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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표현하는 다양한 자아, 멀티 페르소나
조은비·신유정 기자  |  smpceb99@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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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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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 뭐하니?> 프로그램 시청자 중에서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과 국민 MC 유재석이 동일 인물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포털 사이트의 출연진 소개란엔 마치 두 사람이 다른 인물인 것처럼 유산슬과 유재석의 이름이 각각 올라와 있다. 한 연예인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설정인  ‘부캐릭터’를 시작으로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 개념이 떠오르고 있다. 멀티 페르소나는 상황에 따라 분리되는 현대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의미한다. 한국 마케팅 연구원에서 발행한 2020 마케팅 트렌드에 따르면 멀티 페르소나란 고대 그리스 배우들이 쓰던 가면의 이름인 ‘페르소나(Persona)’에서 파생된 용어로, 상황에 맞게 여러 개의 가면을 바꿔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뜻한다. 우리 사회의 현대인들은 어떤 가면들을 쓰고 있을까.
 

‘부캐릭터 전성시대’
연예계에서 ‘부캐릭터’를 이용한 멀티 페르소나가 대세다. 부캐릭터는 버금 부(副)와 캐릭터(Character)의 합성어다. 온라인 게임에서 원래 사용하던 캐릭터를 보조하거나 대신 쓰기 위해 새로 만들어진 캐릭터를 이르는 말로 처음 쓰였다. 기존 캐릭터와 성격이 다른 부캐릭터를 만들어 자신의 또 다른 개성을 투영시킬 수 있단 점에서 멀티 페르소나와 비슷하다. 연예계 부캐릭터 열풍의 대표적 예시는 <놀면 뭐하니?>의 '유(YOO)니버스'다. 유(YOO)니버스는 ‘유재석의 유니버스(Universe)’라는 뜻으로 프로그램의 고정출연자인 유재석이 다양한 미션에 도전하며 구축한 평행세계라는 의미다. MBC 공채 개그맨이자 국민 MC 유재석이 본래 캐릭터라면, 유(YOO)니버스에 등장하는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 ‘신예 그룹 싹쓰리(SSAK3) 멤버 유두래곤’은 그의 부캐릭터라 할 수 있다. <놀면 뭐하니?>는 한 부캐릭터의 활동이 종료되면 또 다른 설정의 부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이러한 프로그램 구성으로 시청자는 매번 색다른 인물의 방송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빙그레 슈퍼콘 광고 모델로 발탁된 유재석의 부캐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이다.


연예인은 부캐릭터를 통해 기존 이미지 유지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애절한 목소리로 이별 노래를 부르는 가수 ‘캡사이신’은 개그우먼 신봉선의 부캐릭터다. 신봉선은 평소 밝고 활발한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부캐릭터 캡사이신은 얼굴을 가리는 붉은 챙모자를 쓰고 우아한 드레스를 입는 등 고혹적인 이미지를 내세운다. 신봉선이 소속된 엔터테인먼트 ‘미디어랩 시소’는 캡사이신은 그동안 신봉선이 숨겨왔던 음악적 감성을 표출할 부캐릭터라 소개한 바 있다. 래퍼 매드 클라운은 지난 2018년 방영한 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777>에 부캐릭터인 신인 래퍼 ‘마미손’으로 참여했다. 감성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래퍼 매드 클라운의 기존 이미지와 상반되는 거친 이미지의 무대를 구성하기 위해 마미손이라는 부캐릭터를 활용한 것이다.

연예인의 부캐릭터는 사회적 욕망을 실현시키는 페르소나로 구현되기도 한다. 개그우먼 김신영의 부캐릭터 ‘둘째이모 김다비’가 대표적이다. 지난 5월, 둘째이모 김다비는 ‘남의 호주머닛돈 받아먹기 힘든 전국구 노동자들에게 바치는 노래’라며 음원 <주라주라>를 공개했다. 해당 음원에서 둘째이모 김다비는 회사의 조직문화를 예리하게 비판한다. ‘가족이라 하지 마이소/가족 같은 회사/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와 같은 가사에서 사생활의 영역에서까지 지나친 애사심을 강요하는 문화에 대한 비판이 드러난다. 이러한 둘째이모 김다비의 목소리는 일과 휴식의 균형을 희망하는 직장인이 바라는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일상 속 다중 자아
현대인은 여러 사회관계망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를 사용하면서 멀티 페르소나를 형성하기도 한다. 트위터(Twitter)는 140자의 단문으로만 글을 작성할 수 있다는 점과 빠른 재확산을 특징으로 한다. 페이스북(Facebook)은 실명 연락처를 기반으로 친목을 다진다는 점에서 관계 중심적이며, 인스타그램(Instagram)은 사진 게시물로 소통하는 실명 기반 매체다. 이런 SNS의 특성에 따라 게시글의 표현 방식과 목적이 다르다. 김예림(IT공학 16) 학우는 “좋아하는 연예인 관련 글은 트위터에, 일상적인 글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편이다”고 말했다. 나라는 같은 사람이 겪은 일, 떠올린 생각이라도 플랫폼에 따라 게시글의 특징이 달라지는 것이다. 트위터에는 익살스럽거나 풍자적인 단문으로, 인스타그램에는 차분하고 감성적인 사진과 해시태그(Hashtag)를 달아 표현하는 식이다.
 
하나의 SNS 플랫폼에 여러 계정을 만들고 각각 다른 자아를 부여하기도 한다. SNS에서 공개 계정과 비공개 계정을 별개로 운영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 김 학우는 “인스타그램을 이용할 때 계정에 따라 게시글 내용과 말투가 달라진다”며 “친한 지인들만 볼 수 있는 비공개 계정에선 공개 계정에서 말할 수 없는 개인적인 생각 등을 자유롭게 게시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SNS의 종류가 많아지고 공개 대상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여러 정체성 중 드러내고 싶은 자아를 선택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겸업 유튜버는 본업에서 드러내기 어려운 자아를 유튜브(YouTube)에서 표출한다. 겸업 유튜버는 학생, 직장인 등 본업과 별개로 영상 크리에이터를 겸직한다. 겸업 유튜버들은 직업만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현대인의 다양한 정체성을 표출하는 대표적인 경우다. 이영주 씨는 항공 승무원이자 유튜브 채널 ‘와이(Y)’를 운영하는 영상 크리에이터다. 이 씨는 유튜브 채널에서 여행 기록이나 미용, 일상 브이로그(V-log)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다룬다. 해당 채널에선 취미로 인물화를 그리는 이 씨의 모습이 종종 등장한다. 항공 승무원의 업무에서 예술성을 표출할 기회는 많지 않다. 따라서 예술 취미에 몰두하는 이 씨의 모습은 유튜브에서만 드러나는 자아다. 이 씨는 “늘 가지고 있던 창작에 대한 갈망을 유튜브 활동을 통해 채웠다”며 “전문가처럼 뛰어난 실력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또 다른 특성을 실현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고 마케팅, 멀티 페르소나를 담다
멀티 페르소나는 광고계의 마케팅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된다. 연예인의 부캐릭터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는 것에서 나아가, 일반인이 형성하는 멀티 페르소나 개념을 광고에 직접 반영한다.

코카콜라음료(주)의 음료 상품 ‘스프라이트’ TV 광고는 현대인의 다양한 정체성과 제품의 특성을 연결 지었다. 광고는 가수 청하의 모습과 함께 ‘그냥 가수, 그게 나의 전부일까?’라는 자막을 보여준다. 그리고 힘차게 달리는 장면, 섬세하게 사진을 찍는 장면, 친구들과 어울려 파티를 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해당 광고는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변화하는 인물의 역할과 성격을 묘사하며 멀티 페르소나 요소를 표현했다. 코카콜라음료(주) 관계자는 광고 기획 의도에 대해 “이번 광고의 타겟층인 *MZ세대는 정형화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내면의 다양성을 표출한다”며 “그러한 MZ세대의 특성과 스프라이트의 시원하고 상쾌한 이미지를 연결시킨 마케팅을 펼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청하 스프라이트 광고'. 위에서부터 각각 가수, 러닝 크루, 포토그래퍼, 파티셀럽 페르소나를 나타냈다.

한국인삼공사의 ‘정관장 에브리타임’ TV 광고는 직장 안과 밖의 자아를 구분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광고에선 사회 초년생 역할의 배우가 퇴근길의 승강기를 박차고 나가 달리기를 하는 모습까지를 유쾌하게 그린다. 해당 광고는 직장인들이 퇴근 후 취미생활을 통해 다른 자아를 갖는 삶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지난 3월 잡코리아(Job-korea)가 직장인 5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7.6%(433명)의 직장인이 평상시 모습과 회사에서 행동하는 모습이 다르다고 답변했다.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늘어난 여가시간을 활용해 취미생활을 하거나 제2의 직업을 갖는 직장인이 증가하기도 했다. 직업만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규정되던 시대를 지나, 다양한 정체성이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멀티 페르소나 광고 마케팅은 젊은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다중 자아에 기업들이 주목한 결과다. 광고사에서 멀티 페르소나 요소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본교 한규훈 홍보광고학과 교수는 “광고는 대중이 관심을 갖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연예계의 부캐릭터 열풍을 시작으로, 일반인도 다양한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됐다. 이렇듯 다중 자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광고에도 반영된 것이다. 한 교수는 “멀티 페르소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지속되는 한 기업의 콘텐츠 마케팅에 멀티 페르소나가 활용되는 사례는 꾸준히 늘어날 것이다”고 말했다. 

시간이나 지면의 제한이 적어진 온라인 환경도 멀티 페르소나 마케팅 확산의 요인 중 하나다. 멀티 페르소나를 광고나 마케팅에서 활용하려면 인물의 여러가지 정체성이 드러나야 한다. 한 교수는 “온라인 환경이 발달하면서 상대적으로 시간이나 지면의 제약이 줄었다”며 “뉴미디어를 통해 상황의 맥락을 충분히 묘사할 수 있어 멀티 페르소나가 대중적 콘텐츠로 활용되기 위한 조건이 충족됐다”고 말했다. 매체의 다양화와 온라인 환경의 발달 등으로 인해 멀티 페르소나 개념이 마케팅에서 활용되고 있다. 
 

멀티 페르소나를 갖는 것은 개인의 자존감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한 자아에서 실패나 어려움을 겪었을 때, 그 감정이 자기 존재 자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이다. 높은 돌탑에서 하나의 조약돌이라도 떨어지면 그 돌탑 전체는 무너지지만, 야트막한 돌담을 세우면 돌 하나가 빠져도 서로 의지하며 오래 버틸 수 있다. 그러니 하나의 완벽한 자아를 만들려는 부담을 버리고, 여러 방면에서 열정과 개성을 키우며 나만의 멀티 페르소나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millennial)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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