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사람들이 약속을 잡을 때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다음 대화들을 살펴보자.

대화 1)
a: 눈송아, 내일 뭐 해?
b: 특별한 일 없어. 왜?
a: 그럼 나랑 놀자!

대화 2)
ㄱ: 눈송 씨, 이번 주 토요일 시간 되세요?
ㄴ: 낮에 아르바이트가 있긴 한데, 무슨 일이세요?
ㄱ: 토요일에 볼 수 있는 영화표가 생겨서요. 같이 영화 보러 가실래요?

대화 3)
A: 눈송아, 다음 주 월요일 저녁에 뭐 해?
B: 아무 일 없는데, 왜?
A: 내가 다음 주 월요일에 3:3 미팅을 나가기로 했는데, 그때 일이 생겨서 못 나갈 것 같거든. 네가 대신 나가 줄 수 있을까?

대화 4)
가: 눈송아, 잘 지냈어? 혹시 다음 여름방학에 특별한 일정 있니?
나: 중간에 며칠 여행 가는 거랑 아르바이트하는 거 빼고는 딱히 없어. 왜?
가: 다음 여름방학에 일주일간 영어 캠프가 있거든. 혹시 참여할 수 있나 해서.

위 대화들은 모두 상대에게 시간이 있는지부터 먼저 묻고, 개인적인 약속을 잡거나 특정 일정에 참석을 부탁하고 있다. 묻는 측의 의도에 따라서는, 상대의 스케줄을 먼저 배려하려는 차원에서 위와 같은 발화가 이뤄졌을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용건부터 제시하는 방법’을 통해 더욱 건강한 배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친밀하지 않거나 수직적인 관계에선 ‘상대의 일정부터 확인하는 방법’이 상대에게 일종의 부담감을 줄 가능성도 있다. 특히 갑-을 관계로 대변될 수 있는 관계에선 더욱 그렇다. 교수-학생, 사장-알바, 선배-후배 등의 관계가 이에 해당한다.

위 대화 1)을 보자. 대화 1)의 화자들이 많이 친밀한 사이는 아니거나, a만 일방적으로 친하다고 느끼는 관계라고 가정해 보자. ‘b’가 ‘a’와 놀고 싶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무난하게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다면? 무슨 용건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미리 고민을 해야 했을까? 처음부터 다음날 가족 약속이 있다는 거짓말이라도 해야 했던 걸까? b는 a가 약속을 잡을지, 또는 다른 용건을 말할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에서 ‘b’는 결국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대화 2)도 마찬가지다. ‘ㄴ’은 ‘ㄱ’이 다른 부탁을 했다면 들어줄 수 있는 상태라 일단 시간이 있다고 하긴 했으나, ‘ㄱ’과 영화는 보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대화 3)과 대화 4)의 경우 어떤 모임이나 활동에 대한 참석을 요청하는 대화다. 이는 오히려 특정 목적과 활동성이 있기 때문에 용건을 듣고나서 “난 미팅은 하지 않을래” 또는 “영어 캠프는 힘들 것 같아”와 같은 말로 거절하기가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사회적 위치가 높다거나 서로 편한 관계가 아니라면 거절은 상대적으로 어려워진다. 이미 대답한 일정상 용건 이행이 가능하다면, 어려운 관계에 있는 상대의 부탁은 일종의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상대가 이미 ‘그때 시간이 된다고 했으니 이 용건에 임해 주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정부터 확인하는 질문을 받은 사람에겐 용건을 알지 못한 채로 상대의 용건을 추측하고 대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길 수 있다. 물론 거절하고 싶은 경우엔, 일정이 되더라도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억지로 “내가 시간이 되긴 하지만 그 용건에는 임하고 싶지 않아”라며 부담감과 미안함을 느끼고 거절을 해야 한다면 ‘상대의 일정부터 확인하는 방법’이 과연 진정한 배려가 될 수 있을까.

반대로 일정이 있지만 상대가 제시한 용건이 더 마음에 들어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임하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럴 때 용건을 먼저 듣는다면 형식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대신 바로 “그때 일정이 있긴 한데 조정 가능한지 확인해 볼게”와 같은 대답을 함으로써 기능적으로 훨씬 효율성 있는 대화가 가능해진다.

필자 또한 용건이 급할 때 타인에게 일정부터 물은 경험이 있다. 당시엔 인지하지 못했지만 필자가 직접 겪어 보고 나니 상대에게 불필요한 부담감을 줬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반성하며, 앞으론 필자와 상대 모두에게 효율적이고 편안한 대화를 끌어내리라 다짐한다. 그것이 진정 ‘건강한 배려’가 아닐까.


독일언어문화 18 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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