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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말은 그가 죽어서야 의미를 갖는다
숙대신보  |  smnews@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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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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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 한국의 고유 정서로 불리는 ‘한’이라는 감정은, 고전소설에서 주로 여성의 감정으로 풀이된다. <장화홍련전>, <이생규장전>, <아랑전>에서는 ‘여성 원귀’가 나타나 자신의 억울한 감정을 토로한다. 한국 전통 이야기에서 여성 귀신은 반드시 세속의 존재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이 왜 돌아왔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사실상 이들 여성 원귀는 오로지 ‘말하기 위해’ 돌아온다. 여성 원귀는 자신의 말을 들어줄 이를 찾고, 그가 문제를 해결해준 후에야 한을 풀고 승천한다.

고전소설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역설적이게도 그 여성이 사람이 아니게 돼야 세상에 전해질 수 있다. 여성은 그가 ‘살아서’는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장소를 얻지 못한다. 여성은 죽어서야, 비로소 남성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문제를 세상에 알릴 기회를 얻는다. 고전소설에서 여성 원귀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를 해결한 남성은 용기 있는 자로 표현되고, 신분 상승과 지위획득 등의 사회적 성취를 거두게 된다.

<장화홍련전>에서는 사건의 원인을 계모 ‘허 씨’로 지목한다. 그리고 사건의 해결은 고을의 관리 ‘정동호’에게 맡긴다.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허 씨는 그의 집안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홀아비 배 좌수의 집에 시집을 가고, 배 좌수는 ‘아들을 낳기 위해’ 허 씨와 재혼한다. 배 좌수는 허 씨를 보자마자 사별한 전 부인 정 씨와 비교하며, 못 생겼다고 놀란다. 배 좌수의 괄시에도 허 씨는 그가 시집온 이유를 상기하며 아들 셋을 낳는다. 그러나 배 좌수는 허 씨와 아들들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는다.

허 씨는 위기를 느낀다.
그는 본래 악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집안을 위해 희생을 강요받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장화 홍련> 소설 속에서 허 씨는 악인으로 묘사된다. 피해자로 묘사되는 것은 장화, 홍련 자매가 아니라 배 좌수다. <장화홍련전> 속 남성이 쌓아올린 구조 안에서 남성의 가해자성은 지워진다. ‘악인’ 허 씨의 횡포 아래 장화와 홍련이 목숨을 잃었다는 서사 안에서 배 좌수의 잘못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남성이 쌓여 올린 구조 안에서 피해자는 언제나 여성임에도 우리는 <장화홍련> 속 허 씨를 보고 ‘계모’는 가해자고 악인이라는, 여성혐오적 시각을 학습한다.

여성의 원한을 남성이 해결한다.
이러한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등장인물 이름에서부터 여성들이 지워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장화, 홍련의 어머니 ‘정 씨’ 그리고 ‘허 씨’는 이름조차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주 잠시 등장하는 고을 관리 ‘정동호’는 이름 세 글자 모두 나온다. 이름을 남기기도 어려운 여성들은 소설 속에서 죽어서, 그들의 원한과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없다. 여성은 살아서 발언권을 얻지 못한다. 여성은 죽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돼야만, 주체성을 잃어야만, 자신의 상황을 드러낼 수 있다. 반면 남성은 귀신이 제기한 문제를 해결해 자신의 역량을 입증하고 사회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한다.

허 씨가 악인이 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장화, 홍련이 원귀가 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여성이 죽어야지만 사회적 발언권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사또님, 사또님, 제 한을 풀어주세요.
판사님, 판사님, 제 말을 믿어주세요.

우리는 안다.
고전소설에만 있을 것 같은 상황은, 사실 현실이다.
그래서 행동한다.
‘주체성’을 쟁취하기 위해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 모두가 함께한다.

최근 여성들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알리기 위해, 텔레그램 탈퇴 운동을 진행했다. 또한 n번방과 관련된 청원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는 역대 최다 청원수를 기록했으며 단기간에 20만 명의 청원 수를 채웠다. 우리는 연대하기에 강하다. 강하기에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할 수 없다.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다.

그리고 청자가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바꾸면 된다. 이렇게,
<N번방 담당판사 오덕식을 판사 자리에 반대, 자격박탈을 청원합니다>
위 청원은 현재(30일) 41만 명 청원수를 기록했다.

박사 뿐만이 아니다.
지난 성범죄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은 사법부도 가해자다.
가상과 현실을 넘어 성범죄를 만연하게 만든 사회도 가해자다.
‘악마’와 ‘평범한 남성’ 사이 간극을 애써 벌리려, 조주빈의 생애와 행적, 심리적 특질에서 범행의 원인을 찾는 언론도 가해자다.
성적 용도로 여성을 거래하고, 성폭력의 유구한 관행을 남성의 놀이문화, 음주문화, 오락거리로 성욕을 남성들의 ‘통제할 수 없는 욕구’라고 부르며 여성을  끊임없이 대상화하다가도, 범죄가 발생하면 소수 괴물의 소행일 뿐이라며 전체 남성 집단과 신속하게 분리하는 모순을 떳떳하게 전시하는 그대들도 가해자다.

오늘도 함께 외친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여성들끼리 연대하는 이 순간은 역사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렇게 글을 남긴다.

 

 

 

한국어문17 박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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