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도 레즈비언이 있었을까? 지난 1436년 음력 10월 24일(세종 18년) 기록된 조선왕조실록엔 ‘세종은 궁녀들이 몸종들과 저희끼리 서로 좋아하면서 함께 잔다는 말을 듣고 이를 몹시 밉게 여겨 금지령을 내렸다’고 적혀 있다. 이처럼 여성 간의 성적인 관계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됐으며 일종의 일탈로 여겨졌다. 한국에서 레즈비언 가시화를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 지 약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레즈비언은 부차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역사에서 지워진 한국 레즈비언의 삶을 살펴보고 레즈비어니즘적 시각의 필요성과 현재 레즈비언이 향유하는 문화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싹트기 시작한 국내 레즈비언 인권운동
현대의 레즈비언 공동체는 지난 1970년대에 처음 등장했다. 지난 1980년부터 약 10년간 여성 인권운동의 성과를 연구한 「한국 여성인권운동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 최초의 레즈비언 공동체는 여자택시운전사회(이하 여운회)다. 회원의 90%가량이 여성 택시 운전사였던 이들은 동성애자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피하고자 외부에 ‘여성 운전자들의 친목모임’으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지난 1990년대에 레즈비언은 초동회에서 분화돼 독자적인 단체를 설립했다. 속담 ‘초록은 동색’에서 이름을 딴 초동회는 지난 1993년 등장한 한국 최초의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로, 레즈비언 3명과 게이 3명으로 구성됐다. 초동회 내 게이들은 에이즈(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AIDS)가 ‘게이병’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한 활동에 주력했다. 반면 레즈비언은 ‘아웃팅(Outing) 방지 캠페인’에 주목했다. 아웃팅이란 본인이 원치 않음에도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강제로 알려지는 것이다. 당시 레즈비언이 남성들의 아웃팅 위협을 이기지 못하고 성폭력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발행된 「한국 레즈비언 인권운동 10년사」에 따르면 레즈비언 상당수가 폭행, 스토킹, 강간 등의 범죄에 시달리면서도 아웃팅 위협으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주로 게이 바(Gay Bar)에서 기금을 조성한 초동회에선 소식지 광고에 게이 바만 소개되는 등 게이를 위한 활동을 우선시했다.

레즈비언 성적 대상화도 문제였다. 장지유 전 끼리끼리 활동가(활동명 랑랑)는 “과거 초동회에서 발행한 소식지에 에이즈예방법과 함께 나체의 레즈비언 커플을 묘사한 삽화가 실렸다”고 말했다. 여성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분위기에 한계를 느낀 레즈비언이 독자적인 단체를 구성하면서 초동회는 출범 2개월 만에 해체했다. 이후 초동회는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한국여성동성애자인권모임단체 ‘끼리끼리’로 분화했다.

끼리끼리는 레즈비언 5명이 만든 최초의 여성 동성애자 인권모임으로, 지난 1994년 11월에 발족했다.「한국 레즈비언 인권운동 10년사」에 따르면 당시 레즈비언에 대한 인식은 매우 열악했다. 끼리끼리에 접수된 상담 중 상당수가 ‘이성애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달라’는 내용이었다는 기록은 당시 많은 레즈비언이 비정상이라는 자기혐오와 좌절을 겪었음을 방증한다. 레즈비언 가시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끼리끼리 1기 회장 전해성은 레즈비언 9명과 함께 지난 1996년 SBS에서 방영된 ‘송지나의 취재파일’에 출연했다.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레즈비언’이란 주제로 방영된 해당 방송분엔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히는 여성의 삶과 일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2011년 발간된 「한국 레즈비언 커뮤니티 역사」에 따르면 해당 방송은 본격적으로 레즈비언이 집단적으로 사회에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지난 1997년엔 ‘쇼너(Shona)’ ‘라브리스(Labris)’ 등 레즈비언 바(Lesbian Bar)가 4개로 늘어나기도 했으며 당해 11월엔 레즈비언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 <은비늘> <숙희, 정희>가 방영되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영향으로 끼리끼리는 발족 2년 후 회원 수가 200여 명에 이르게 됐다.

끼리끼리는 레즈비언 인권 신장을 목표로 소식지 발간과 강의 등의 활동을 진행했다. 끼리끼리의 분기별 소식지엔 주로 회원들의 정보나 활동을 공유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각호마다 주제를 달리해 해외 기사, 회원들의 기고 글 또는 외부 인사의 인터뷰 등 다양한 기사를 싣기도 했다. 또한 끼리끼리는 사회적으로 레즈비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동성애 바로 알기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학교나 교육시설, 언론이나 자치모임 등 각 모임의 요청을 받아 진행한 해당 교육은 대중들의 인권의식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한국레즈비언상담소로 명칭과 위상을 전환한 지난 2005년부터는 별도의 정기적인 소식지를 발행하지 않다가 지난해 1월부터 매달 활동 내용과 공지 등을 담은 ‘한국 L상담소’라는 소식지를 발행하고 있다.

끼리끼리는 국외 레즈비언 인권단체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연대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지난 1995년 8월 끼리끼리는 ‘아시아 레즈비언 연대’에서 주최한 회의에 참석해 아시아 각국 레즈비언의 삶과 인권운동을 공유했다. 지난 2002년 개최된 아시아 여성성적소수자 단체 포럼에도 참석한 끼리끼리는 지난 2003년 9월 아시아 지역 레즈비언 인권활동가들과의 자문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 끼리끼리의 이러한 행보는 각국 레즈비언 인권실태 관련 자료의 수집 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공식적인 레즈비언 연대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연대와 기록으로 커지는 목소리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인권운동계에서 여성혐오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레즈비언이 여성주의자와 연대를 선택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끼리끼리는 지난 1997년 9월 21일(일) 토론회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의 만남’을 열었다. 장 활동가는 “해당 토론회는 레즈비언 단체 차원에서 여성들이 함께 만나 서로의 차이와 향후의 연대를 모색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했다”며 “성소수자 인권운동계 내 여성주의의 시각의 필요성을 느낀 레즈비언 활동가들이 여성단체로 진입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끼리끼리는 ‘차이가 힘이 되는 여성연대’ ‘다름으로 닮은 여성연대’에 합류하며 기존 여성단체를 대상으로 동성애 바로 알기 교육을 진행하는 등 여성주의 운동계에 존재하는 레즈비언 혐오를 뿌리 뽑고 연대를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각 레즈비언 인권단체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에 저항하며 하나로 단결했다. 지난 2005년 4월엔 최초의 레즈비언 단체만의 연대체인 ‘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가 창설됐다. 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는 가부장제와 이성애주의 아래 소외된 레즈비언의 권리를 쟁취하고 레즈비언에 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자 했다. 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는 ▶한국레즈비언상담소 ▶부산여성성적소수자인권센터 ▶레즈비언인권연구소 ▶이화레즈비언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로 구성돼 있다. 흩어져 있던 레즈비언 인권단체를 하나의 단체로 결집시킨 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는 주로 레즈비언 인권 증진을 위한 사업을 추진했다. 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는 지난 2005년에 ‘레즈비언 인권 실태조사’를 실시해 레즈비언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밝혔고, 10대 레즈비언의 인권 보호를 위한 활동도 진행했다. 지난 2005년 5월엔 ‘찾아가는 청소년 동성애 바로 알기 강의’와 ‘10대 레즈비언 인권 캠프’ 등을 주최하며 10대 레즈비언의 인권 침해 문제 해결에도 힘썼다. 또한 레즈비언권리운동연대에선 레즈비언 단체가 없는 광주, 대구와 같은 지방에 찾아가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도 진행했다. 박 활동가는 “영화 관람 후 토론과 교류의 장을 만드는 방식으로 활동을 구성했다”며 “레즈비언과 관련된 행사가 전혀 없었던 지역이기 때문에 해당 활동이 지역 레즈비언들이 서로 연대를 할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고 자평한다”고 말했다.

레즈비언의 생애를 직접 듣고 기록해 이를 공유하는 활동도 시작됐다. 지난 2013년엔 레즈비언의 심층 면담을 진행하고 기록하는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레즈비언권리연구소의 사업 중 ‘증언집 기록 사업’을 특화한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는 레즈비언 당사자의 생애와 역사를 기억하고자 시작됐다. 해당 활동은 사회에서 소외된 레즈비언의 다양한 삶을 공유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박김수진 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대표는 “기록하는 일에 관심이 많아 일을 시작하게 됐다”며 “레즈비언들의 생애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생애기록 활동은 일상과 병행하며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과 레즈비언’을 주제로 한 영화제가 개최되기도 했다. 부산여성성적소수자인권센터는 지난 2005년 ‘여성과 이반’을 주제로 ‘제 3회 부산무지개영화제’을 개최했다. 이반은 성소수자가 스스로를 지칭하는 은어다. 당시 기획팀으로 활동했던 박혜정 활동가는 “당시에도 레즈비언은 동성애자 인권운동 내부에서 ‘2등 시민’으로 취급되곤 했다”며 “레즈비언의 존재를 알려 레즈비언들이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의 일환으로 해당 영화제를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 3회 부산무지개영화제는 이전 회차와 달리 여성과 레즈비언에 대한 영화만을 다뤘다. 레즈비언만을 위한 문화나 장소가 사라지고 있던 당시 레즈비언 영화를 만드는 국내 소수 단체의 성과를 모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박 활동가는 “영화제를 하던 당시는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와 레즈비언만의 공간이 사라지고 있던 시기였다”며 “문화 콘텐츠를 통한 레즈비언 가시화는 현실에서 소외당하는 레즈비언의 존재를 알리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 지난 2005년 10월 24일(월) 부산여성성적소수자인권센터가 개최한 ‘제3회 부산무지개영화제’의 안내문이다. <사진제공=박혜정>


레즈비언에겐 더 많은 문화가 필요하다
레즈비어니즘(Lesbianism)은 오로지 여성 간의 연대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레즈비언의 상징은 레즈비어니즘의 의미를 보여준다. 레즈비언의 상징 중 하나인 라브리스는 양날 도끼로, 새로운 시작을 여는 도구이자 장애물을 제거하는 강력한 힘을 의미한다. 이는 가부장적인 문화를 따르지 않았던 그리스 신화 속 전설의 여성 부족 ‘아마조네스’의 상징이기도 했다. 라브리스를 상징으로 사용하는 ‘레즈비언데이’의 새우(활동명)는 “라브리스는 가부장제를 무너뜨리는 레즈비언 전사의 무기로 상징된다”며 “레즈비언데이는 레즈비언 독립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라브리스를) 대표 상징으로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레즈비언을 소재로 한 문화 콘텐츠는 여성 간의 관계를 조망하는 시각을 확장시킨다. 지난달 1일(수) 여성 간의 생활과 섹슈얼리티(Sexuality), 친밀성을 다룬 도서 「피리부는 여자들」은 목표 금액보다 1293% 높은 달성률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마감했다. 해당 프로젝트를 기획한 서한나 비혼 여성 커뮤니티 보슈(Boshu) 대표는 “2부의 ‘끝나지 않는 춤을 추고’는 여성들이 서로에게 특별한 관계가 되는 과정을 그려냈다”며 “해당 내용을 통해 더 많은 여성들이 그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 공동체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공동 저자 이민경 작가는 “3부의 ‘긴 행렬을 부르는 그림’에선 규정하기 어려운 여성 간의 관계를 탐색했다”며 “이번 기획을 통해 여성 간 관계의 확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수지(영어영문 18) 학우는 “「피리부는 여자들」은 비혼 여성의 생활이나 여성 간 관계에 대해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 레즈비어니즘에 대해 고찰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매주 여성 간의 다양한 관계를 다룬 편지 형식의 뉴스레터 ‘코로나 시대의 사랑’도 연재하고 있다. 이 작가는 “여성 간의 다양한 관계 중에서도 특히 ‘사적인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연재를 시작했다”며 “한국 사회에서 흔히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이성애 규범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자신들의 관계를 확장하는 데 있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비혼 여성 커뮤니티 보슈(Boshu)와 이민경 작가가 공저한 도서 「피리부는 여자들」의 표지다. <사진제공=보슈>

도서뿐만 아니라 영화, 만화 등 레즈비언을 소재로 한 문화 콘텐츠도 다양해지고 있다. 불과 2010년대까지만 해도 게이를 다룬 콘텐츠에 비해 레즈비언을 다룬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지난 숙대신보 제1267호 ‘게이에 가려진 레즈비언, 그 이유는?’ 참고). 최근 레즈비언 가시화의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레즈비언을 소재로 삼는 문화 콘텐츠의 다양화가 이뤄지고 있다. 서 대표와 이 작가는 레즈비언을 소재로 한 문화 콘텐츠로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추천했다. 서 대표는 “기존 이성애중심사회에서 벗어나 레즈비언이 중심이 된 영화다”며 “레즈비언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작품이 더 풍부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감독이 레즈비언이기 때문에 레즈비언 당사자의 이야기를 잘 담아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웹툰 ‘극락왕생’도 추천했다. 이 작가는 “여성 간의 관계가 성애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레즈비어니즘을 기반으로 여성 간 결속감과 인물들 간의 관계의 다변성이 잘 드러나 즐겁게 봤다”고 설명했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사회의 성격을 가장 뜻깊게 암시하는 것은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고 어떤 역사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레즈비언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후세대는 기록을 통해서만 당시 레즈비언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이를 둘러싼 논쟁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알 수 있다. 레즈비언은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 속 소수자’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현세대는 후세대가 레즈비언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할 필요가 있다. 레즈비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것, 이들의 삶을 이해하고 포용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