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 그 안에서 최고가 되는 것. 그리고 그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우리 모두가 인생의 출발선에서 꿈꾸는 것들이다. 하지만 출발 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사람이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여기, 현실 앞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꿈꾸는 것들을 계속해서 이뤄나가는 중인 사람이 있다. 바로 씨네 21(Cine 21)에서 21년간 영화 기자로 일하고 있는 이다혜 기자다. 영화 기자를 중점으로 에세이스트(Essayist), 팟캐스트(Podcast) 진행자, GV(Guest Visit) 진행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다혜 기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좋아하다 보니 ‘영화 기자’
영화 기자라는 직업은 이 기자의 취미와 맞닿아 있다. 직업상 책과 영화를 자주 접하는 이 기자는 쉴 때도 취미 삼아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 그는 “제가 영화 기자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면 기본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일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 기자의 말은 그가 진심으로 일을 즐기고 있음을 대변한다.


이 기자는 영화 기자로서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 중 흥미로운 것들을 골라 대중에게 알리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넉넉한 자본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홍보를 펼칠 수 있는 상업 영화도 있지만, 모든 영화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는 “소규모 자본 영화나 여성 서사 독립 영화처럼 충분한 홍보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영화를 소개해 대중의 흥미를 끄는 역할도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좋은 영화 기자가 되기 위한 능력으로 자신의 개성을 다듬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영화 기자마다 산업, 애니메이션, 독립영화 등 각자 중점적으로 관심을 갖고 다루는 분야의 특징이 뚜렷해 기자가 갖춰야만 하는 능력을 하나로 규정하기란 어려워요”라며 “본인만의 강점을 가진 기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죠”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편집기자로 일을 시작해 취재기자를 거쳐 편집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업무 변화는 타인의 관심에서 벗어난 일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꾸준히 노력하면 자신의 강점을 쌓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영화 기자의 입지가 점차 축소되는 시대 속에서도 영화 기자만의 전문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최근 유튜브(Youtube)나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에선 영화에 관심이 많은 비전문가도 영화 평론 및 분석 등을 쉽게 게시할 수 있다. 이는 영화 기자의 직업적 특성을 약화한다. 이 기자는 영화 기자만의 전문성에 대해 “매체에 속한 영화 기자는 매체가 가진 막강한 취재력을 이용할 수 있어요”라며 “감독 및 영화 산업 관계자를 인터뷰하거나 관계자의 입을 통해 영화 산업의 동향을 파악하는 일처럼 한두 명의 개인이 진행하기 어려운 내용을 꾸준히 취재해야 하죠”라고 말했다. 이어 이 기자는 “영화 기자는 탄탄한 취재를 바탕으로 대중에게 알차고 재미있는 기사를 계속해서 전달해야 해요”라고 덧붙였다.

 

#2 스릴러, “변화가 필요해!”
이 기자와 스릴러(Thriller) 장르의 관계는 애증으로 얽혀있다. 스릴러는 관객이나 독자에게 *서스펜스(Suspense)를 유도하는 범죄물의 하위장르다. 이 기자는 지난 2018년 3월 스릴러 장르 관련 에세이 「아무튼, 스릴러」를 출간했다. 그러나 인상 깊게 감상한 스릴러 영화를 묻자 이 기자는 “스릴러 작품을 섣불리 추천하는 건 조심스러워요”라며 “비록 좋아하는 장르지만 이제는 편하게만 볼 수 없거든요”라고 답했다. 이 기자는 “과거엔 많은 여성이 나체로 살해당하는 연출도 스릴러 장르의 특성 정도로 생각했어요”라며 스릴러 영화를 처음 접했을 당시를 회상했다. 과거 스릴러 영화 속 여성은 대부분이 첫 장면에 등장하는 시체 아니면 범인을 회개시키는 성녀 역할에 그쳤다. 즉 과거 스릴러 작품에서 여성 등장인물들은 관객의 공포감이나 흥미를 끄는 수단으로 주로 기능했으며, 주어진 역할이 끝난 이후로는 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릴러 영화에 내재하는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이 기자는 최근 이러한 문제점을 현실과 연결지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 기자는 지난해 9월부터 범죄 심리학자 이수정 교수와 함께 네이버 오디오 클립(Naver Audio Clip)에서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을 진행 중이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영화 <걸캅스>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며 왜곡된 성문화를 지적하고, 영화 <가스등>을 보고 *가스라이팅(Gas-lighting)의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그는 스릴러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범죄 행위를 단순한 오락으로 소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여성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범죄 영화를 분석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 작가의 생각은 그의 저서 「아무튼, 스릴러」에서도 잘 드러난다. '스릴러가 현실의 피난처로 근사하게 기능해온 시간에 빚진 만큼, 현실이 스릴러 뒤로 숨지 않게 하리라.'

 

#3 에세이스트 이다혜가 전하는 조언
에세이스트로서도 활발히 활동 중인 이 기자는 에세이스트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두 가지 조언을 건넸다. 이 기자는 본인이 에세이스트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된 원동력으로 20년간 일하며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꼽았다. 이어 그는 “나만의 콘텐츠를 갖기 위해선 일정한 경험과 지식을 쌓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죠”라고 덧붙였다. 이 기자는 에세이스트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일찍부터 형성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권한다.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는 글인 에세이를 쓰려면 글감 선정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이 기자는 “지금은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도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에세이를 출간하는 일이 적지 않기에 경험과 지식을 투자하는 시간이 에세이스트에게는 더욱 필수적이에요”라며 “이에 시간쓰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에세이를 쓸 때 글과 자신을 분리하는 연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세이 장르는 다른 도서 장르에 비해 작가 개인의 생활이나 생각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에 그는 “에세이를 꾸준히 쓰다 보면 글에 가해지는 비판도 나를 향한 개인적인 비판으로 들릴 가능성이 커요”라고 말했다. 이어 이 기자는 “에세이 자체가 자신의 삶을 글감으로 판다는 생각을 갖게할 때가 많아 때로는 피로감이 들어요”라며 “그래서 글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요”라고 충고했다.

이 기자는 여성주의적 에세이에서 여성 서사 영화의 확대를 통해 현실 여성의 입지가 넓어지는 사회의 도래를 응원하기도 했다. 이 기자의 책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엔 ‘여자가 사건을 해결하고, 여자가 사랑을 쟁취하는 이야기에 담긴 여성의 이미지는 여성들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인생에 영향을 주게 된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그는 “앞으로 제작될 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현재 여성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정확히 이야기해야 해요”라며 “동시에 현실의 한계에 국한되지 않고 여성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자유롭게 상상해 그리는 영화도 만들어져야 하죠”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영화에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풍부하게 등장시키는 것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지난 1일 강연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의 양성평등주간 기념 강연에서도 영화계에서 여성의 이야기가 더 다양한 주제와 각본으로 등장해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성차별적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조언과 격려를 건네는 이 기자의 에세이도 있다. 지난해 9월에 발간된 저서 「출근길의 주문」에서 이 기자는 여성이 직장에서의 여성 배제를 극복하고 근무를 이어나갈 방법을 소개한다. 그중 하나는 '날카로운 침묵'이다. 이 기자는 "사회초년생이 상사의 성희롱을 곧바로 지적하긴 쉽지 않아요"라며 "대부분은 주변인들의 분위기에 동조해 웃어넘기죠"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그런 상황에서는 웃음이 아닌 날카로운 침묵을 유지하는 선택지도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주위의 시선에서 오는 압박감을 극복해 침묵에 그치지 않고 발화하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기자는 스스로 한계를 규정짓지 않는다.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세상을 향해 비판적이지만 따뜻한 시선을 둔다. 이러한 이 기자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더 멋진 꿈을 꾸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게 한다. 자신의 말과 글로써 끊임없이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약자의 입장을 섬세하게 조명하는 이 기자의 이야기는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많은 사람이 함께 고민하게 할 것이다.

 

*서스펜스(Suspense): 영화, 드라마, 소설 따위에서, 줄거리의 전개가 관객이나 독자에게 주는 불안감과 긴박감을 뜻함.
**가스라이팅(Gas-lighting):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들고, 이로써 타인에 대한 통제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함.

▲CGV아트하우스에서 개최한 독서클래스 '이다혜의 북클럽'이 진행 중인 모습이다.

▲이다혜 기자가 듀나 작가와 함께 온라인으로 독자와의 만남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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