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 기획
여성 투쟁의 역사와 페미니즘 담론의 미래
이하린 기자  |  smplhl97@s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3.3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페미니즘은 라틴어로 여성을 뜻하는 ‘페미나(Femina)’와 체계화된 학설을 의미하는 ‘이즘(Ism)’ 이 결합한 말이다. 이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로서 현실의 성차별적 관행에 저항하고 여성의 인간다울 권리를 쟁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지는 국제 여성의 달을 갈무리하며 페미니즘 역사를 돌아보고, ‘건강한 페미니즘 공론장’을 형성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살펴봤다.


완전한 권리를 향한 불완전한 인간의 외침
제1물결 페미니즘, 여성 권리 쟁취의 첫 걸음

근대사회로의 진입과 더불어 등장한 제1물결 페미니즘은 전방위적인 여성 권리 쟁취를 목표로 한다. 지난 2005년 발간된 한국여성연구소의 「새 여성학 강의」에 따르면 18세기 말에서 1950년대까지의 페미니즘 운동인 제1물결 페미니즘은 자유주의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주를 이뤘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18세기 서구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론이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을 기존 관습과 제도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상가 루소는 1762년 저서 「에밀(Émile)」에서 ‘여성은 단 한번도 스스로 독립적인 존재라고 느껴서는 안 되며 남자의 더 달콤한 동반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애굣덩어리 노예로 변해줘야 한다’며 성별에 따라 다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당시의 통념에 따라 1789년 8월 프랑스 혁명 중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도 여성은 ‘인간’의 범주에 포함되지 못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인간의 범주에 여성을 포함하고자 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기성 사회의 틀 안에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가장 큰 관심을 뒀으며, 주로 교육권 운동이나 참정권 운동, 차별적 법 개정 운동 등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직선거법 제47조 3항’에 의해 여성을 절반 이상 추천해야 하는 비례대표 의원 여성할당제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본교 김영옥 기초교양학부 교수는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배제됐을 때 ‘여성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새로운 희망이라는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 억압의 원인을 불평등한 사회구조라고 보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19세기 이후 노동계급 여성들이 사회운동에 진출하면서 등장했다. 이는 여성이 겪는 사회적 차별과 경제적 생존의 문제를 계급구조와 연결해 파악하는 관점이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가 여성을 사회에 노동자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여성을 가사 전담자로 규정함으로써 이중으로 노동력을 착취한다고 본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기존에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됐던 가사노동의 국가적 책임과 여성의 독립적인 생산 노동 참여를 주장했다. 김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성별 계층 간 불평등의 구조를 경제적인 측면에서 재조명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제1물결 페미니즘이 여성 억압 구조를 포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변화보다 참정권과 같은 제도 내에서의 권리만을 소극적으로 요구한다. 김 교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에서 요구하는 기회의 평등이 주어지더라도 여성은 임금과 노동 과정에서 또 다른 차별에 직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성별 간 차별을 계급 간 차별로 환원하고 여성이 겪는 다양한 문제 중 노동 분야 문제에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김 교수는  “계급 차별의 해결이 성차별의 해결로 이어진다는 관점은 여성 억압의 특수성에 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2물결 페미니즘, ‘정상성’에 대한 도전
1960년대 이후 서구에선 여성 억압 구조의 몰이해에 대한 반발로 여성 억압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등장했다. 제2물결 페미니즘 중 하나인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란 표어 아래 행해진, 일상에서의 성평등을 쟁취하기 위한 광범위한 노력을 일컫는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 아래서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의 권력에 주목해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던 문제들을 공론화한다. 지난해 4월 11일(목)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 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형법 제270조 1항(동의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헌법재판소가 심판대상 법률이 사실상 위헌임을 인정하면서도, 해당 법률의 공백에 따른 혼란을 우려해 법을 개정하기 전까지 법의 효력을 한시적으로 인정하는 결정을 말한다. 이에 따라 해당 판결은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진 낙태죄가 존속한다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국가에 귀속됐던 여성의 자기결정권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소위 ‘정상성’이라 규정된 것에 대한 도전에서 출발한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가부장제하에서 정상으로 여겨지는 이성애주의가 여성을 종속시키고 성별 계층을 공고히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이성애주의는 남성만을 위한 성적 쾌락을 강조하고 여성을 화장, 하이힐, 몸매가 드러나는 의복 등으로 성적대상화 시킨다는 이유에서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자매애를 강조하는 정치적 레즈비어니즘(Lesbianism)을 통해 제도화된 이성애를 거부하고 여성 해방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했다.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주의 문화가 성, 출산, 육아 등 다양한 국면에서 여성의 삶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밝히고, 이전에 논의되지 않았던 사적인 문제들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급진주의 페미니즘은 제1물결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계급, 인종, 민족 집단 간의 차이를 간과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여성과 남성을 각자 동질적인 집단으로 인식함으로써 다른 억압 구조들과의 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이유에서다.


페미니즘에 새로운 물결이 일다
제3물결 페미니즘, 여성 내 비주류의 저항  

제3물결 페미니즘은 여성이 가지는 개별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시각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등장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확보되고 식민지들이 독립한 20세기 후반 여성 내 다양성과 차이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페미니즘의 새로운 물결을 이끌고 온 것이다. 제3물결 페미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과 **탈식민주의의 영향으로 다양한 페미니즘 운동과 소수자 운동이 결속되며 발전했다.

포스트모던(Postmodern) 페미니즘은 기존의 구조주의와 모더니즘(Modernism)의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을 거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계급, 인종, 문화 등 여성 간의 다양한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산층 백인 여성과 저소득층 소수민족 여성이 경험하는 사회적 억압은 다르다. 중산층 백인 여성은 성차별만 경험하지만, 저소득층 소수민족 여성은 성차별과 인종차별, 빈부격차에 의한 계급차별 등 다양한 차별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식민지가 독립한 20세기 후반엔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이 등장했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은 제3세계 여성이 겪는 이중 차별의 분석을 통해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을 통합하는 이론이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은 기존 서구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주류 여성주의자들의 사고와 주장의 일반화가 비서구 국가의 여성들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제4물결 페미니즘, 온라인 중심으로 확산된 담론
제4물결 페미니즘은 디지털 매체를 기반으로 다양한 의제가 형성되고 논의가 오가는 온라인 페미니즘으로 18~29세 여성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난 2011년 제니퍼 바움가드너가 저작 「F'EM! Goo Goo, Gaga, and Some Thoughts on Balls」에서 처음으로 제안한 제4물결 페미니즘은 온라인 중심의 여성 의제 생성과 담론 확산과 수평적 운동의 특징을 띤다.

한국 역시 디지털 매체를 중심으로 여성 의제가 빠르게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현재 한국 내 페미니즘 담론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수평적이고 쌍방향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제4물결 페미니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4일(화) 기준 디지털 성범죄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은 청원 하루 만에 10만 명의 동의를 받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국회 본회의 상정 전에 법률안의 체계와 형식을 심사하는 기능을 한다. 지난 28일(토) 기준 n번방 집단 성 착취 사건에 관련된 5건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약 500만 명이 넘는 역대 최다 청원인의 동의를 얻었다. 윤김 교수는 “영페미니스트(Youngfeminist)들은 대학 내 세미나와 운동을 통해 페미니즘을 학습했다”며 “헬페미니스트(Hellfeminist)의 페미니즘은 강간문화 속에서 생존하고 저항하기 위한 전술이라는 점에서 이전 세대의 페미니즘과 차별성을 띤다”고 말했다.

   
▲ '릴레이 해시태그(Hashtag) 운동'은 디지털 매체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제4물결 페미니즘의 형태다.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를 사용하는 페미니스트들은 해시태그 기능을 이용해 '성폭력 고발 운동' 'n번방 집단 성 착취 사건' '탈코르셋' 등의 페미니즘 의제를 공론화한다.


페미니즘 공론장, 평행선을 걷지 않으려면
오늘날 페미니즘 담론 대부분은 디지털 매체에서 이뤄지고 있다. 페미니즘 논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 매체의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특징은 비교적 자유로운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박수빈(한국어문 17) 학우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커뮤니티에선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고 편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상에서 페미니즘 논쟁은 익명 사용자 간 갈등으로 이어지거나 다면적인 사고를 방해할 위험이 있다. 김 교수는 “SNS상의 짧은 언어와 빠른 전파력으로 인해 반대 주장에 대한 적대와 혐오가 높아지고 있다”며 “중도를 용납하지 않는 공격적 태도는 생산적인 논의를 불가능하게 하고 소모전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깊이 있는 토론과 논의를 통해 자신의 주장에서 논리적 오류를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학우는 “각 진영의 대립으로 여론을 악의적으로 조작하기 쉽고 소모적 논쟁이 지속된다는 점에서 발전적인 논의가 다소 어렵다”고 말했다.

논의의 내용과 방향이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개인이 단일화된 공론의 장에서 압박을 느낄 경우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 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주장이 대등한 자격으로 담론의 장에 참여하기 위해선 각 진영의 주장과 이에 대한 논지를 기록하고 해석할 공간이 필요하다. 윤김 교수는 “현재 한국 페미니즘 진영 안에선 조금이라도 다른 관점을 가진 이를 혐오주의자로 몰며 침묵을 강요하고 서로를 배척한다”며 "현재로선 기득권자들이 기록의 권한과 해석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오늘날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SNS상에서 역동적이고 격렬하게 다양한 의제를 이끌어내고 있다.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 의제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치열한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선입견으로 상대방의 의견을 미리 재단하고 평가하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포스트모더니즘: 후기 모더니즘이라는 의미로, 모더니즘이 확립한 학설, 원리, 형식 따위에 대한 거부 및 반작용으로 일어난 예술 경향을 일컬음.
**탈식민주의: 한 국가가 타 국가에 의한 정치·경제적 지배를 벗어나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고 주체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행동하려는 주의를 말함.

참고문헌: 새 여성학 강의.(한국여성연구소). 동녘(2005)
김은주(2019) 제 4물결로서 온라인-페미니즘 : 동시대 페미니즘의 정치와 기술, 한국여성철학, 31, 1-32

이하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스포츠와 만난 여성, 위밋업스포츠
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의 돌파구, 과학과 사람에게 찾다
3
입학금 반환 요구 지속··· 본교 "대안 마련하겠다"
4
동물 유튜브, 귀여움을 팝니다
5
예술로 해석한 선거, '새일꾼 1948-202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발행인 : 강정애 | 편집인 겸 주간 : 육성희 | 편집장 : 한예진 | 발행처 : 숙명여자대학교|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정애
우)140-742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 47길 100 숙명여자대학교 숙대신보사
행정실 ☎ 710-9150 (Fax) 706-2695 / 편집실 ☎ 710-9721 / 9152
Copyright © 2020 숙대신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mnews@sookmy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