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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트부문-백로상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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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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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끝으로 입꼬리를 만져 본다. 거울속에서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한 남자가 나를 바라본다. 어색한 표정이다. 하루 종일 억지 미소를 띄운 탓인지 입 주변의 근육은 감각이 없다. 마치 대기업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같은 생경한 내모습. 헤어젤을 듬뿍 발라 윤기 흐르는 머리를 두 손으로 헝클이고, 목을 꽉 죄이고 있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다. 막혀 있던 숨이 목구멍을 타고 비로소 흘러나온다. 양복 주머니를 손으로 더듬어 지폐를 찾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오늘 일당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언제 맡아도 기분좋은 지폐의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거울 속의 나는 평소의 나로 돌아와 있다.

하루종일 사람들의 ‘아는 사람’이 되어주는 일, 그것이 나의 직업이다. 방금 전까지 나는 축복과 설레임이 가득 찬 예식장에 있었다. 그 곳에서 나는 세 시간 남짓, 신랑의 십년지기가 되어주었다. 공유한 적 없는 추억들을 애써 머릿속에 되네이며 무사히 기념사진 촬영까지 마치고 나오는 길이다. 그 댓가로 받은 돈은 오만원. 나를 고용한 남자는 부족한 하객의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십년 어치의 우정을 오만원에 산 셈이다.

형에게 빌려 차고 나온 정장에 안성맞춤인 손목 시계를 바라본다. 투명한 유리 속 시계바늘이 다음의 내 일정을 상기시킨다. 나는 고개를 들어 거울을 쳐다보며 차갑고 강인한 표정을 지어본다. ‘절 쫓아 다니는 스토커같은 그 자식을 다신 보고 싶지 않아요. 새 남자친구인 척만 해주시면 되요. 아르바이트 비용은 웃돈까지 얹어서 드릴께요. 일이 잘 해결만 된다면.’

이십 대 초반의 여대생은 절박한 목소리로 나를 고용하는 이유를 또박또박 설명했다. 자기를 따라다닌다는 그 남자가 꽤나 싫었던 듯 간간히 한숨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지금 그 여학생의 남자친구가 되어 주러 가야한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의 ‘아는 사람’이 되어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주에는 학교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부모님 소환 명령을 받은 한 아이의 삼촌이 되어 주었다가, 선생님과의 면담이 끝나갈 무렵, 그 아이의 엄마가 들이닥쳐 식은땀을 빼기도 했다. 결국 나를 고용한 사실까지 들켜 더 큰 벌을 받게 된 아이는 잔뜩 심통난 얼굴로 돈을 내밀었어다. 나는 그 돈을 받지 않았다. 때론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기 불편한 예외적인 상황들도 불쑥 찾아오기 마련인 것이다.

사실 짭짤한 벌이인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다른 목적에서였다. 처음 이 아르바이트 제의를 받았을 때 내 머릿속을 꽉 채운 건, 이젠 얼굴도 희미한 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나와 흡사한 얼굴을 가지고 살아 가고 있을 아버지. 그가 내 머릿속을 헤집을 때마다 나는 복잡대는 지하철 안에서 내 손을 놓아버리던 순간의 서늘함이 척추 끝을 타고 올라왔다. 아무리 울며 고함을 치고 불러봐도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뒤돌아 보지도 않고 서서히 멀어지는 그의 낡은 점퍼.

나는 여태껏 그를 언젠가는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속에 살아왔던 것일지 몰랐다.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거짓말처럼 그 속에 아버지가 껴 있지 않을까. 무모하고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이젠 직업처럼 굳어져서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어떤 날에 나는 한 여자의 사촌 오빠가 되어 남자친구를 소개받기도 하고, 어떤 날엔 젊은 과부의 남편이 되어주기도 했다.

편하게 갈아 입은 헐렁한 티셔츠와 운동화를 신고 약속장소로 나가니 여대생의 말대로 끈덕지게 생긴 한 남학생이 계속 여대생에게 들러 붙어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미라 남자친구 허진호라고 합니다.”

드디어 임무 시작. 나는 여대생에게 미리 통바받은 여대생의 이름을 태연하게 부르며 남자에게 말을 건넨다.

“것 봐. 남자친구 있댔지? 이젠 제발 따라다니지 좀 마. 응?”

여대생의 따뜻한 팔목이 자연스럽게 내 팔을 파고든다. 나 역시 다정하게 그녀의 어깨를 감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게 변하더니 다짜고짜 내 따귀를 내려 친다. 묵직한 남자의 손이 닿은 뺨이 금새 빨갛게 부어오르 기미를 보인다. 얼얼함을 애써 떨치려 하는데 여대생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연신 괜찮냐고 호들갑이다. 결국 여대생을 삼 년 반이나 따라다녔다는 그 남자는 쓸쓸히 뒤돌아 선다. 몇 분 뒤 내 손에는 그녀가 보수로 건넨 만 원 짜리 지폐 열 장이 들려 있었다. 이 돈이면 다음 아르바이트를 할 며칠 후까지 넉넉한 생활비로는 충분하다.

매서운 겨울 바람에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며 개찰구에 줄을 서기 시작한다. 열차가 곧 도착한다는 안내원의 음성은 방금 전 여대생의 목소리와 겹쳐져서 들린다. 철컥철컥, 묵직한 쇳소리와 마찰음을 내며 지하철이 플랫홈 안으로 서서히 진입한다. 조금씩 속도가 줄어든 지하철이 드디어 움직임을 멈춘다. 사람들은 교차하는 물밀과 썰물처럼 서로의 어깨를 맞부딪히며 스쳐 지나간다. 나도 그들 사이에 선다. 얇은 티셔츠 사이로 역에 머무르던 서늘한 공기가 파고 든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 서 있을 때면 종종 느껴지는 한기였다. 그리고 그 한기가 내 온 몸을 훑고 지나가면 무인도에 서 있는 것 같은 황량함에 나는 멍하니 서 있을 때가 많다. 바로 지금처럼 열린 지하철 문 사이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익숙한 건, 내 손을 놓아버릴 ,때가 입고 있던 검정색 낡은 점퍼 뿐만이 아니었다. 서늘한  새벽이면 눈 앞에 어른 거리던 나와 닮은 얼굴, 그는 더욱 낡아 버린 점퍼 사이에서 접착제와 볼펜 따위를 한 무더기 꺼내고 사람들 앞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여러분, 한 평생 어렵고 외롭게 살아 온 저는 이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 합니다. 색깔 다른 볼펜 열 자루가 들은 한 세트를 무려 단 돈 삼천원에 드립니다. 동네 문방구에서는 한 자루가 삼천원인데 저는 무려 열 자루…….󰡓 익숙한 목소리가 자꾸만 귓 속을 파고 든다. 아까 맞은 뺨이 후끈 달아 오른다. 주변의 모든 소리는 들리지 않고 물건을 팔고 있는 그 남자의 목소리만 계속해서 들려온다. 남자는 이제 큰 박스에서 꺼낸 잡다한 물건을 사람들의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있다. 뒤늦게 지하철을 타려고 뛰어 온 사람들이 내 어깨를 거칠게 밀치며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지만, 나는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다. 지하철은 또 다른 곳으로 출발하기 위해 문을 다시 닫는다. 딱딱한 철문이, 그와 나 사이를 가로 막고 있던 철문이 조금씩 닫히기 시작한다.

청바지 뒷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멍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아 든다, 수화기 너머에서 다음 약속 장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아는사람󰡑이 다소 짜증스런 목소리로 내 위치를 추궁한다.

󰡒저, 아직 멀으셨나요? 일이 급한데 지금 어디세요?󰡓 간헐적으로 끊기는 내 대답에 더욱 짜증이 난 상대편에선 점점 재촉하는 말소리가 빨라진다. 나는 꿈 속을 헤매이는 것 같은 몽롱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지금 가고 있어요. 빨리 갈게요. 단지, 아는 사람을 유연히 본 것 같아서요. 제가 아는 사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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