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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위한 과학, 독성학자 박은정 교수
김지선 기자  |  smpkjs97@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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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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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한국 과학자가 2년 연속으로 *HCR에 선정됐다는 명랑보가 전해졌다. 소식의 주인공은 박은정 **경희대 국제캠퍼스 동서의학대학원 교수다. 그러나 당시 크게 주목받았던 건 그의 연구보다 그가 극복해온 환경이었다. 마흔둘에 박사 학위를 받은 만학도이자, HCR 선정 당시 대학의 비정규직 교원이었고, 심지어 한때는 경력단절 여성이었다는 조건이 더 크게 주목받은 탓에 정작 박 교수의 연구와 성과에 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본지 기자단은 박 교수를 만나 그의 연구 분야인 독성학에 대해, 그리고 그의 연구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HCR(Highly Cited Researcher) : 대략 지난 10년간 피인용 횟수가 상위 1%인 논문을 쓴 영향력 높은 연구자 명단으로, 세계적 학술기업 클래리케이트 애널리틱스가 매년 발표함.
**인터뷰 당시 소속. 현재는 경희대 서울캠퍼스 동서의학연구소로 소속이 변경됐음을 밝힘.


박은정 교수, 생활 속 독성 물질을 들여다보다
박은정 교수는 독성 물질로 인한 환경성 질환을 연구하는 독성학자다. 독성학에선 우리 몸에 유해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물질이 몸 안에서 어떻게 독으로 작용하는지, 독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연구한다. 특히 나노 물질의 독성 연구는 박 교수의 주력 분야다. 나노 물질은 초미세먼지 같은 자연 나노 물질과 특정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제조 나노 물질로 나뉜다.

박 교수는 자연 물질과 제조 물질을 가리지 않고 독성학 연구를 이어왔다. 그는 2005년부터 미세먼지를 연구했으며, *‘미세먼지와 그 유해화학물질의 건강위해성평가’ 연구로 2008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박은정, 2008). 지난해는 가습기 살균제에 함유된 PHMG-P, MIT, 케톤 CG 등이 폐암까지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해당 연구는 가습기 살균제 첨가물질이 얼마나 해로운지, 우리 몸속에서 세포들을 어떻게 해치는지를 더욱 명백히 입증했다는 의의가 있다.

   
▲박은정 교수의 연구 목록 일부다. 박 교수는 지난 2005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연구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박 교수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질환을 야기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독성학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친어머니의 췌장암, 시아버지의 식도암 등 병으로 고통받는 주변인을 오랫동안 봐온 박 교수는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됐고, 이는 그들이 살아온 환경이 질병 발생에 영향을 준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박 교수는 늘어가는 기대수명에 비해 건강수명이 줄어가는 현상에 주목했다. 건강수명은 유병 기간을 제외한 기대수명이라고도 불리며, 기대수명에서 질병, 부상 등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때를 제외한 기간을 말한다. 박 교수는 “기대수명은 증가하는데 건강수명이 줄어든다는 건 우리가 아픈 채로 살아가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뜻이에요”라며 “우리가 일평생 많은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돼 살아가느라 몸이 망가진 것이 원인일 수 있다고 생각했죠”라고 답했다.

박 교수는 특히 생활 속에서 자주 쓰이는 제조 나노 물질의 위험성에 주목했다. 제조 나노 물질 연구는 박 교수의 전문 분야 중 하나다. 연구자는 제조 나노 물질이 어떤 형태여야 가장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그 결과를 보고한다. 박 교수는 숯, 연필심(흑연), 다이아몬드를 예시로 든다. 그는 “세 물질은 모두 탄소라는 원소가 주된 물질이지만 그 구조가 각기 달라서 사람의 몸 안에 들어갔을 때 제각각 다른 작용을 할 수 있어요”라며 “연구에서는 이러한 물질들을 세포와 동물에 실험한 후 그 결과를 비교하며 가장 독성이 적은 성질의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죠”라고 말했다.

   
▲구성 원소는 같아도 구조가 상이하다면 단순한 충격을 가했을 때조차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독성학자로 살아남기
박은정 교수는 독성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자로 꼽힌다. 그는 2017년을 기준으로 총 66건의 SCI 논문과 20건의 KCSI 논문을 발표했으며,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는 3년 연속 HCR에 선정되기도 했다. **SCI, KSCI, 그리고 HCR은 연구자가 학계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는 의미다.

독성학자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박 교수가 처음부터 연구자의 길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박 교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관련 회사에서 일하다가 아들의 혈액암(백혈병) 오진을 계기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탈장 때문에 병원에 갔던 박 교수의 아들은 뜻밖에도 혈액암 진단을 받았고, 입원 5일째 되던 날 박 교수는 우연히 오전 8시에 채취한 아들의 혈액이 온종일 방치된 걸 보게 됐다. 자료를 찾아보던 중 검사 결과가 잘못됐을 수 있음을 알게 된 박 교수는 병원 측에 재검을 요구했다. 검사 결과, 아들의 건강에는 이상이 없었다. 박 교수는 똑똑하지 않으면 ‘내 새끼’를 지킬 수 없다는 깨달음이 이후 찾아온 공부할 기회를 붙들게 만든 힘이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진정으로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현재 독성학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박 교수가 처음 전공으로 택한 것은 면역학이었다. 박사 과정 중 면역학에서 독성학으로 분야를 바꾼 것인데, 이처럼 석사 이상의 학위 과정 중 전공을 바꾸는 사례는 드물다. 그동안 공부한 시간을 인정받지 못할뿐더러 한국의 경우 대학원 박사 과정에선 석사 과정에서의 공부를 심화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의 경우 면역학을 3학기 공부했지만 이수한 것으로 인정받은 것은 한 학기뿐이었다. 독성학이 자신에게 잘 맞는지, 독성학으로 분야를 옮겨도 잘할 수 있을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1년 간의 연구원 생활도 필요했다. 1년 반의 학위 과정, 1년간의 연구원 생활 중에서 학위 과정 반년만 인정받았으니 2년이라는 시간과 수업료 1,000만 원은 얻은 것 없이 사라진 셈이다. ‘그래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전공을 바꾸게 됐다는 박 교수는 “선택에서 비롯될 모든 결과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임했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전공을 바꾸는 것, 학부 과정이라면 하고 석사 이상이라면 백 번 고민하세요. 분야 이전을 고민하는 학생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겠냐는 질문에 대한 박 교수의 답이다. 왜 옮겨야만 하는지, 큰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옮기고 싶은지를 백 번 고민하고, 치열한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옮겼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도 덧붙인다. 박 교수는 “많은 편견의 시작과 끝이 그 선택에서 비롯할 거고 생각보다 더 힘든 시간일 거예요”라며 “힘듦에 대한 보상을 바라기보다 원하는 분야에서 하고 싶은 만큼만 연구하다 그만두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해야 하죠”라고 말했다.

백 번 고민하고 선택했다면 그래야 할 이유가 충분한 거예요, 버티다 보면 분명히 얻는 게 있어요. 고민 끝에 전공을 바꾼, 가상의 숙명여대 학생에게 응원의 한 마디를 부탁하자 박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이어 그는 “무언가를 정말 독하게 한다면 그때 찾아오는 자기만족이 있어요”라며 “자기만족 속에서 이전의 결정이 좋은 선택이었다는 타당한 논리를 찾을 수 있죠”라고 설명했다. 연구자인 박 교수는 머릿속에 가설이 생기고 현상에 대한 그림이 그려질 때 분야를 옮기기를 잘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올해는 프라임 사업으로 지난 2016년 신설된 본교 공대의 첫 번째 졸업생들이 탄생하는 해다. 공대의 첫 번째 졸업생들을 향한 한 마디를 부탁하자 박 교수는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높은 곳에서 잘 견딘 것 같아요”라고 대견해하면서도 “사회에 나가면 수많은 편견과 많이 싸워야 할 텐데, 특히 이끌어줄 선배가 없어 힘들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래도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길을 잘 닦아줘야 해요”라며 “나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해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각오를 다지면서도 ‘숨 쉴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힘을 줘야 하죠”라고도 덧붙였다.

후배 연구자로 성장할지도 모르는 공대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박 교수는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그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하는 말이 있어요”라며 “자신을 기술자로 만들건지 연구원으로 만들건지는 ***피펫팅(pipetting)을 매일 똑같이 하더라도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자신의 연구 과제를 스스로 찾아야 하는 연구자가 되기는 어렵지만, 일하면서 보이는 작은 변화를 관찰하고 이에 관해 깊이 생각한다면 그때는 연구자가 된다는 말이다.


과학자의 업, ‘희생정신’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연구자의 책임감은 때로 개인의 삶을 희생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특히나 독성학에선 연구비의 대다수를 국가 지원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책임감이 더 크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가족들 기다리는데 왜 그렇게 밤늦게까지 일하시나’라고 묻는 지인에게 ‘선생님이 내신 세금 안 아깝게 하려고요’하고 답한 때를 회상했다. 박 교수는 “여유 있는 사람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사람도 내야 하는 게 세금이에요”라며 “국민의 혈세로 연구비를 지원받는 거니까 그만큼 결과로 돌려줄 수 있어야 사람들 앞에서 당당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당당한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박 교수는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먹고 싶은 만큼 먹고, 그리고 자고 싶은 만큼 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으니 자신의 삶 자체를 어느 정도는 희생해야 하죠”라고 덧붙였다.

독성학을 연구하는 박 교수는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유해물질 노출을 감수하기도 한다. 인체에 해가 될 수 있는 물질을 연구하기도 하거니와 실험 중 위험한 약품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차분한 투로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한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라며 “포름알데히드를 비롯해서 다른 유해물질들이 그냥 안에 있거든요”라고 덧붙였다. 연구자는 일반인과 비교해 독성 물질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지만 연구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독성학 연구엔 실험 결과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른다는 위험부담도 존재한다. 그는 “몸에 좋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효과가 있든 없든 욕만 하고 끝나지만 몸에 안 좋다는 이야기는 달라요”라며 “관련 산업계에선 아주 예민한 문제라서 독성학 연구자들은 실험 결과가 새어나가는 일에 심리적 부담을 크게 느껴요”라고 설명했다. 말 한마디로 실험실이 폐쇄되고 노트북을 비롯한 연구 자료들을 감사를 위해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연구, 사회적 파장이 큰 연구를 해서 심리적 부담이 엄청나요”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가 연구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노출된 유해물질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본 사람들의 눈물 때문이라고 답한다. 박 교수가 최근 발표한 가습기 살균제 첨가물질 연구도 마찬가지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는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이나 환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병원이 사용한 거예요”라며 “가족들이, 환자들이 콧줄을 끼고 혼자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지금, 그 사람들 심정이 어떻겠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적어도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고 싶어 할 거란 말이죠”라고 덧붙였다. 환자를 낫게 하는 일에 있어 그가 겪는 고통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시작됐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중요하다. 질병의 발생 단계를 안다면 어디서, 어떻게 개입해야 증상 악화를 막을 수 있는지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완전한 회복, 혹은 증상이라도 완화할 수 있는 치료의 시작이 된다. 피해자들에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주고 치료법을 제시하는 일이야말로 ‘독성학자로서 제일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고 박 교수는 말한다.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과학은 때로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학이 사람을 위하는 정신을 잊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 교수는 “먼저 사람의 고통을 알아야 할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주변인이 무엇을 부족하게 여기는지, 어떤 것 때문에 힘들어하는지와 같은 사람의 아픔을 알아야 비로소 과학의 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과학의 발전이라고 하려면 사람들이 그 발전으로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수혜를 누릴 수 있어야 해요”라며 “그러려면 무언가를 연구하고 개발할 때 이 결과의 이로운 측면과 해로운 측면을 모두 깊이 고려해야 하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롭고 부정적인 측면을 애써 외면하려고 하지 말고 같이 고민하면서 연구했으면 해요”라고 덧붙였다.

*박은정. (2008). 미세먼지와 그 유해화학물질의 건강위해성평가. 동덕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KSCI(Korea Science Citation Index) : 한국과학기술정보원이 구축한 과학기술 분야 논문 데이터베이스임.
SCI(Science Citation Index) : 세계적인 학술정보 서비스기업 클래리케이트 애널리틱스(Claricate Analytics, (구) 톰슨 로이터)가 구축한 과학기술 분야 논문 데이터베이스임.
***피펫팅(파이펫팅, pipetting) : 피펫(pipette)을 사용해 적은 양의 액체를 옮기는 과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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