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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마리’를 찾아서, 뮤지컬 <마리 퀴리>
숙대신보  |  smnews@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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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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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초연을 선보였던 뮤지컬 <마리 퀴리>가 재정비 후 2020년 2월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100분이었던 기존 러닝 타임은 150분으로 늘어났고, 이에 비례해 작품의 완성도 또한 초연보다 향상됐다. 특히 마리와 라듐 공장 직공인 안느의 서사를 보완하고 그들의 연대에 초점을 맞추면서 작품의 주제가 ‘여성의 삶’인 것이 초연에서보다 확실하게 보였다.

누군가는 ‘마리 퀴리’보다 ‘퀴리 부인’이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읽었던 위인전의 제목은 퀴리 부인이었으며, 오늘날에도 그 표현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여러 책의 제목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뮤지컬 <마리 퀴리>는 그동안 우리가 잃어버렸던 ‘마리’를 돌려주며 동시에 세상을 향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작품이다. 그동안 왜 우리는 그를 마리라고 부르지 못했을까.

“피에르 퀴리… 그리고 퀴리 부인”
폴란드에서 태어난 마리는 과학에 재능을 가진 여성이었지만, 당시 폴란드는 여성의 대학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마리는 폴란드가 아닌 프랑스에 있는 소르본 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소르본 대학에서도 마리는 타지에서 온 이방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에 시달린다. 남성이었다면 겪지 않았을 차별 속에서도 마리는 묵묵히 자신의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 라듐을 발견한다. 라듐 발견은 마리가 오롯하게 이뤄낸 업적이었지만, 노벨상 수상에서 마리의 이름은 남편인 피에르 퀴리가 불린 후에 마리 퀴리가 아닌 ‘퀴리 부인’으로 호명된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그동안 우리가 잃어버렸던 ‘마리’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우리가 잃어버린 마리는 비단 과학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교육, 정치, 예술, 문화 가릴 것 없이 모든 분야에서 마리와 같은 뛰어난 여성의 존재감은 지워져 왔다. <마리 퀴리>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가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마리를 되살리면서, 2020년을 살아내고 있는 마리들을 위로한다.

“마리, 그 자체로 충분하잖아.”
라듐 발견에 성공한 마리는 라듐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라듐에 대한 마리의 집착은 그가 라듐 발견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기인하는데, 이러한 집착이 점점 심해지면서 마리는 라듐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수준에 이른다. 하지만 라듐 발견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라듐이 강한 방사성을 가진 물질이라는 뜻밖의 사실이 드러난다. 마리는 실험을 진행하면서 차츰 라듐의 위험성을 인지하지만, 이를 부정하고 싶어한다.

마리는 라듐의 위험성을 인정하면 그동안 자신이 힘겹게 쌓아온 업적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겨우 얻은 여성 과학자의 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며 두려워한다. 무엇보다 라듐과 자신을 동일시하던 마리에게 라듐의 결함은 본인의 결함으로 다가온다. 마리가 근심으로 방황하고 있을 때, 누구보다 마리를 지지하고 응원했던 친구 ‘안느’가 마리에게 힘이 되어준다. 안느는 “마리, 그 자체로 충분하잖아”라며 마리와 라듐을 분리하고, 안느가 존경하는 건 라듐이 아니라 바로 마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마리가 라듐에 집착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여성들에게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여성을 향해 끊임없이 가해지는 혐오는, 여성이 본인의 존재를 계속해서 증명하게끔 하고, 그 결과 여성은 때로 자신과 자신의 성과를 동일시하게 된다. 그렇게 사회는 여성을 다른 성별보다 힘겹게 살아가도록 만든다. 왜 우리는 이 세상을 어렵게 살아야 했을까. 우리 자체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안느의 말은 여성 관객들에게 위로와 동시에 수많은 질문을 하게 한다. 왜, 어째서, 우리는.

‘퀴리 부인’에서 ‘마리 퀴리’로
<마리 퀴리>는 여성 서사를 ‘뮤지컬’에 접목했다는 점에서 또 한 번 주목할 가치가 있다. 뮤지컬은 여성 관객이 주를 이루지만, 작품 대다수가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 혐오적이어서 비판을 받는 장르 중 하나다. 그런 장르에서 여성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뮤지컬 <마리 퀴리>는 변화의 불씨라고 할 수 있다.

1890년대의 마리가 2020년 우리에게 건넨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누구보다 뜨겁게 살았던 한 과학자를 무대 위에서 만난다면, 다시는 마리를 잃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제 그의 이름을 마음껏 부르자. 그리고 기억하자. 그는 처음부터 ‘마리 퀴리’였다는 것을.

뮤지컬 <마리 퀴리>는 오는 29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만날 수 있다.


경영 18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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