에 따라 해야 할 일이 생기는데, 사람마다 처한 상황은 다르다. 제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같은 시간을 갖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럴 수 없다면 기회는 처음부터 불평등한 것이겠다.

기회가 평등할 수 없는 사실을 받아들이니 타인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게 됐다. 함께 하는 일에 상대의 기여가 적어도 다른 일로 고단할 것으로 생각하면 불만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같은 일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노력할 기회가 상대에겐 없었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산다. 상황이 달랐다면 이해가 필요한 쪽은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었을 수 있다. 각자가 해야 하는 일이 다르면 쓸 수 있는 시간도 달라진다. 하루는 24시간이라지만 누군가에겐 실질적으로 4시간만 주어졌을 수 있다. 많은 기회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공정성에 관한 논의가 다시 타오르고 있는 요즘이다. 관용의 가치를 한 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

김지선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명절증후군’ 없는 추석을 보내려면
2
운도 실력인가, 실력도 운인가
3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4
청년, 불안한 취업 시장에 서다
5
판타지 배경에 담은 현실, 웹툰 ‘어글리후드’ 미애 작가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발행인 : 장윤금 | 편집인 겸 주간 : 심숙영 | 편집장 : 이유민 | 발행처 : 숙명여자대학교|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윤금
우)140-742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 47길 100 숙명여자대학교 숙대신보사
행정실 ☎ 710-9150 (Fax) 706-2695 / 편집실 ☎ 710-9721 / 9152
Copyright © 2020 숙대신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mnews@sookmy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