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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당선작 -백로상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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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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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회 숙명 여고문학상 백일장

1등 백로  A0062

주제 : 선택


행복을 위한 꿈


‘탁! 탁!’

담임선생님께서 단상을 두드리시며 우리들을 쳐다보셨다.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던 나와 희정이는, 선생님께서 두어 번 더 치시고 나서야 선생님께로 고개를 돌렸다.

“집중, 집중! 자, 선생님이 지금 작성지를 한 장씩 나눠줄테니까 모두 수요일까지 제출하도록 하세요.”

나는 혹시 숙제는 아닐까 하는 걱정에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작성지를 급히 훑어보았다. 다행히 교과 숙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누런 갱지위에 적힌 문제는 배울 수도 없거니와 여태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장래희망.’ 나는 멍하게 달랑 네 글자가 쓰여 있는 그 종이를 들여다보다가 대충 가방에 끼워 넣었다.

그 날 저녁, 엄마와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 종이가 떠올라 엄마께 슬쩍 여쭤보았다.

“엄마, 엄마는 제가 뭐가 되면 좋겠어요?”

“무슨 말이야?”

엄마께서 드라마에서 눈길을 돌려 나를 쳐다보셨다.

“그냥⋯⋯. 제 직업이요.”

나는 드라마를 계속 쳐다보며 우물우물 말했다.

“넌 그냥 선생님 해.”

엄마께선 약간의 고민도 없이 곧장 대답하셨다.

‘선생님?’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란 직업이 꽤나 괜찮은 것 같았다.사람들이 많이 선호하는 만큼,좋은 직업으로 느껴졌다. 나는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선생님’이라고 깔끔하게 적었다.

다음 날,학교에서 아이들이 작성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종이에 대해 그다지 할 말이 없었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굉장히 신이나 보였다.

“왜 그래? 희정이 넌 뭐 적었는데?”

내가 희정이의 어깨를 살짝 흔들며 물어보자, 희정이가 싱긋 웃으며 기분 좋게 이야기했다.

“나? 파티쉐!”

“파티쉐?”

내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자 희정이가 큭큭하며 장난스레 웃었다.

“응! 빵이랑 케이크 만드는 거 말이야.”

희정이가 그런 꿈을 갖고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난 미래에 대해선 내 일이든 다른 사람 일이든 간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희정이가 누런갱지를 내 앞에 펼쳐 보여주었다. 희정이의 동글동글한 글씨로 파티쉐가 적혀있었다.

“멋있지, 그치? 난 예쁜 케잌만 보면 기분이 들떠. 나중엔 나도 그런 예쁜 케잌 만들어야지

그런 생각하면서⋯⋯. 헤헤. 나 다음 달부턴 제빵학원도 다닐거야.”

순간, 내 장래희망이 참 별거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야! 난 요새 작곡학원 다니잖아. 킥킥. 난 작곡가 될 거거든.”

새슬이가 희정이의 갱지를 향해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새슬이의 얼굴도 들떠보였다.

“작곡하는 거 좋아해?”

내 물음에, 새슬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로 고개를 휙 돌리며 붕 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진짜 좋아해. 아직 실력은 별로지만 계속 공부하다보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애.”

새슬이의 목소리는 꼭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 모습이 왠지 너무 부러워 아무 말 없이 그 애를 바라보았다. 희정이가 내기분이 안 좋아 보였던지, 내게 팔짱을 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혜주야, 넌 뭐 적었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오른쪽 손으로 가방 지퍼를 꽉 움켜쥐었다. 특별한 이유 하나 없이 대충적어 놓은 그 장래희망 작성지를 그 애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난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대답했다. 거짓말 할 때의 버릇대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말이다.

“난⋯⋯. 난 아직 못 정했어.”

희정이와 새슬이의 실망과 당황함이 섞인 표정이 고스란히 내 눈에 보여져왔다. 내가 참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내 미래도 참 막막하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서 한 참 고민에 빠져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도대체 나란 애는 뭐가 하고 싶은 걸까? ‘선생님.’정말 그걸 택하는 게 내게 맞는 걸까? 그러다가 어린 시절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 때는 꿈이 많았던 것 같은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내 방에 딸린 베란다로 갔다. 체리색의 낡은 책상이 오래된 인형들과 함께 놓여있었다. 책상 서랍을 열고 뒤져, 세일러문이 그려진 일기장을 찾아냈다.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이었다. 책상 옆에 주저앉아 그 일기장을 읽고 있다 보니 초등학교 때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때는 책도 꽤나 좋아한 모양이었다. 도서관의 어린이 열람실에 다녀왔다는 내용이 많았다. 한참 일기를 읽는데 푹 빠져있던 나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쓰여 있는 한 문장을 보고 기분이 붕 뜨는 걸 느꼈다.

‘나는 나중에 커서 훌륭한 동화작가가 되어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꿈을 주고 싶다.’

동화작가는 내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 동화작가가 되고 싶어 매일매일 책을 읽었었다. 마분지를 오리고 연습장을 오려붙여 나름대로의 동화책도 만들었었다. 그 때의 생각을 하고 있자 마음속에 설렘이 가득 차는 것이 느껴졌다. 희정이와 새슬이에게서 보이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내게도 느껴졌다.

“혜주야, 뭐 하니?”

그 때,엄마께서 내 방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엄마께 그 일기장을 내밀어보였다.

“이게 뭐야?”

“엄마, 저 동화작가가 하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어 했었는데, 지금도 그래요.”

“뭐? 동화작가?”

엄마께서 미간을 구기시며 나를 바라보셨다.

“저 진짜 하고 싶어요. 저 어렸을 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동화책이 너무 좋고요. 글 쓰

는 것도 좋아요.”

“무슨 동화작가야. 선생님 해, 선생님.”

엄마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선생님은 싫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건 동화작가라니까요!”

나는 짜증이 나서 크게 소리쳤다. 엄마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지셨다.

“넌 왜 이렇게 엄마 말을 안 들어. 동화작가가 뭐가 좋아. 만날 틀어박혀 글만 쓰고, 돈도 못 벌고! 누가 엄마 좋으려고 선생님하래? 안정적이고 방학이면 놀고……. 너 편하라고 그러는 거 아냐!”

나는 짜증이 나 씩씩거리며 방을 나왔다. 엄마께선 날 이해해주지 않으시는 것 같아 짜증만 났다.

“우혜주!”

엄마가 거실로 나오셨다. 나는 잔뜩 짜증난 얼굴을 하고는 집에서 나왔다. 내가 집에서 나오자마자 간 곳은 서점이었다. 서점을 한참 돌아다니다가 스콧 오델의 ‘푸른 돌고래섬’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간결한 문체로 된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읽는 내내 책에 푹 빠져 엄마와 싸운 것도 잊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즐거운 기분이 남아있었다.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어.’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 동화작가라는 그 직업이 내게 설레임을 주고 있었다. 엄마의 화난 얼굴이 떠올랐다. 가난하고 피곤할지도 모를 내 미래도 떠올랐다. 하지만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이 기분이 더 컸다. 엄마에게 있어 이 선택은 위험한 것이라고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행복한 선택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와 아빠는 주무시고 계셨다. 서점에서 책을 읽다가 너무 늦게 온 탓이었다. 나는 안방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끼-익’

“엄마.”

“밖에 밥 차려놨어.”

아직도 화나신 목소리었다. 소리치실까봐 긴장이 되었다. 침을 꿀떡 삼키고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 옆에 작성지와 서점에서 사온 ‘푸른 돌고래섬’을 내려놓았다.

“엄마…….”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아까 짜증부려서 죄송해요. 제가 편한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알아요……. 그래도 전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어요. 행복해질 수 있는 걸 선택하고 싶어요. 동화작가가 되면 힘들지는 몰라도 행복할 것 같아요. 많이 생각했어요. 엄마…….”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난 그만 안방에서 나왔다.

다음 날 아침, 밥을 먹는데 엄마나 나나 아무 말이 없었다. 분위기는 완전히 굳어있었고, 그런 분위기 탓에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공기마저 없게 느껴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이왕 할 거면 열심히 해. 아니면 하질 말고.”

엄마셨다. 난 내가 잘못들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엄마, 저 진짜 작가해도 되요?”

너무 좋아서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어느새 눈꼬리가 길게 휘어졌다. 멈춰있던 공기가 갑자기 자유롭게 활보하는 기분이었다. 너무 기뻐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난 엄마에게 가 엄마를 꼭 안았다.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계셨지만 엄마가 웃고계신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시끌벅쩍하게 떠들고 있었다.

‘드르륵-.’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나는 화들짝 놀라, 재빨리 자리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았고 아이들도 조용해졌다.

“작성지, 뒤에서 앞으로 걷으세요.”

선생님께서 작성지를 모아서 훑어보시다가 우리들을 둘러보셨다. 입가에는 자상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다양한 꿈들을 가졌구나. 누구 자기 꿈에 대해 발표 해 볼 사람 있니?”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있었다.

“그래, 혜주 발표해 봐.”

“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 꿈은 동화작가에요. 처음엔 선생님으로 생각했었는데요.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건 그게 아니었어요. 전 동화를 써서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꿈을 주고 싶어요.”

머릿속에서 동화작가가 된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 기분도 붕 떠올랐다. 설레임이 가득 차고 있었다. 선생님도 새슬이와 희정이도 날 보며 싱긋 웃고있었다. 오늘의 선택은 분명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막막하게 느껴지던 내 미래가 맑고 깨끗하게 보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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