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손꼽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필자를 포함한 여성들은 요즘 ‘뉴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뉴요일이란 유튜브 채널 ‘소그노(SOGNO)’의 예능 콘텐츠 ‘뉴토피아’가 공개되는 날짜인 매주 일요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뉴토피아는 ‘빻은 세상의 한 줄기 빛’이라는 예고편의 제목과 같이 온통 ‘빻은’ 것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여성들이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예능 콘텐츠다.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 100% 여성으로 이루어진 데다가, 짧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을 한 ‘디폴트(Default)’ 여성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기존 예능에서 흔히 보이던 저급한 농담이나 혐오적인 발언도 없다. 유명 연예인이 나오지는 않지만, 페미니스트 여성이라면 익숙할 유튜브 크리에이터(Youtube Creator) ‘하말넘많’ ‘지컨’ ‘하지’와 디자이너 ‘민서’가 출연한다. 출연진이면서 동시에 소그노 팀원인 ‘휘수’ ‘우나’ ‘현지’ 또한 뉴토피아의 얼굴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성 미디어 그룹 ‘소그노’
‘전에 없던 여성 예능’을 제작한 소그노는 어떤 채널일까. 이탈리아어로 꿈을 뜻하는 소그노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여성 미디어 그룹의 유튜브 채널이자 예비 사회적기업의 이름이다. 팀원 전원이 본교 동문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사회에서 잘 다루지 않는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는 ‘다큐모멘터리(Docu-momentary)’부터 여성서사 사극 예능 ‘허휘슬전’, 라이브 방송 콘텐츠 ‘현생술집’, 랜덤 예능 ‘하와수의 랜덤 박스(Random Box)’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꾸준히 제작하여 마니아층을 형성해왔다. 지난달 9일(일), 반년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걸쳐 탄생한 예능 뉴토피아가 최초공개된다는 소식이 각종 SNS(Social Network Service)와 커뮤니티에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타 현재는 구독자 6만 명의 유튜브 채널이 됐다.

우리가 찾던 뉴-월드, ‘뉴토피아’
지난달 9일(일), 첫 회가 공개된 이후 지금까지 뉴토피아에 대한 반응이 아주 뜨겁다. 지난 1월 18일(토) 소그노 공식 인스타그램(Instargram)을 통해 뉴토피아의 포스터가 공개되고, 하말넘많, 지컨 등 유명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합류가 알려지면서 소그노 채널의 구독자 수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현재 약 6만 8천 명을 기록했다. 지난 26일(목) 기준 뉴토피아의 합산 조회수는 예고편과 선공개 영상을 합해 약 78만 회에 육박한다.

콘텐츠는 춤 신고식, 제한된 돈으로 장보기, 퀴즈와 게임, 팀 스포츠, 자유시간 가지기 등 전통적인 예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눈에 띄는 것은 주류 예능에서 여성 출연자들에게 요구됐던 섹시 댄스나 애교 대신, 출연진 각자의 개성을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댄서로 활동하고 있는 휘수를 위한 댄스 교실과 체육을 전공한 현지를 위한 축구 게임이 있다. 뉴토피아는 기존 예능을 시청할 때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출연진 사이의 인신공격이나 과도한 ‘몰이’ 없이도 출연진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며 재미를 끌어낸다.

여성혐오 없는 미디어를 향해
우리는 왜 뉴토피아에 열광할 수밖에 없을까. ‘전설’이라 불리는 예능 프로그램 중 대다수는 왜 남성의 목소리만을 담고 있었을까.
지난 2018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를 통해 실시한 ‘방송프로그램의 양성평등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예능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성비와 프로그램 내용 등 전반적인 측면에서 남성 중심적 경향을 보였다. 전체 예능 출연자 중 여성의 비율은 37.3%에 그쳤고, 그중 진행자와 고정출연자는 남성이 여성보다 2배가량 많았다. 40~50대 남성 주 진행자와 고정출연자가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정형화된 남성 중심적’ 예능에서는 전통적 성 역할 고정관념의 재생산과 특정 외모의 여성 희화화와 비하를 재미와 웃음 소재로 삼는 태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2년이 흐른 올해도 방송계는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여성들이 기존 미디어를 비판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방식의 미디어를 직접 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TV를 틀어도 볼 예능이 없어서 우리가 만들었다’는 소그노의 말처럼, 이제는 여성들이 직접 여성혐오 없는 미디어를 만들기 위해 ‘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뉴토피아는 기존의 알탕 예능을 즐길 수 없게 된 여성 시청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으며, 더 나아가 여성혐오 없는 미디어를 향한 새로운 도약이 될 것이다.


                                                                                 미디어 18 강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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