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빅토리아 시크릿(Victoria's Secret)’의 란제리 패션쇼가 폐지됐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지난 2013년까지만 해도 미국 란제리 시장 3분의 1을 점유했던 대형 브랜드였다. 그러나 지난 5월, 자회사 ‘엘 브렌즈(L Brands)’는 북미 지역의 빅토리아 시크릿 매장 250개를 폐점했다. 소비자들이 빅토리아 시크릿을 떠난 이유는 뭘까? 빅토리아 시크릿을 떠난 소비자들은 어디로 향했을까?


여성을 등진 여성 속옷
남성 중심적 시선은 여성 속옷에서 여성을 배제해왔다. 속옷은 성기를 외부 이물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의복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여성 속옷은 단지 의복이라기보다 성적(性的) 상징으로 소비됐다. 진민서(글로벌협력 20) 학우는 “영화, 소설 등에서 여성 속옷이 등장할 때 여성 속옷은 남성 속옷보다 더 자주 성적인 상징으로 인식되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이에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여성의 몸을 남성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남성 중심적 문화가 사회의 주류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여성 속옷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합성 섬유는 질의 건강을 해친다. 나일론, 폴리에스터 등의 합성섬유는 신축성과 내구성은 좋지만 통기성은 떨어진다. 이은 여우한의원 원장은 “공기가 통하지 않는 속옷은 질염, 간지럼증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체형 보정 속옷도 여성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이 원장은 “체형 보정 속옷은 복부를 지속해서 압박한다”며 “이는 소화불량, 과민성 대장 등 만성 소화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보정용 속옷이 몸에 가하는 압력은 혈액과 림프의 순환을 방해해 몸을 붓게 하고 면역력을 저하한다.

젊고 마른 모델 위주의 여성 속옷 광고는 여성에게 ‘이상적인 몸’에 대한 환상을 심는다. 김미영·한명숙(2001)은 현대 사회에서 광고는 사회가 공유하는 신체적 아름다움의 기준을 제시하고, 개인은 그 기준을 자신의 신체상으로 내재화한다고 전했다. 그 기준이 현실의 여성들이 가진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지 못해 문제가 된다. 진 학우는 “개인적인 고민으로 속옷에 관해 조사하는 동안 3·40대를 위한 광고는 드물었다”며 “3·40대에게 20대이기를 강요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여성 속옷,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추다
편한 속옷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9년 2월, 국내 여성 속옷 브랜드 ‘컴포트랩(Comfortlab)’은 6개월간 수집한 약 5만 건의 후기를 통해 고객들의 속옷 선호를 분석했다. 컴포트랩의 통계에 따르면 몸이 편안한 속옷을 선택한 고객은 약 84%, 세련된 디자인의 속옷을 선택한 고객은 약 16%로 편안함을 추구하는 여성이 다수였다. 김세린(프랑스언어문화 18) 학우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속옷을 고르는 기준은 디자인과 몸매 보정 기능이었다”며 “이제는 기능성이 좋고 편안한 속옷을 찾는다”고 말했다.

속옷 시장에서도 소비자의 수요 변화에 맞춰 편안한 속옷을 선보이고 있다. 와이어를 제거한 브래지어와 ‘브라렛(Bralette)’이 대표적이다. 브라렛은 와이어를 비롯해 후크, 패드 등 몸을 옥죄는 모든 요소를 없앤 속옷이다. 가슴 패드를 티셔츠 안쪽에 부착한 ‘노브라(No Brassier)’ 티셔츠도 등장했다. 가슴을 압박하지 않는 속옷은 여성 건강에 파란불을 켠다. 체내 노폐물을 운반하는 림프액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팬티로는 엉덩이 전체를 감싸주는 여성용 드로즈(Drose)와 트렁크(Trunks)가 나오고 있다. 드로즈와 트렁크는 아랫배와 엉덩이를 모두 감싸는 사각형 팬티다.  삼각 팬티보다 넓은 부위를 감싸기 때문에 드로즈, 트렁크의 보온 효과는 비교적 높다. 또 속바지 형태인 드로즈와 트렁크는 다리 사이를 압박하지 않아 공기가 잘 통한다. 이 원장은 “통기가 잘 되는 팬티를 착용하면 질 내 환경이 습해지지 않는다”며 “낮은 습도는 질염을 유발하는 칸디다 같은 병균의 증식을 막아준다”고 설명했다.

체형의 다양성을 반영한 속옷도 등장했다. 컴포트랩은 옆으로 벌어진 가슴, 처진 가슴 등 여성의 다양한 체형에 맞춘 속옷을 제작한다. 최선미 컴포트랩 디자이너 겸 대표는 “속옷 업계에서 상품 기획자로 20년간 일하며 왜 예쁜 브래지어는 하나같이 내 몸에 안 맞고 불편한지 의문스러웠다”며 “기존 속옷 업계가 편안하면서도 예쁜 속옷을 향한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브랜드를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사 제품을 체형별로 분류한 컴포트랩 홈페이지다. 소비자는 자신의 체형과 동일한 브라렛을 분류에 따라 찾을 수 있다.


속옷 광고에서도 여성의 다양한 체형을 조명하고 있다. 한국의 여성용 드로즈 브랜드 ‘톤포투(TONE FOR TWO)’는 자사 제품 광고에서 운동하는 여성의 강인한 신체를 조명했다. 임하경·이영숙 톤포투 공동대표는 “여성의 운동은 체중 감량을 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전했다. 컴포트랩은 체격 좋은 여성들을 위한 제품군 ‘BIG-C’를 출시하며 플러스사이즈 모델을 기용했다. 플러스사이즈 모델은 *평균 체중의 사람들보다 신체 치수가 큰 사람들의 패션을 선보이는 직업이다. 최 대표는 “BIG-C 제품을 직접 입을 고객을 위해 플러스사이즈 모델을 찾았다”고 말했다.

▲운동하는 여성을 위한 속옷 제품군인 ‘그랑프리 드로즈(Grnadprix Drose)’를 착용한 모델의 사진이다.
▲플러스사이즈 모델들이 BIG-C 제품군을 착용한 모습이다.



내 몸이 자유로운 속옷을 찾아
기능에 초점을 둔 여성 속옷이 부상하는 흐름은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ty)를 반영한다. 자기 몸 긍정주의란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태도를 말한다. 여기에는 자신의 몸을 건강하고 편안하게 돌보려는 노력도 포함된다. 팬티를 고를 때 골반이나 다리 사이를 압박하지는 않는지, 마찰에 의한 피부 자극은 없는지를 살피는 것도 해당한다. 성기를 보호한다는 본래 기능에 충실한 속옷이 좋은 속옷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자기 몸 긍정주의는 속옷 업계의 자연주의(Naturalism) 흐름으로 이어졌다. 자연주의는 속옷이라면 우선적으로 착용자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자연주의에서 속옷은 체형을 교정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반영한다. 자연스러운 신체가 가장 편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신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자연주의는 자기 몸 긍정주의와 같다. 이는 공급자 위주로 운영됐던 업계가 소비자의 의견을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있다. 최 대표는 “과거 여성 속옷 시장에서 소비자는 공급자가 판매하는 폭 안에서 선택에 제한을 받았다”며 “최근 여성 시장은 자기 몸 긍정주의와 자연주의 흐름 속에서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현하는 시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속옷 시장은 ‘이상적인 몸’이라는 단일한 기준에 저항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기 몸 긍정주의의 등장로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생겼고, 자연주의에 따라 다른 사람 몸의 차이도 존중하는 여론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서로 다른 체형을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그 외의 신체적 특징까지 포용하는 수준으로 확장될 전망이다. 임·이 공동대표는 “성소수자, 장애인 인권 등을 주제로 캠페인 화보를 제작해왔다”며 “매체가 조명하지 않는 소수자의 가시화를 위해 서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불편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다양한 연령, 체형의 모델로 구성된 ‘코트니 드로즈 프로젝트(Cottoney Drose Project)’의 일부다. 장애인 인권 캠페인으로 제작한 해당 프로젝트엔 댄서 겸 배우이자 다운증후군 모델이 참여했다(좌측)



편안한 속옷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발돋움이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나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속옷 한 장을 통해서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속옷은 신체적인 불편으로 활동적인 일, 해본 적 없는 일에 도전하기를 주저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편한 속옷은 새로운 도전에 용기낼 수 있는 작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모든 여성이 편한 속옷을 찾아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각자의 세계를 넓혀가기를 바라본다.


*한국 여성의 표준 신체지수는 지난 2016년 기준 가슴 32인치, 허리 26인치, 엉덩이 35인치임.
[참고문헌] 김미영, & 한명숙. (2001). 여성잡지에 나타난 속옷광고의 문화적 의미 연구. 복식문화연구, 9(5), 783-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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