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명여고문학상
수필부문 당선작-매화상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7.09.0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참가부문: 수필, 참가번호: A0032 3등


                                     거 울


거울 앞에 서본다. 까무잡잡한 피부, 작고 처진 눈에 높지도 낮지도 않은 평범한 코 그리고 흐릿한 입술.

“할매는 내가 제일 이쁜 것 같나?”

“하모하모. 니가 제일 이쁘제. 웃는 기 젤로 이쁘다.”

증조할머니는 내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살아계셨다. 남들은 둘 뿐인 할머니가 나에게는 세분이었다. 할머니, 외할머니, 증조할머니. 나는 증조할머니를 잘 따랐는데 그 분이 나를 유난히 이뻐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애기였을 땐 다 휜 허리로 나를 업고 아니셨고 걷기 시작할 땐 동네방네 나를 데리고 다니며 자랑하셨다. 애기였을 때부터 증조할머니가 나를 키우다시피 하셨기에 나는 엄마 품보다 증조할머니 품이 더 익숙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에 잠들때까지 나는 항상 증조할머니와 함께였다. 4대가 모여사는 집은 식구들도 바글바글 했지만 나는 증조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떨어지지 않았다. 잠잘 땐 쭈글쭈글한 증조할머니 목주름과 축처진 가슴을 만지며 잠들었다. 증조할머니와 나는 마치 엄마 캥커루와 아기 캥고루 같았다.

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 증조할머니는 내 머리를 직접 빗어주고 묶어주셨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어중간한 머리길이였다. 부스스하고 붕뜬 내 머리는 증조할머니가 참빗으로 빗어주고 넘겨주면 얌전해졌다.

머리를 빗는 동안 나는 증조할머니가 주신 사탕을 녹여먹었다. 엄마가 증조할머니를 위해 사다놓은 사탕은 대부분 내 차지였다. 달짝지근한 호박엿이나 눈깔사탕을 다 먹었을 즈음에 머리도 깔끔하게 묶여있었다.

증조할머니는 주로 내 머리를 땋아 주셨는데 늘 이쁘다 이쁘다 하셨다. 머리를 다 묶고 나면 꼭 거울 앞에 나를 앉히고 머리가 예쁜지 물어보셨다.

“어떻노 예쁘제”

나는 사탕을 콱 깨물며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거울 속 증조할머니를 보며 웃었다. 증조할머니도 나를 보며 웃는 게 거울을 통해 보였다.

내 키가 증조할머니 키와 거의 같아질 무렵 증조할머니는 점점 쇠약해져 갔다. 비녀를 꽂은 흰머리가 더 하애지고 몸은 비쩍 말라갔다. 주름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치아도 몇 개 남지 않았다. 언린 나는 부쩍 늙으신 증조할머니를 눈치 채지 못했다. 증조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잠들었고 증조할머니의 품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증조할머니도 내게 여전하셨다. 머리를 곱게 빗어주셨고 내가 좋아하는 사탕을 입에 넣어주셨다. 그리고 거울 속의 나에게 이쁘다고 하셨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도 내 머리를 묶어준 것은 증조할머니였다. 증조할머니가 입에 넣어준 사탕을 오물거리며 가만히 앉아있었다. 증조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탕을 이리저리 굴리면 어느새 머리는 묶여있었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였다. 증조할머니는 거울 앞에 나를 앚히고 또 예쁘다고 하셨다. 그 날따라 내 머리가 정말 예뻐보였다. 나는 증조할머니를 안아드리고 볼에 쪽 뽀뽀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증조할머니가 거울 속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웃는얼굴이 예쁜기라. 니처럼 잘 웃는 가니사가 이쁜기라. 마이 웃어라.”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할머니의 손을 잡아 끌었다. 뼈밖에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앙상했다.

“내 일학년 되는 거 보러 같이 가자 할매”

증조할머니는 뒤따라 갈테니 먼저 가라고 했다. 나는 대문을 나서면서 자꾸 뒤돌아봤다.

“할매 올게제? 빨리 온나.”

증조할머니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 초등학고 입학식에 증조할머니는 오지 못했다. 중학교 입학식에도 고등학교 입학식에도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던 모습이 증조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후 엄마는 나를 달래려고 증조할머니처럼 사탕을 쥐어주고 머리를 묶어주었다. 하지만 사탕은 하나도 달콤하지 않았고 오히려 목이 메였다. 머리도 예쁘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 예뻐보이지 않았다. 거울 속에는 못난 여자아이가 울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거울 앞에 서본다. 예전보다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있다. 일자로 곧게 펴진 생머리를 양갈래로 땋아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그 대신 한 번 웃어본다. 증조할머니는 곁에 없지만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며 예쁘다고 해주실 것만 같다. 거울 속 내가 활짝 웃는다.

 

숙대신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스포츠와 만난 여성, 위밋업스포츠
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의 돌파구, 과학과 사람에게 찾다
3
입학금 반환 요구 지속··· 본교 "대안 마련하겠다"
4
동물 유튜브, 귀여움을 팝니다
5
예술로 해석한 선거, '새일꾼 1948-202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발행인 : 강정애 | 편집인 겸 주간 : 육성희 | 편집장 : 한예진 | 발행처 : 숙명여자대학교|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정애
우)140-742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 47길 100 숙명여자대학교 숙대신보사
행정실 ☎ 710-9150 (Fax) 706-2695 / 편집실 ☎ 710-9721 / 9152
Copyright © 2020 숙대신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mnews@sookmy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