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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당선작-청송상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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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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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 여고문학상 백일장 2등

참가부문 수필

참가번호 B0080

<선택>

가장 소중한 가족


“다녀오셨어요. 아빠….” 이 말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남들은 자연스럽게 부르는 ‘아빠’라는 단어를 다시 사용하기까지는 긴긴 시간이 필요했고, 내가 아빠에게 처음 ‘아빠’라고 부른 그 날 그 순간,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하염없이 울어야만 했다.


내가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빠와 나는 닮은 곳이 한 군데도 없었기 때문이다. 즉 아빠는 나를 낳아준 아빠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나의 기억에 아빤 언제나 ‘아저씨’였다. 엄마와 아빠가 심하게 다툰 다음날이면 늘 웃으면서 엄마를 위로해 주었던 아저씨였다. 그리고 나와 동생이 더 이상 엄마를 볼 수 없던 즈음부턴 더 이상 아저씨도 볼 수 없었다.


내가 일곱이 되던 해에 엄마는 이혼을 했다. 아직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이혼’이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술만 먹으면 엄마를 괴롭히던 아빠는, 이혼 후 엄마에게서 나와 동생을 빼앗아왔다. 이따금씩 몰래 몰래 엄마를 만나고 오는 날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심하게 혼이 나곤했다. 때문에 울면서 나를 꼭 데리러 오겠다는 엄마를 그리며 우는 것도 늦은 밤에나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눈물로 살아가는 동안 엄마는 우리의 양육권을 힘겹게 획득했다. 꼬박 2년이 걸린 일이었다.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오던 날, 나는 차 안에서 내내 조용했다. 다만 나를 엄마에게 데려다주기 위해 운전대를 잡고 있는 아빠의 손을 잡아주었다. 내가 사랑이란 걸 느낄만한 말 한마디해주지 않았던 아빠지만, 사람들이 말하길, 나와 붕어빵이라는 아빠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가 점으로 보이기 시작한 곳 즈음에 이르자 아빠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할머니네 집전화 번호.” 나는 높낮이 없는 음성으로 지역번호를 포함한 숫자들을 읊었다. 아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 “아빠가 또 보러 올게.” 이게 내가 들은 아빠의 마지막 말이었다. 차가 멈춘 후, 나는 차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엄마 품으로 달려갔고, 뒤늦게야 아빠를 돌아다봤다. 아빤 손을 흔들어 주고는 곧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게 내가 본 아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 후, 아빠가 딱히 보고 싶은 적은 없었다. 다만 몇 년 만에 다시 보게 된 아저씨와 이제부터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아직도 그 때를 인생의 가장 큰 암흑기라 부르는 엄마를 곁에서 늘 돌봐 주던 아저씬 우리도 참 예뻐해 주셨다. 하지만 아빠라고 부르기엔 차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결국 난 마음에도 없는 아빠의 연락을 무작정 기다렸다. 엄만 아빠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했기 때문에 또 보러 오겠다던 아빠의 말만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빤 연락이 없었다. 그 후로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국 난 10살이 되던 해, 나의 생일날 결심했다. 이제부터 아저씨를 아빠라 부르겠노라고.


‘다녀오셨어요’ 라는 말 뒤에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작게 갖다 붙인 ‘아빠’에 눈이 떠지지도 않게 울 정도로 아빤 우리에게 큰 사랑을 주었다. 우리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 것이 염려된다며 스스로 정관수술까지 하고 온 그런 아빠였다. 성이 다른 아빠가 한 등기로 되어 있으면 친구들이 놀릴지도 모른다며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그런 아빠였다. 그래서 아빠는 지금도 총각이다.


그런데 얼마 전의 일이었다. 고등학교를 타지역으로 가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나는, 주말이면 엄마와 대중목욕탕에 가곤 하는데, 그 날도 그랬다. 그리고 그 날,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전(前)의 아빠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엄만, 내게 그 말을 전해주는 내내 내 등을 밀어주었다. 때문에 엄마의 표정은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그마한 소리도 울리는 목욕탕임에도 엄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잇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엄마의 말을 다 듣고 나는 한동안 뒤돌아서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가 울고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도 눈물이 마구 났기 때문에 티내지 않으려 세수를 했다. 일부러 비눗물이 눈에 들어가게 한 후 또다시 울었다. 엄마가 전해준 말은 이랬다. 서울에 사는 아빠가 새 가족들과 이민을 가는데, 나도 끼어줄 의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새엄마에게, 그리고 새 동생들에게만  잘 한다면. 언젠가 유학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엄만 내내 그것이 걸린 것이었다. 아무 말 없이 목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다시 한 번 말을 꺼냈다. “유학...가고 싶으면 이번 주는 집에 올 때 반대편에서 전철 타”

그 때 처음 알았다. 바보같이 삼학년이 될 때까지 몰랐던 것이다. 서울서 독산동에 위치한 할머니네 집주소와 내가 통학하면서 다니는 ‘독산역’가는 날, 언제나처럼 내 짐을 다 들고 배웅해주는 아빠를 뒤로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많은 생각을 했다.

일주일은 금방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입구가 두 개 있었다. ‘독산역’이라는 커다란 간판 아래 우리 집으로 가는 방향과 그 반대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동안 내 머릿속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영화 속의 장면처럼 떠올랐다. 그 장면들은 정말 순간이었다. 나를 부르는 친구의 소리에 곧 사라졌으니까.


여기서 뭐하냐며 물어오는 친구에게 나는 그냥 얼버무렸다. 친구는 다시 한 번 피식 웃더니 말했다. “얼른 들어가야지. 아버지 또 기다리실텐데...”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또 알 수 없는 눈물이 마구 나왔다. 다행이 이번주부터 학원을 다닌다며 반대 쪽으로 먼저 간 친구 때문에 우는 모습을 비춰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눈물 때문에 앞을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오로지 아빠의 모습만 떠올랐다. 그리고 계단을 다 내려와서 휴대폰을 꺼냈다. 커다랗게 ‘독산역’이라고 적힌 것을 보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있었다. 내 목소리도 매우 낮았다. 총화는 짧았다. 오래 할 수도 없었다. 우는 것이 티가 날 테니까. 나는 최대한 간단하게 말했다. “엄마, 나 지금 갈게.”


약 한 시간 가량 전철을 타고 다시 역으로 올라왔을 때, 아빠가 저 멀리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친 아빠와 난 천천히 걸었다. 아빠가 가까이와 서자 아빠의 색깔 있는 안경 너머 붉은 눈시울을 볼 수 있었다. 내 짐가방을 든 아빠의 뒤로 종종 걸어가다가 문득 역 안의 대형 거울을 보았다. 아빠와 내가 보였다. 나는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아빠도 따라왔다. 언젠가 한 번 아빠와 함께 거울 앞에 섰던 적이 있었다. 그 때 난, 아빠와 하나도 닮은 곳이 없는 내 얼굴을 보고 다시는 아빠와 거울 앞에 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눈 앞에 펼쳐진 아빠와 나는 활짝 웃고 있었다. 이제보니 웃는 모습이 꼭 닮은 것도 같았다.


집에 돌아온 나를 보고 엄마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 날 밤 나는 참 감사하다고 기도를 했다. 소중한 가족의 곁에 머무르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어쩌면 다시는 서울 아빠를 보지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날 나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나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 아빠가 있는 곳은 바로 우리집일테니까.


지난 주에는 사진관에서 연락이 왔다. 저번에 찍은 가족사진이 다 완성됐다고. 그리고 사진관 아저씨는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 사진관에 걸어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우리는 흔쾌히 허락했다. 대형 가족사전을 벽에 걸면서 우리는 모두 행복했다. 사진 속의 우리도 모두 환히 웃고 있었다. 사진 옆 한 쪽 자리에 영어로 적혀있는 ‘행복한 가족’이라는 문구를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나도, 엄마도, 아빠도, 동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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