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대생 눈송이(21) 씨는 아침 일찍 집 근처의 여성 전용 사우나에 갔다. 그는 혈액순환에 좋은 약초 목욕으로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나서 은행에 들렀다. 씀씀이가 커지자 금전 관리를 위해 새 통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여러 종류의 통장을 놓고 고민하던 눈송이 씨는 은행원의 추천을 받아 여성 전용 예금 통장을 하기로 결정했다. 여행이나 문화센터 수강 시 우대 혜택을 주는 서비스, 여성 질병에 대한 보험혜택 등 여성에게 편리한 부가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대학 친구들과 함께 피자전문점에 가서 기름기가 적은 여성 전용 O O O메뉴를 주문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다이어리를 정리하던 눈송이 씨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의 다이어리에 ‘여성 전용’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것이다.


위의 눈송이 씨처럼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여성 전용 서비스에 익숙해져있다. 매체 광고를 통해, 혹은 상가가 즐비한 곳에서 종종 마주치게 되는 ‘여성 전용’ 문구. 어느새 여성 전용 서비스는 우리의 생활 속 깊이 파고들어 여성 경제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여성 전용 서비스’는 여성 정책에서부터 비롯됐다. 여성 정책은 말 그대로 국가나 공공 단체 등에서 여성의 복지를 위해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로, 사회적으로 여성을 배려하는 풍조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출근시간대 혼잡한 열차 내에서 신체접촉에 의한 여성의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자 지난 1992년부터 전철과 기차에 여성 전용 칸이 도입됐다. 최근 들어 유명무실해졌지만 이 외에도 여성을 위한 정책 마련의 움직임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는 여성단체 이프에서 여성전용 콜 제도를 마련하고자 서명운동을 벌인 여파로 여성 전용 택시가 등장할 예정이다. 이처럼 여성 정책은 성에 기인한, 혹은 성차별의 보상과 관계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판매 목적의 여성 전용 서비스는 바로 이러한 여성 정책을 마케팅 영역으로 끌어들여 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신변 보호 차원에서 등장한 여성 전용 서비스는 여성의 불안심리에 착안해 마련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여성 대리 운전 서비스, 각종 호신용 제품 등이 있다. 여성 전용 대리운전 서비스는 회식과 같은 저녁모임이 잦은 요즘, 여성 운전자들의 안전한 귀가를 보장하기 위해 작년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등장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무인경비서비스를 비롯해 디지털도어락, 호신용 전기충격기나 휴대폰 호신서비스 등의 호신용품도 최근 큰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 중 하나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방범, 호신용품 판매건수가 2003년 1만 5,000건에서 2006년 9만 2,000건으로 약 6배가 늘었다고 한다. 이러한 호신 용품이 여성들에게 각광받는 것은 성범죄 및 강력범죄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자는 안전의식이 고취되는 가운데 이러한 물품은 여성의 필수품이라는 인식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여성 전용 서비스는 남녀의 신체적 특징에 기인하지 않은 품목에까지 영역을 넓혔다. 가장 쉬운 예로 여성 전용 휴대폰을 떠올릴 수 있다. 성별에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존 휴대폰을 핑크 계열 색상과 날씬한 디자인 등 모양새에 약간의 변화를 줘 여성 전용 휴대폰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칼로리 계산 기능이나 비만도 측정, 바이오리듬, 생리주기를 알려주는 스케줄러 기능까지 모두 여성의 구미에 맞게 제작해 소비자에게 다가왔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최근 들어 여성 전용 자동차, 물, 과자, 포인트 카드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여성 전용 상품이 생산되고 있다.



이렇게 여성 전용 서비스가 우후죽순 격으로 쏟아져 나오는 최근의 추세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대학생 이민지(여ㆍ21) 씨는 “여성을 위한 피자 광고나 굳이 여성 전용이 아니어도 될 품목에 여성 전용을 만드는 것은 시장에서 남성을 소외시키는 일”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의견과는 달리 임승주(남ㆍ23) 씨는 “시장의 원리에 의해 구매결정의 영향력이 큰 여성이 주목받는 일은 당연하다.”며 “여성 전용 서비스는 전적으로 상업적 전략에 불과하므로 남성이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 김건형(남ㆍ25) 씨는 “대형마트의 여성 전용 주차장은 대개 입구에 있어 보통 차를 대기 좋은 자리에 있다. 이런 경우 남성 입장에서는 충분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고 토로했다. 여성전용 주차장과 같은 일부 서비스는 여성에게는 혜택이 되지만 동시에 남성에게는 역차별이 될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 대해 최민지(여ㆍ20) 씨는 “마트 입구와 가까운 곳에 여성 전용 주차장이 배치된 것은 마트 측에서 주 이용객인 여성의 안전을 확보해 선전하려는 상업 전략이며, 지하주차장에서 여성들이 범죄에 노출될 확률이 많기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그렇게 배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와 같이 여성 전용에 대한 의견은 대개 ‘남성에게는 역차별’이라는 주장과 ‘마케터들의 단순한 상업 전략’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러한 의견들에 대해 한국 여성 정치 연구소 함영이 소장은 “여성 정책이 성차별에 대한 여성의 구호활동을 벌이는 것이라면 최근에 ‘여성 전용’이라 이름 붙여진 서비스는 전적으로 마케팅 영역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상품 마케팅이라는 것은 구매자의 호기심과 자극을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구매 결정에 큰 영향력을 가진 여성을 타깃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며 “여성에게 약간의 혜택이 가미됐을 뿐 남성이 역차별로 받아들일 수준은 아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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